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정의 by 글로리아 웰런
내 앞길에 대해서만 생각하던 시절, 정치는 관심 밖의 일이었다. 그저 그들만의 리그였다. 그런데 살다 보니, 정치는 주 6일제에서 주 5일제로 일하는 시간을 줄여주었고, 최대 1년의 육아휴직이 가능하도록 만들어 주었다. 물론, 이러한 결과는 많은 사람들의 눈물과 땀, 그들의 모든 것을 갈아 넣은 투쟁의 산물이리라. 소위 정치하는 사람들은 목이 터져라 외치는 사람들이 깔딱 고개를 넘기 직전, 자신들의 5년을 확보하기 위해 눈치 보며 의사봉을 내리친다. 그리고 나는 그 단물을 쪽쪽 빨아먹는다. 이렇게 혜택을 누리고 나서야 정치는 내 삶을 바꾸는 도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치란 한자로 나라를 다스리는 일을 뜻한다. 다스린다는 것은 어떠한 권력자가 갑의 위치에서 행한다는 뜻을 내포한다.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소수의 권력자가 다수의 민중을 지배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길었기 때문이라고 추측해 본다. 현대의 정치는 다수의 시민이 스스로 참여하여 국가와 개인을 꾸려나가는 일이다. 정치가는 자신을 지지하는 시민이 원하는 바를 실현화하는 사람이다. 시민들의 세금 중 일부가 그들의 월급이 된다는 사실에서 그들은 시민의 직원인 셈이다. 흥미롭게도 돈의 흐름으로만 따져본다면 현대뿐만이 아니라 그 이전의 고대, 중세 사회에서도 소위 권력자는 백성의 직원이었다. 하지만 정치가 소수 권력자의 영달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은 아마 인류가 공동체를 만들기 시작한 이래로 계속되는 폐해일 것이다.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에서도 정치의 폐해로 많은 사람들이 병들고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 그들의 삶은 추악한 권력자로 인해 완전히 붕괴되었거나,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나는 그들의 용기와 피의 대가로 정치의 이득을 조금 본 셈이다.
이 소설에서 실비아는 아르헨티나의 중산층으로 유복한 삶을 살고 있었다. 오빠 에두아르도는 자신이 배운 대로 불의를 외면하지 말고 바르게 고쳐나가야 한다는 정의감이 가득한 순수청년이다. 그렇게 그는 그의 가치관에 따라 군사정권 저항시위를 하다가 동료의 배신으로 인해 체포되었고, 감옥에서의 고문은 잔인했다. 혹독한 고문은 그가 세상물정 모르는 한낱 어린아이였다는 것, 모든 세상 사람들이 자신의 뜻과 같지 않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실비아는 오빠를 구하기 위해 정권의 실세 로페즈 장군의 아들 노베르토에게 접근한다. 노베르토는 한 마디로 망나니다. 생명에 대한 경외심 같은 건 없다. 자신들의 앞길을 가로막는 대중을 개, 돼지로 아는 추악한 인물이다. 그리고 이런 기형적인 인물을 만든 자가 권력자 로페즈 장군이다. 종종 문제 되고 있는 학교폭력 사건이 필연적으로 떠오른다. 고위 공직자의 고등학생 아들이 동급생들에게 학교폭력을 오랜 기간 행하고도 어떠한 제재도 받지 않았고, 심지어 입시에도 반영되지 않아 명문대에 입학했다. 아버지의 권력이 아들의 권력이 된 셈이다. 그들은 너무나 당연한 듯 권력을 남용했고, 그 어떤 죄의식도 갖고 있지 않다. 그리고 그 사실이 밝혀지기 전까지 너무나 뻔뻔하게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며 타인을 비판하기에 바빴다. 이 소설에서는 다행히도 노베르토의 엄마가 상식적인 사람으로 등장하고, 그로 인해 로페즈 장군은 실각하게 된다. 안타깝지만 이 부분이 현실과 소설의 차이점이다.
또한 이 소설에서는 권력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보여준다. 권력, 능력, 재력 중 하나만 가지면 나머지 두 가지는 자연스레 따라온다고 하는데, 그것이 권력이다. 멀쩡했던 사람이 정치인이 되어 권력을 잡으면 표독스럽게 변하는 이유가 바로 권력의 맛을 보았기 때문이다. 권력은 마치 마약과 같다. 일단 중독되면 웬만한 인간의 의지로는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나는 다를 것이라는 과대평가와 우월감으로 권력을 탐한다. 로페즈 또한 권력을 탐하는 자신의 부하에 의해 숙청되었다. 1970년대 아르헨티나 군사정권은 우리나라의 그 시절과 많은 부분이 닮아있었다. 하지만 차이점이라면 아르헨티나는 2000년대에 비록 늦었지만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권력자들에 대해 그 죄를 물었고, 그 결과 독재자들의 최후는 초라했다.
이번 글을 쓰면서 밀려오는 감정은 크고 많은데, 글로 쓰려니 문장 하나, 단어 하나조차도 쉽게 써지지가 않았다. 복잡한 감정을 명확한 정의와 정확한 강도로 표현하지 못하는 나의 미천한 능력에 답답했다. 현재 대한민국은 아르헨티나와 달리 아직 끝나지 않은 현재 진행형이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군사정권 시절 겪었던 고통에서 나오지 못하고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군사정권을 주도했던 세력은 이 나라의 대표 양당 중 하나로 굳건히 자리 잡고 있고, 그들의 편협한 사고방식은 기득권 층에 바이러스처럼 퍼지고 있다. 힘 있는 자에 짓밟히는 다수의 시민들이 너무 안타깝고, 힘 있는 자에 기생해서 연명하는 속없는 자들을 보면 짜증이 나고, 역사를 잊고 똑같은 실수를 하는 많은 대중을 보면 울화통이 터진다. 과거 어리석은 대중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피해 보는 나는 매일 억울해한다. 나보다 못한 이들이 다시는 나와 국가를 대표하는 실정이 반복되질 않길 마지막으로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