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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달린 소녀, 바통터치!

소녀, 조선을 달리다 by 이민숙

by 김모음





언제나 왜놈이 문제다. 예나 지금이나 일본은 우리를 가만히 두질 않는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그들이 10번을 넘어오면 우리는 10번을 다 밀어내고 이겨냈다. 참 징글징글하다. 그렇게 항상 지는데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넘보는 것을 보면 그들의 꺾이지 않는 마음 정도는 인정해 줘야 하는 것일까.


이 책의 주인공 길순이는 골목대장을 자처하는 대찬 아이이다. 여느 날처럼 비석 치기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다. 사람들의 피난길이 시작된 것이다. 사람들은 산으로 피신했다. 왜놈들은 마을에 불을 지르고, 산까지 쫓아왔다. 총소리와 비명소리를 뒤로 한 채, 길순이 가족과 용수할멈은 산속 깊은 뼝대쑥 숲 안으로 도망쳤다. 파발일을 하는 길순이 아버지는 지리에 눈이 밝았고, 언젠가 이런 일이 생길 것에 대비하여 아무도 모르게 뼝대쑥 숲 안에 작은 피신처를 마련해 두었었다. 그리고 피신처에서의 생활은 길순이가 열세 살이 될 때까지 계속된다. 그동안에도 길순 아버지는 파발 일 때문에 며칠 씩 집을 비우곤 했다. 어머니가 시름시름 앓다가 돌아가실 때도 아버지는 곁에 없었다. 길순이는 이런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하루는 아버지 몰래 뒤를 따라가던 중, 운 나쁘게도 저잣거리 왈패와 마주치고 만다. 길순이를 알아본 아버지는 왈패에게 맞아 다리를 다치게 되고, 길순이는 죄책감에 아버지가 전달해야 할 문서를 몰래 가지고 길을 나선다. 길순이의 첫 파발이었다.


길순이는 여정 중에 여러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굶주린 산적 떼, 왜인의 첩자, 문서를 빼돌려 한 밑천 잡으려는 파발꾼 등 시대만 다를 뿐 현재에도 다분히 존재할 만한 사람들이다.

굶주린 산적들은 한 때 나라를 위해 왜놈과 싸웠지만 남은 것은 망가진 몸과 멸시뿐이다. 우리나라의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이 연상되었다. 그들의 희생으로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하지만 우리가, 이 나라가 그들에게 어떻게 보답해 주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모진 고문으로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된 유공자들은 제대로 생계를 이어나갈 수 없었고, 그 자손들 또한 가난에 허덕이며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다. 그렇게 가난이 대를 이어갔다. 국가는 그들에게 감사하며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움을 줬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왜인의 첩자들, 그들은 지금까지도 존재하는 친일세력과 같다. 해방 이후, 해방의 영광은 독립운동가가 아니라 친일세력으로 넘어갔다. 미 군정의 간섭 아래 친일세력은 그 입지가 공고해졌으며 지금까지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심지어 나라의 기득권 세력이 되었다.

문서를 훔치려는 파발꾼에서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동료를 배신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 이기주의자가 보인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존재하는 자이다.


길순이는 길을 떠나 문서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여러 사람과 고충을 겪으며 세상을 배운다. 큰돈을 버는 것도 아닌 파발 일에 최선을 다하는 아버지를 예전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그 일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깨닫는다. 그리고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 당차고 지혜로운 길순이에게 흐뭇한 미소가 지어진다. 예상컨대 아버지가 그러했듯 길순이도 이후 훌륭한 파발꾼으로 많은 이야기와 약속들을 전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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