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2월이 되면 우리 집에서는 바람을 올렸다.
내가 아이였을 때 음력 2월이 되면 우리 집에서는 바람을 올렸다.
음력 2월 아직 겨울 추위가 물러나지 않아 아침잠을 깨기가 힘들었다. 어스름하게 날이 밝아 오는 새벽, 어머니와 할머니의 낮은 대화 속에 섞인 내평댁 할머니의 속삭임이 들려오는 날이 면 우리 집 바람을 올리는 날이다. 내평댁 할머니는 우리 동네에서 아이들의 경기를 하면 손가락을 따 주고, 이삿날을 잡아주기도, 올해의 운세를 점쳐 주기도 하면서 혼자 사시는 할머니였다.
바람을 올리는 풍경은 늘 한결같았다. 평소에 작은 상을 차리던 넓은 부뚜막에 고운 색깔의 바람떡을 쌓아 올린 접시와 나물 그릇, 그리고 지난 설 장에서 딸려와 장독에서 이미 한 달을 더 넘긴 쪼그라든 사과 몇 알, 곶감이 같이 놓여 있었다. 차려진 상 가장 앞쪽에는 소복하게 쌀을 담은 대접에 하얀 양초를 꽂아 아직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던 우리 집 부엌을 환하게 밝혔다. 상 옆으로는 물 대접도 있었고, 물 대접 옆에는 잎이 많이 달린 대나무를 묶어 만든 대나무 솔(?) 같은 것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식구 수에 맞춰서 잘라 둔 한지 조각을 젓가락으로 눌러 놓았다.
할머니와 어머니는 제물을 차린 부뚜막 쪽을 향해 연신 허리를 조아리며 축원이라 짐작할 만한 ‘비나이다. 비나이다.’를 후렴처럼 넣으시며, 손바닥을 비비셨고, 내평댁 할머니는 잘라둔 한지를 반으로 접어 촛불에 불을 붙여 소지를 올렸다, 소지 주인의 한 해 동안 안녕을 기원하며 소지가 거의 다 타들어 갈 때쯤 한껏 소지를 밀어 올리셨다. 그 소지가 높은 천장까지 훨훨 날아올라 가면 한 해 편안하고 좋을 것이라고 점을 치고, 그게 날아오르지 못하고 맥없이 바닥으로 내리꽂으면 ‘아이고 큰일이네’ 하시며 더 간절하고 격렬하게 손바닥을 비비시며 축원했었다.
부엌 샛문을 열고 그걸 구경하던 나는 내 차례가 되면 몹시 긴장되었고, 내 소지가 부엌 천장에 닿기를 바랐다. 아버지, 오빠 언니보다 더 내 소지가 높게 올라가기를 기도하며, 마지막 소지가 조금 남았을 때 내평댁 할머니가 더 높이 내 소지의 마지막을 밀어 올려주지 않아 애가 탔다.
바람을 올리는 날이 다가오면 할머니와 엄마는 절구에 쌀을 빻아 체에 곱게 내려놓고, 치자 열매나 붉은색을 내는 열매들을 따로 그릇에 넣어 색을 내셨다. 저녁이면 그 색깔 물을 끓여 준비해 둔 쌀가루에 부어 익반죽을 해 동글납작하게 모양을 내셨다. 종지만 하게 모양을 낸 떡을 끓는 물에 데쳐 바람떡을 만들었던 것 같은데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그걸 찌면 되는데 왜 굳이 끓는 물에 넣어 데쳤을까? 바람떡을 먹은 기억이 없으니 맛도 모르겠다. 혹시 그 떡은 사람이 먹으려고 만든 게 아니라 귀신을 먹이려고 만든 것은 아니었는지 모를 일이다. 엄마한테 물어봐야겠다.
그렇게 올린 바람 덕분이었는지 해마다 나는 무탈하게 자랐고, 이젠 오십이 넘었다. 지금은 누구도 나를 위해 바람을 올려주지 않지만 내 유년기 할머니, 어머니께서 올려주신 바람 덕분에 지금도 이렇게 잘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 고마워진다. 또한, 내평댁 할머니께 내 소지를 더 높게 올려달라 떼를 쓰는 바람에 내 소지는 늘 천정까지 닿았으니 그 덕분에 삶의 고비마다 만났던 어려움도 구렁이 담 넘듯 슬쩍 넘어가 주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음력 2월이면 거의 양력으로 3월이나 4월 초쯤이 된다. 유난하게 바람이 센 시기다. 봄이다 싶어 서둘러 봄옷을 꺼내 입고 외출이라도 할라치면 감기 걸리기 딱 좋은 계절이고, 대부분 대형 산불도 이 계절에 많이 발생하고 진화도 어렵다. 한 해로 치면 최대 격변기다. 새로 태동하는 설렘이 많은 만큼 몸살도 이 시기에 대부분 앓는다.
어느 해 이른 봄. 산책 중에 바람이 왜 이리 정신없이 부는지 모르겠다며 구시렁대는 내게 어머니께서는 봄에 바람이 미친 듯이 불어 나무의 잔가지를 흔들어줘야 뿌리에서 줄기로 물이 올라간다고 하셨다. 우리 어머니는 모르시는 게 없다. 봄에 새잎이 돋는 그것 중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을 우리 중에는 어머니만 구분할 줄 아셨고, 산초기름에 지네를 넣어 삭히면 피부병에 좋다는 것도, 내가 두드러기가 나기 시작하면 문어를 삶아 목욕시켜 두드러기를 가라앉히는 것도 우리 어머니만 알고 계셨다. 그래서 나는 내 성장의 전부는 우리 어머니에게서 왔다고 생각한다.
나만 그럴까?
해마다 봄이 되면 바람이 미친 듯이 불어 나무들을 성장시켰듯, 나의 할머니와 어머니는 바람을 올려 나와 내 형제들의 안녕을 기도하셨고, 그 힘으로 우리 형제들은 건강하게 성장했다. 냉기 가득한 이른 봄날 어둠 속에서 할머니와 어머니가 바람 올렸던 정성, 어느 법당의 보살님보다, 어느 성당의 기도 모습보다 간절했던 모습으로 오늘도 나는 무탈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