어느 날 젊은 시절에 살던 거리를 지나게 되었다.
대학 갓 들어간 해에 지금의 내편을 만나고 사회생활이라는 것에 알 때 즈음에 결혼을 하였다.
당시 큰 의미를 두고 시작한 일은 흔한 말로 폭망 했다. 투자만큼 빚을 얻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결혼은 진행되었고 젊은 패기로 넉넉히 감당할 수 있을 거 같던 거대한 채무를 감당하다 못해 그 무게에 눌려버렸다.
우리가 가진 건 딸린 식구 없는 건강한 몸뚱이 밖에 없으니..
나의 2,30대는 앞을 볼 수 없는 긴 터널이었다.
우습게도 숨 가쁘게 만드는 그 채무의 무게는 삶의 원동력이 되어 느리지만 앞으로 전진하게 했다.
터널을 지나면서 왜 외로움이 없었겠는가 왜 서러움이 없었겠는가.
스스로의 선택이었기에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그저 묵묵히 지나가기를 바랄 뿐이었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온 자들은 알 것이다. 터널 안에는 도움이 될 만한 그 어떤 것도 없다는 것을..
그러기에 앞을 볼 수 없는 터널이라는 것을...
꽤긴 시간이었지만 터널을 통과하면서 삶의 지혜, 어려움을 극복하는 단단한 근성과 정신력, 그리고 간간히 몰려오는 공황까지 긴 터널을 통과한 자의 표식이 되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암울하지는 않았다. 경제적 어려움을 통해 지금의 소박한 삶에 감사함을 배웠고, 마지못해 한 일들을 통해 대인관계가 더 폭넓고 두텁게 되었다. 그 와중에도 꿈이 생겼고 끊임없이 도전을 하기도 했다. 그 도전들이 모여 '나'라는 사람을 더 온전하게 만드는 재료들이 되어주었다. 그때 그 소심하던 청년은 이제 제법 담대한 중년으로 변해있었다.
지금 이렇게,
유난히 추웠던 그 거리 위를 따스한 외투를 입고 걷는다.
아등바등 뛰어다니던 지금의 내 딸 같은 나이의 '나'를 보며 대견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하다..
앞만 보느라 잊고 살았던 그 좁은 골목에 발을 들여놓으니 젊디 젊은 그 아이가 늦은 밤 하루를 성실하게 마치고 툭 떨군 손으로 집으로 들어서는 게 보인다.
'잘했다. 잘했어, 잘 보냈어..'
'너무 고생했어'라고 그 젊은이에게 나도 모르게 말을 건넨다.
너무 수고했다.
이제 나는
그 좁은 골목길을 나오며
곤고한 삶에 눌려 막차에서 내리지 못하고
집 앞을 지나쳤던 수많은 날들과
하늘조차 올려다볼 수 없었던 그 분주한 하루들을 함께 보내주었다.
인생이 그러하리라.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그 길을 누가 걸으려고 하겠는가. 안다면 그 길을 들어서겠는가
하지만 나는 그 길을 걸었었어야 했다. 견뎌낸 시간만큼 또 아파한 시간만큼 꼭 그만큼 나는 나눠줄 것이 생겼다. 수많은 고민들이 티끌이 되어 흩날리는 듯했지만 그 티끌이 삶을 일구어가더라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나만의 삶을 새롭게 만들어가더라
내가 성장한 만큼
그 거리의 '나'였던 그 젊은이도 그렇게 하루를 보내다 보면
그 춥고 따뜻했던 그날들이 한 장의 추억사진이 되어 지금의 나처럼 또 누군가의 나 같은 이에게
일궈낸 열매를 함께 나눌 날이 올 것이다. 반드시
그러니 그냥 걷자.. 뛸 필요는 없다. 그냥 걸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