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서방 이것만은 안 되네!!

엄마의 마지막 자존심

by feel

엄마의 엉덩관절뼈가 두 동강이 났다.

엑스레이 사진을 보여주며 의사 선생님은 딱 균형 맞춰 두 동강이 났다고 하는데 아무리 봐도 나는 모를 일인데, 엄마는 엄청난 고통으로 꼼짝도 못 하셨다.


엄마의 89세 마지막 12월 4일.

사무실에서 급할 일은 없으나 몸을 뺄 수는 없는 처지였다. 하필 그날 오전에 엄마의 거의 임종이다 싶을 만한 목소리로 내게 전화하셨고, 나는 출근하는 남편을 돌려세워 엄마 집으로 보냈다. 그렇게 119를 타고 엄마는 병원으로 가셨다. 그리고 의사 선생님은 할머니의 뼈가 보기 좋게 두 동강이 났으며, 당장 수술 외는 방법이 없다고 했다. 당장 수술이 급하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응급실에 누워 있는 엄마는 서둘러 수술 전 검사를 받아야 했고, 그러자면 일단은 환자복으로 갈아입어야 했다.


지난가을에 뜬 된장이 좀 짜고 맛이 덜한 감이 있던 차에 묵은 콩이 한 되쯤 있어서 그걸 삶아 치대면 딱 좋겠다 싶으셨다고 한다. 그래서 전날 저녁 콩을 삶아 놓고 주무셨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잠옷(누비 내복과 꽃분홍 속바지) 바람으로 삶은 콩을 갈아 된장과 치대서 김치통에 담으시는 것까지는 문제가 없었는데 그걸 냉장고에 넣으시려고 들자마자 바로 통을 안고 주저앉으셨고, 김치통보다 더 얇은 엄마의 엉덩관절뼈가 두 동강이 나버린 것이다. 그 길로 바닥에 한참을 누워 있었다는데 아무리 보일러가 켜져 있다고는 해도 12월 아무것도 덮지 않고 부엌 바닥에 누워 계셨으니 이미 반쯤은 저승길을 오가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게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와서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데 응급실 간호사들이 보호자더러 옷을 갈아입히라 했고, 보호자라고 따라간 사람이 하필 사위다. 상체는 고통이 없으니 어떻게 사위에게 적당하게 쇄골 정도만 보여주고 갈아입으신 듯한데 아랫도리는 아니셨나 보다. 내가 가니 남편도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환자복 바지를 손에 들고는 옷 갈아입혀야 한다는 말을 먼저 건넸다. 간호사와 이런 상담을 마치고 엄마의 옷을 갈아입히려고 들어가니 엄마는 그제야 잡고 있던 바지춤을 놓으셨다. 남편으로부터 전해 들은 말로는 바지를 갈아입자고 하니 꽃무늬 속바지 춤을 부여잡으시고는 ‘이 서방 이거는 안 되겠네. 나중에 애(나) 오면 그때 갈아입으면 안 되겠는가?’ 하셨다고 한다.


너무도 상상되는 그 풍경.

엉덩뼈와 내려앉아 살짝만 움직여도 부러진 뼈들이 부딪혀 눈물이 났을 뻔도 한데 그 상황에서도 사위한테 아랫도리까지는 내보일 수 없었던 엄마의 간절한 한마디

“이 서방. 이것만은 안 되네.”가 우습기만 했다. 간호사 선생님은 속옷까지 다 벗고 환자복으로 갈아입어야 한다고 하지, 온몸을 다 맡겨야 할 사람은 사위지. 그 순간 엄마는 앞이 캄캄했다고 하셨다. 당장 아픈 것도 잊을 만큼 나중에 사위 얼굴을 어떻게 보나 싶으니 바지춤을 잡고 절대로 안된다 하신 것이다.

그날의 해프닝을 겪고 엄마의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지금은 재활병원에서 열심히 재활에 임하고 계신다. 그리고 3월 중순에는 집으로 돌아오실 준비를 하나씩 하는 중이다.


오늘 병원에서 엄마랑 마주 앉아 짜장면을 먹는 자리에서 내가 실실 웃으며

“엄마. 이 서방한테 바지 갈아입혀 달라고 하지 왜 그랬어?”

했더니 손사래를 치시며

“아이고. 말도 말아라. 그때 이 서방이 내 옷을 갈아입혔으면 내 지금 이 서방 얼굴도 못 보고 죽었을 거다.”

하셨다. 그래. 아무리 다급해도 안 되는 일이긴 하다. 그래도 그 상황을 생각하면 자꾸 웃음이 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꽃 피는 봄이 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