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경제학자의 이상한 돈과 세 자매 by 추정경
나는 경알못이다. 경제라고 하면 일단 머리가 아파오고 나와는 맞지 않는 분야라고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일단 돈 계산 하는 것이 귀찮다. 한 달에 얼마큼 절약을 하고 적금을 부어 만기일 때 찾아 그걸 종잣돈으로 해서 어딘가에 투자하고 이윤을 얻는 일련의 과정이 매우 복잡해 보인다. 나는 내 손에 돈이 들어오면 열심히 쓰다가 바닥이 나면 쫄쫄 굶으며 산다. 철도 없고 미래도 없다. 이런 나에게 이 책은 센세이셔널 그 자체였다. 아, 돈이라는 것이 이렇게도 정의되고 통용될 수 있구나 하는 신세계를 경험한 느낌이었다.
자신들만의 화폐와 경제관을 가지고 사는 공동체, 돈나무 공동체가 이 소설의 배경이다. 그들은 그들이 사는 공동체 안에서 재노시라는 화폐를 사용한다. 은행도 있고, 빵집도 있고, 꽃집도 있고, 학교도 있다. 공동체가 하나의 작은 마을이기에 그 안에서 의식주가 가능하다. 하지만 공동체 밖의 현실과도 소통을 해야 하기에 바깥세상의 화폐와 환전도 가능하다. 다만 재노시 화폐의 특징은 시간이 지나면 그 가치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 점은 현실세계의 화폐와 180도 다른 설정이다. 현실의 돈은 인플레이션 현상이 계속되지 않는다면 그 가치가 지속되거나 올라간다. 우리가 돈을 모으는 이유이다. 지금의 돈이 10년, 20년이 지나도 동일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므로 차곡차곡 모아 그 돈이 큰 덩어리가 되면 나와 내 가족이 행복하게, 안온하게 살 확률이 높아진다고 믿는다. 현실에서는 돈을 끝까지 놓지 않고 꽉 움켜쥐고 있는 자가 승리한다. 하지만 돈나무 공동체는 아니다. 돈에도 유통기한이 있고, 일정 기한이 지나면 그 돈의 가치는 떨어진다. 금리는 랜덤으로 정해지기에 은행에 장기보관한다 해도 내 재산이 얼마나 늘어날지 예측할 수 없다. 아니, 오히려 감가상환되기 때문에 내 재산은 줄어든다. 지금 이때, 돈을 써야 한다. ‘아끼면 똥 된다.’라는 말이 딱 맞는 상황이다.
이 책은 경제적인 측면뿐 아니라 평소에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쳤던 상식에 대해서도 되묻는다. 과연, 네가 생각하는 그것이 맞냐고.
상식이란 건 그냥 사람들의 편한 생각이야. 편하게 입고 벗을 수 있는 기성복 같은 거지. 다른 사람들이 결론 내어 준비한 생각대로 움직이면 얼마나 편하냐. 그 생각 그대로 입었다가 벗었다가.
나는 상식이란 사회 속에서 많은 사람들과 부딪히며 살 때 최소한으로 갖춰야 할 예의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 상식이 돈의 분야에선 ‘돈은 오래 가지고 있으면 이자가 붙는다’가 되어 모든 사람들의 머릿속에 당연한 법칙처럼 굳어졌다는 말에 아차 싶었다. 나도 그 상식에 대해선 ‘지구는 둥글다’라는 불변의 법칙과 동일시할 정도로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돈은 돌고 돈다라고 해서 돈이다. 사람들이 써야 돈은 그 역할을 다 하는 법인데 어딘가에 갇혀서 갇힌 대가로 돈을 얻는다면 직무태만이다. 벌금을 내야 한다. 이런 직무태만이 늘어난다면 경기는 둔화되며 성장은 멈출 것이다. 우리 사회의 경제가 막힘없이 잘 돌아가려면 돈이 잘 돌아야 한다. 돈을 안 쓰면 손해라는 규칙을 적용시킨다면 너도나도 열심히 돈을 쓸 것이다. 물론, 그 정도는 잘 조절해야 할 것이다. 시중에 돈이 너무 많이 돌면 인플레이션이 생길 수도 있다. 아마 여기에서 정부가 해야 할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경제이론과 더불어 사람을 이해하며 산다는 것에 대해서 작가는 ‘기다림’을 이야기한다. 사람을 만나자마자 처음부터 이해를 받고, 이해를 하는 작업이 되는 건 아니다. 사람은 낯섦에 대해 본능적으로 경계를 한다. 동시에 호기심도 생긴다. 그 마음과 눈빛을 경계하거나 거기에서 상처받지 말라고 한다. 낯섦과 호기심이 익숙함으로 자리 잡을 때까지 그들에게 시간과 기회를 주라고 말한다. 누구에게나 시간은 필요하다. 어쩌다 실수를 하더라도 만회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줘야 한다. 돈나무 공동체도 실수와 실패가 있었기에 만들어진 단체이다. 노란 대문 할머니와 이사장 할아버지의 인생에 실패가 없었더라면 이 사회의 시스템에 대해 당연하게 순응했을 터이고 다정이네 세 자매와 공동체 사람들은 각자의 인생을 아직도 힘겹게 살아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도 내 인생의 크고 작은 실패들이 있었기에 돈에 대해 거꾸로 생각해 보았던 이 책이 더 와닿았다. 감가상환 화폐라는 것이 현실화되기엔 어려워 보이지만 발상의 전환을 해 볼 수 있게 해 준 이 책이 너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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