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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동급생

동급생 by 프레드 울만

by 김모음




그 존재만으로도 빛나는, 함부로 대할 수 없는 동경의 대상. 등장만으로도 좌중을 압도하며, 어떤 위압감과 부담감에 말 걸기도 힘든 전학생. 책 ‘동급생’에서 이 모든 수식어는 콘라딘을 가리킨다. 주인공 한스는 지금의 말로 표현하자면 자발적 아웃사이더이다. 또래보다 높은 인문학적 소양을 가졌기에 다른 동급생들이 유치하게 보였을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 다른 아이들과 거리를 두고 지내는 한스마저도 콘라드에게는 그 도도함이 통하지 않았다. 콘라딘과 말을 섞어보지도 않았음에도 저절로 찬양이 나왔고, 그의 눈에 들기 위해 방법을 고민했다. 사실 제 3자인 나의 눈으로 봤을 때, 콘라딘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그 자신이 빛난다기보다는 집안의 후광으로 빛나는 사람이다. 실제로 콘라딘은 불행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종교적 한계에 부딪혔을 때 사역하는 종교인들이 늘상 하는 변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우매한 중생들 중 한 명이다. 한편 한스는 그 존재 자체가 빛나는 사람이다. 내가 그 학교의 동급생이었다면 콘라드보다는 한스에게 더 호기심이 생겼을 것 같다. 아직 10대이지만 웬만한 어른 못지않은 비판적인 사고를 가졌고, 문학의 아름다움을 향유할 줄 아는 지식의 깊이가 부럽다. 그리고 한스가 멋진 청소년이 된 배경에는 아버지의 인품과 가치관이 뒷받침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한스의 부모님은 종교적으로 유연한 사고를 가지신 분이었다. 신보다는 인간을 사랑하고, 현실적이고 이성적이다. 자신도 유대인이지만 유대인들의 유난스러움으로 비롯된 이스라엘의 건국에 혀를 내둘렀고, 다른 민족과 동화되어서 살아가야 함을 강조했다. 역시 훌륭한 부모 밑에서 올바른 자식이 자라는 법이다.


나 또한 어떤 사람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의 눈에 띄고 싶다는 마음을 가진 적이 있다. 바로 나의 남편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느꼈던 감정이었다. 실제 얼굴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회사 동료였던 사람에게 알 수 없는 동경과 부러운 감정이 생겼다. 나라는 인간을 180도 딱 반대로 뒤집으면 나오는 다른 세상의 사람이었다. 가만히 있어도 사람들의 환심을 사는 인싸에 조각 같은 외모, 뛰어난 언변,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태생부터 높은 자존감 등 나와는 다른 종족의 사람처럼 보였다. 나는 저 사람이 원래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을 인위적으로 만들었어야 했고, 만든다고 해도 어설펐다. 외모는 다음 생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였다. 왠지 저 사람과 친해지면 나도 그 후광의 영향을 받아 잘난 사람이 될 것 같은 착각이 들었고, 그 사람의 눈에 들기 위해 주말에도 기꺼이 출근을 했다. 결국 나는 동경의 대상과 친해질 수 있었고, 그는 그의 인생에서 만난 여자 중 가장 후진 여자와 엮이게 되는 반전이 생겼다.

그의 인생은 나를 만나면서 우하향으로 달렸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사상’과 ‘가치관’ 적인 면에서 우상향을 향해 나아갔다. 남편은 기득권과 언론이 만든 사회가 아니라 진짜 세상이 어떤지,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진정으로 무엇이 필요한지를 아는 사람이었고 그것을 가려 볼 줄 아는 눈을 가졌다. 결론적으로 내가 관심 갖지 않으면 더 좋은 것이 있는 줄도 모르고 갇힌 세상에서 사는 바보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나는 아직도 틀에 박힌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언론이 떠드는 대로 받아들이기에 급급하지, 현상 뒤에 숨겨진 의도와 검은손을 감지해 내는 능력이 부족하다. 그럴 때마다 한 층 더 위에서 보고 본질을 파악해 내는 남편에게 존경심과 동시에 운명론적 피해의식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콘라딘도 한스에게 이런 감정을 조금은 느끼지 않았을까. 유대인을 혐오하는 어머니 밑에서 자란 콘라딘은 그 사고의 울타리에서 벗어나기 힘들었을 것이다. 한스의 박식함과 지혜로움을 부러워하지만, 무의식적으로 익숙함에 안주하고 가족의 뒤에 숨어버리는 비겁함을 지닌 콘라딘. 그리고 그걸 애써 변명하려는 처절함까지 나와 닮아있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알을 깨고 나왔다. 이 책의 반전이라 불리는 ‘히틀러 암살 음모에 연루, 처형’이라는 대목이 그는 자신을 뛰어넘었음을 말해 준다. 한스와의 관계에서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주변을 되돌아보았고, 무엇이 가치 있고 올바른지를 깨달았으며,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행동하였다. 나는 여전히 여기에 머물러 있지만 콘라딘은 승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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