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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더 높이, 더 멀리 날 필요는 없다.

갈매기의 꿈 by 리처드 바크

by 김모음




인간이 사는 동안 추구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작가는 현실에 급급해하지 말고 그 너머의 어떤 것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여타의 갈매기들은 현실을 살았지만 조나단 리빙스턴은 항상 더 멀리 더 높은 곳을 바라보았고, 결국 현실 그 너머의 무엇을 깨달았고 자유로워졌다. 작가는 우리에게 좀 더 멀리 바라보라고 한다. 우리는 자유롭게 살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자유를 추구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힘을 빼고 유연해져야 한다.


처음 조나단은 무리에 어울리지 못하는 ‘아싸’였지만 비범해 보였다. 다른 갈매기 무리들은 자신들과 다른 조나단에 거부감을 느낀다. 무리는 그를 혼자 만들었고 배척했다. 갈매기 무리처럼 인간도 자신들과 다른 것에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가진다. 나 혼자의 힘으로는 안되니 무리를 만들어 수 적으로 우위를 점하고 철저히 그를 혼자 만들고 배척시킨다.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은 여느 갈매기와 달랐다. 다른 갈매기들은 먹고사는 것에만 급급했다면 조나단은 일차적인 본능 그 너머의 것을 갈망했다. 자신에게 주어진 것의 최대가 무엇인지, 삶의 궁극적 목적을 찾기 위해 수련했다. 끊임없는 단련의 결과 그는 열반에 올랐다. 신이 되었다. 그곳은 평화로웠다. 배움 그 자체를 즐기고 사랑하는 그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었다. 하지만 그는 문득 자신을 비웃던 대다수의 갈매기들이 생각났다. 이 좋은 것을 나만 누릴 수 없었다. 그들도 이 환희와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다. 깨닫게 해주고 싶었다. 그 순수한 사랑의 마음 하나로 다시 세상에 돌아왔다. 그래도 처음 혼자였던 것과는 달리 자신과 같은 꿈을 가진 아웃사이더 갈매기들이 있었다. 플레쳐는 그들 중 처음 만난 갈매기였다. 플레쳐는 조나단이 처음 비행을 갈망하던 그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각고의 수행 끝에 플레쳐는 비행의 아름다움과 자유를 맛볼 수 있었다. 그러다가 불의의 사고로 플레쳐는 절벽에 부딪히게 되지만 부활한다. 조나단은 플레쳐에게 의미심장한 말들을 남기고 떠난다.


조나단과 플레쳐의 이야기는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내용이다. 하느님과 예수님의 이야기이다. 물론 조나단이 고차원적 존재가 된 과정처럼 성경에서 하느님이 어떻게 하느님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플레쳐의 이야기는 예수의 부활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청소년 필독서로 꼽히는 책인데 우화의 형식을 빌려 꿈을 향한 도전이 실패할 수도 있지만 끊임없이 하다 보면 결국 그 목표에 이르게 된다는 용기를 심어준다. 하지만 난 청소년이 아니기에 그런 건전한 메시지보다는 기독교적인 색채를 강하게 느꼈다. 우화를 통해 하느님과 예수님의 일화를 쉽게 알려주려는 의도로 보였다. 그리고 기독교적인 선민사상까지도 느낄 수 있었다.


조나단은 평범한 갈매기가 아니었다. 많은 갈매기들의 멸시와 무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의 일을 했다. 결국 그는 해냈다. ‘어나 더 레벨’이 되었다. 그렇다면 다수의 평범한 갈매기들은 어떻게 되었나? 여전히 오늘 하루의 먹을 것을 찾는 데에 급급하다. 평범한 인간들의 모습이다. 우리는 모두 하루를 살아내는 데 급급하다. 저녁이 되면 오늘 하루도 견뎌내었구나 하며 맥주 한 캔으로 나 자신을 위로하며 대견해한다. 각자에게 하루의 시작은 큰 도전이다. 혹시나 오늘의 양식을 놓치진 않을까 하는 긴장의 연속이다. 더 멀리 보고 더 높이 나는 조나단에 비해 보잘것없고 어리석어 보이는 갈매기떼이지만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최선의 삶을 살아내고 있다. 사람도, 갈매기도 먹이를 구하지 못하면 결국 죽는다. 조나단은 먹이 따위엔 관심 없는 존재로 그려졌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동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꼭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야지만 대단한 건가? 먹고살아야 한다는 의지로 하루하루 버티는 존재들은 이에 비하면 하찮다고 누가 그랬나? 생명을 이어나가고자 하는 행위는 당연한 것이고 존중받아야 한다. 오히려 조나단의 행위는 망상일 수도 있으며 생활력 따위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물론 조나단 같은 캐릭터가 현대사회에서 ‘성공’의 비결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를 보고, 그 하나에만 집중할 수 있는 팔자 좋은 경우란 흔하지 않다.


모두가 성공한다면 그것은 성공이 아니다. 당연한 것이다. 희박하기 때문에 성공이라는 단어가 붙을 수 있다. 우리가 조나단같이 한다고 해서 모두가 성공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이다. 나는 여전히 살아가야 하고 한 번뿐인 내 삶을 안전하고 평화롭게 영위하기 위해선 조나단 같은 도박은 금물이다. 다수의 갈매기가 자신의 본능에 따라 안전하게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갈매기종은 세대를 이어 존속할 수 있다. 모두가 조나단과 같이 고차원의 세계를 꿈꾸며 살아간다면 삶의 평범함은 사라지게 될 것이며 과연 갈매기라는 종이 몇 백 년 후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하찮아 보이는 다수의 평범함이 반짝거리는 하나의 성공보다도 더 큰 힘을 가질 수 있다. 평범한 갈매기들에게도 힘을 빼고 유연한 시선을 건네보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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