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어머니는 말이야.....

배여사님 서운했어요.

by feel

시어머니 이야기만 나오면 말보다 먼저 한숨이다.

다들 할 말이 많다는 뜻이겠지?

왜 이 땅의 모든 시어머니는 한결같이 며느리들에게 잔인한 존재인지? 누가 그런 권리를 그녀들에게 줬는지 궁금해진다.


결국엔 아들 가진 유세다!


내 아이들이 유치원을 다닌 시절이니 한 30년 안쪽이겠네. 그 시절에만 해도 대로(大路)변 가로수에 고추를 자랑스럽게 내놓고 오줌을 누이는 할머니나, 개념 없는 엄마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대부분은 무신경했고, 간혼 민망스러워 고개를 돌리고는 가는 이는 있어도 질책하지 않았던 것 같다. 왜냐? 머슴애들에게 고추를 내놓고 길바닥에 오줌 누는 게 창피할 일이 아니었으니까.

하긴 내 사촌오빠는 돌사진에 고추를 자랑스럽게 내놓고 찍기도 했으니…. 그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여동생들이나, 제수씨 같은 동석도 불편한 사람들이 그 사진을 볼 수 있다는 생각까지 어른들은 안 하셨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생각이 들어설 틈조차 없을 것이다. 고추 달고 나온 아들이 너무도 자랑스러워 중앙로터리에라도 나가서 자랑하고 싶은 맘이 더 컸을 터이니 말이다. 이미 고추 하나 달고 대한민국 땅에 태어난 그 자식들은 한살이든, 열 살이든, 마흔이든 대로변에 그 물건을 꺼내 오줌을 싸도 충분히 용납되는 세상을 살아왔다. 적어도 지금까지 이 땅의 시어머니들이 되신 이들에게는….

대신 딸들은 어쩌든지 싸고, 숨기고, 감춰야 하는 물건을 가지고 있었다. 귀해서가 아니라 자랑스럽지 않았으니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억울하게도 나의 자랑스러운 아들을 전혀 자랑스러운 것 없는 며느리가 꿰차고는 꽁냥대는 자체가 뵈기 싫었을 수도 있다. 그러니 그 며느리를 하나의 인격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내 아들의 조력자, 부속품으로 생각하지 않았을까? 아들의 먹성을 잘 알아 챙겨야 함도 당연하고, 내 아들을 닮은 또 고추 달린 아들을 낳아야 함도 당연한 일로 생각하시는 걸 보면 말이다. 하긴 이런 관계에 대한 고민조차 이상한 세대를 살았던 사람들이다. 당신도 당신 남편의 부속품이었으니 며느리가 그런 대접을 받는 게 하나도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뭐 다른 대접을 받아 봤어야 남을 그렇게 대하지.


나는 따뜻한 4월에 태어났고, 결혼도 비슷한 시기에 했다.

결혼의 절차야 다 비슷비슷할 것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님의 생신이었다. 멀지도 않은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뭐 하러 하루 전날 가서 그 법석을 떨었는지. 일요일에 생신 잔치를 집에서 하기로 하고 우리는 하루 전날 시댁에 가 부엌을 겸한 식당 방에서 시부모님 내외, 우리 둘, 그리고 아직 결혼 전이었던 막내 시동생과 점심을 먹는 자리였지 싶다. 시어머니께서 커다란 냄비에 한약재 비슷한 걸 다려놓으셨고, 그걸 통째로 밥상머리에 가져오셔서는 아버님 한잔, 당신 아들 둘한테 한잔씩을 떠 주고, 그 푸던 그릇으로 당신 입으로 가져가 마시고는 그대로 뚜껑을 닫고 점심을 드셨다. 헐~, 그야말로 헐 이었다. 누구 입은 입이고, 누구 입은 진짜 주동인 줄 아셨는지? 시댁에 다녀와서 그대로 우리 엄마한테 좀 보태서 일렀고, 우리 엄마는 홍삼을 한 제 다려주시면서 ‘이 서방 한 방울도 주지 말고 너 다 무라.’ 하셨다. 위안이 되었다.


세월이 지나고 아이들이 초등학교 제법 고학년이 되었을 때쯤인가 보다.

설 전날, 다들 모여서 설음식을 만들어 놓고 저녁은 식구들이 다 모여서 고기를 구워 먹었었다. 시댁이 시골이니 김장배추를 뽑아내고 봄동을 뿌려놓기도 하고, 또 속이 덜 찬 배추는 뽑지 않고 짚을 덮어 밭에서 겨울을 나게 한 후 쌈 배추로 먹으면 별미다. 아이들은 고기를 좋아하지만, 우리 시어머니의 아들, 며느리들은 그 쌈 배추를 더 좋아했다. 자연히 많이 준비한다고는 해도 아버님까지 다섯 남자가 앉은 밥상은 우리보다 숟가락을 먼저 들기도 했고, 아무래도 며느리들의 먹성보다는 나았으니, 쌈 소쿠리도 빨리 동이 났다.

한 해는 동이 나려는 밥상을 보시던 시어머니께서 부엌으로 가셔서 쌈을 찾으시다 없으니 대뜸 맛있게 먹고 있는 며느리들의 밥상에 있는 쌈을 소쿠리째 아들들의 밥상에 갖다줘 버리는 것이었다. ‘엥? 이게 뭐지?’ 하다가 기어이 셋째 며느리(나)가 나서서 생글생글 웃으며“배 여사님, 저도 쌈 좋아해요.”하고 말았다.

뭐 분위기야 웃고 넘어갔지만, 우리 둘째 시숙께서 그 상에서 잘 먹고 있는 걸 들고 오냐고 시어머니께 지청구하고, 적당한 선에서 쌈 배추가 다시 우리 밥상으로 넘어오기는 했다. 우리 시어머니의 시선이 그렇다. 아들들이 잘 먹으니, 며느리 입에 들어가는지 마는지는 눈에 보이지도 않으셨다.


꼭 홍삼 다린 약에만, 쌈 배추에만 그러셨겠는가?

나는 자주 우리 시댁에서 내 목소리를 낸다. 그렇다고 페미니스트라도 되는 양 연설하지는 못하지만, 시어머니께 돌려 까기를 서슴지 않는다.

“어머니, 저 우리 집에서 밥숟가락 하나 덜라고 시집왔어요. 그니까 배부르게 밥만 주셔도 감사해요.” 이런다. 이런 며느리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 어머니, 처음에는 당황하신 듯했지만 지금은 ‘내가 또 뭘 잘 못했나?’하는 표정을 지으신다. 돌려 깐다고 하는 걸 아신 거다. 그래야 며느리도 자기 친정에서 애써 키운 자식이고, 그녀들의 입에 맛난 거 들어가는 게 엄마 아버지의 행복이었을 아시니까. 그리고 당신만 아들 교육시킨다고 고생한 게 아니고 당신 사돈도 당신께서 그래 아래로 보는 며느리 공부시킨다고 등골이 빠지셨음을 좀 아시라고….

그런데 나는 아들이 없다. 내가 아무리 이렇게 좋은 시어미가 될 것이라 결심하더라도 내 생에 좋은 시어머니 되기는 글렀다.

꼭 소용 안 닿는 사람들이 노력하는 건 무슨 조화인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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