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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난 지금까지 뭘 한 걸까.

지쳤거나 좋아하는 게 없거나 by 글배우

by 김모음



**이번 책은 청소년 대상 책은 아닙니다. 청소년 추천도서 위주의 에세이를 쓰는 연재이지만 이번 호는 별책부록이라 생각해 주세요.**



무엇이든 할 수 있었지만 겁쟁이 었던 20대, 겁쟁이로 살아온 대가를 치렀던 30대에 글배우의 책을 읽었더라면 어땠을까. 지금의 나와는 조금 다른 나로 살아가고 있을까. 지금과는 달리 ‘살아간다’는 의미를 깨달았을까.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실패가 몸서리치도록 싫었다. 물론 실패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난 실패에 특히 예민했다. 작은 실수 때문에 먼 길 돌아가는 것을 참을 수 없었고 뭐든 한 방에 끝내고 싶었다. 게으른 천성 때문에 두 번 일하는 걸 방지하고자 하는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실패 때문에 남들보다 뒤처지는 게 세상에서 가장 두려웠다. 뭐가 되든 상관없이 무언가가 빨리 되어야 했다. 그래서 항상 조급했다. 겉으로는 게으르고 느린 사람이었지만 내면은 항상 무언가로부터 쫓기고 있었다.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가야 했고 빨리 가기 위해서 중간에 실수는 용납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쉽고 빨리 갈 수 있는 길만 찾아서 다녔다.


그렇게 달려서 막연하게 저 정도면 괜찮겠다 하는 곳에 도착했다. 괜찮아야 하는데 그래도 불안했다. ‘지쳤거나 좋아하는 게 없거나’ 의 작가 글배우는 나를 몰래 본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당시 나의 모습을 정확하게 묘사했다.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지나치게 강한 사람, 열심히 해야 하는 건 아는데 열심히 하고 싶은 게 없어서 불안하고 미래가 걱정인 사람, 잘하고 있는데도 끊임없이 스스로를 낮게 보는 사람, 자신의 마음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 사람, 의욕적으로 하고 싶은 게 없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완벽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나 외의 다른 사람들은 다 완벽하게 보였고, 심지어 단점마저도 배부른 투정처럼 보였다. 나라는 사람은 가장 형편없었기 때문에 혹시나 그게 들킬까봐 전전긍긍했고 감추기 위해 나를 더 단도리했다.


그렇게 나와 닮은 점이 한 구석도 없는 사람과 결혼했다. 사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앞으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이 사람과 어떤 미래를 살고 싶은지 생각하지 않았다. 즉, 나는 전혀 성숙하지 않았고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단지 못난 모습 따윈 전혀 가지고 있지 않은 이 사람과 현실도피를 하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인생을 담보로 한 도박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외면했던 문제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처음엔 매력으로 다가왔던 다름이 시간이 지날수록 나를 힘들게 했다. 그래서 그 사람에게서 답을 찾으려 했다. 바뀌길 바랐고 백마 탄 왕자님처럼 뭐든 해 주길 바랐다. 그럴수록 외로워졌고 그때서야 나의 무지함을 깨달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제대로 된 사랑이 아니었다. 나 자신을 혐오하고 채찍질만 하며 살았는데 어떻게 타인을 제대로 사랑할 수 있겠는가. 예쁘고 멋진 걸 보면 설레는 마음, 가지고 싶단 마음이 사람에게 향하면 그게 사랑인 줄 알았다. 그리고 결혼이란 살아가면서 설레던 그 마음이 견고해지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어설픈 착각 속에 살던 어느 날, 평생에 걸쳐 차곡차곡 쌓아뒀던 돌탑이 무너졌다. 아등바등 살아왔던 그 대가가 고작 이건가. 고작 이런 결과를 보자고 남보다 5분 더, 남보다 한 문제 더, 남보다 한 번 더 했던 걸까. 허무했다. 하지만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내 미래에 대해, 나라는 사람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해보지 않은 대가였다. 내 인생이 아닌 남들 눈에 좋아 보이는 인생을 산 결과는 쓰라리게 아팠다. 글배우는 사랑이란 그 사람이 어떤 모습이라도 곁에 함께 있어주는 것이라 했다. 현재 나는 물리적으로는 옆에 있지만 부끄럽게도 그 동기가 순수하다고 할 수 없다. 여러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타협하고 있을 뿐이다.


용기, 격려, 나의 마음, 의지, 시행착오, 집중. 글배우의 책을 몇 가지 단어로 추려보았다. 길게 살진 않았지만 지금까지 살아오며 내가 무시하고 간과했던 것들이다. 나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이고 어디서부터 고쳐나가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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