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을 함께 나누며

by 은기

현우는 예상보다 빠르게 회복세를 보였다. 다리에는 여전히 깁스를 하고 있었지만, 이제 휠체어를 타고 병실 안팎을 조금씩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얼굴에는 생기가 돌기 시작했고, 지수와 부모님을 향해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짓는 횟수도 부쩍 늘어났다.

"엄마, 수술도 잘 됐고 많이 괜찮아졌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청주로 내려가세요. 계속 이렇게 병원에 계시면 엄마도 힘드시고, 아빠도 혼자 계신데….”

현우가 어머니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부모님을 향한 걱정과 함께 이제는 자신은 괜찮으니 쉬시라는 당부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그래도 아픈 아들을 두고 어떻게 발걸음이 떨어지겠니.”

어머니는 아들의 손을 놓지 못하며 지수를 바라보았다.

"지수가 현우 퇴원할 때까지 매일 와주겠다고 말해도 아르바이트 끝나고 이곳까지 오는 게 얼마나 힘들지… 아휴… 게다가 6인실은 여러모로 불편할 텐데도 말이야.”

"어머님, 괜찮아요. 제가 오빠 옆에 있을게요.” 지수는 환하게 미소 지으며 현우 어머니를 안심시켰다.

그녀의 굳건한 마음에 어머니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그럼 내가 병원에 이야기해서 6인실 말고 2인실로 옮기자. 지수도 현우도 좀 더 편하게 있을 수 있도록. 그리고 아빠랑 번갈아 매주 주말에는 꼭 올라올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 어머니의 눈빛에는 아들을 두고 가는 미안함과 동시에 지수에 대한 고마움이 교차했다.


그렇게 현우는 2인실로 옮겨졌다. 현우가 옮긴 병실은 2인실이었지만, 다행히 옆 침대가 비어 있어 그는 마치 혼자만의 공간처럼 사용할 수 있었다. 낮 시간은 지수가 그의 집에서 가져다준 노트북을 펼쳐 건축 설계 공모전 준비를 하거나, 머릿속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스케치북에 옮기거나, 두꺼운 전공 서적을 읽으며 보냈다.

손은 바쁘게 움직였지만, 그는 시계만 자꾸 확인하며 지수가 올 시간을 기다렸다. 휴대폰을 매만지작거리며 ‘오늘 좀 일찍 올 수 있어?' 하고 메시지를 보낼까 말까 수없이 망설였다. 그녀의 발소리, 그녀의 목소리가 이 적막을 깨뜨려주기만을 바랐다. 혼자서는 채워지지 않는 공간이었다.

지수는 아르바이트가 끝나기 무섭게 곧장 병원으로 향했다. 그의 옆자리를 지키고, 때로는 그의 손발이 되어주는 것이 그녀의 새로운 일상이 되었다. 병실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그의 상태를 눈으로 살폈다. 다친 다리 때문에 자세가 불편하지는 않은지, 물컵이 비어 있지는 않은지, 필요한 것이 있어도 말하기 힘들어하지는 않는지, 그의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확인했다.

그런 지수의 모습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는 고마움과 애정이 가득했지만, 동시에 자신 때문에 그녀가 힘든 시간을 보내는 것은 아닐까 하는 미안함이 역력했다.

"지수야… 아르바이트 끝나고 오면 피곤하고 힘드니까 이런 거 하지 마. 그냥… 옆에만 있어줘. 네 얼굴 보는 것만으로도 나한테는 제일 큰 위로고 힘이야.” 그의 목소리에 진심 어린 걱정이 묻어났다.

지수는 현우의 걱정에 미소 지었다. "아니야, 오빠. 하나도 안 힘들어.”

현우는 손을 들어 지수의 뺨을 부드럽게 감싸고 엄지손가락으로 쓸어내렸다.

그의 따뜻하고 단단한 손길이 지수의 얼굴에 닿자, 그녀는 그의 손에 살짝 기대며 눈을 감았다. 그녀는 이 순간 그가 느끼는 고통과 불안이 조금이나마 없어졌으면 하고 생각했다.

"지수야, 오늘 하루는 어땠어?” 현우가 물었다.

지수는 현우의 손길을 느끼며 편안하게 아르바이트에서 있었던 사소한 일들, 친구들과 나눈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현우는 지수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때로는 까르르 웃고, 때로는 진지하게 공감하였다. 현우는 지수와 대화하면서도 끊임없이 그녀에게 손을 뻗었다. 지수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주거나, 손을 잡고 손가락을 얽어 만지작거리거나, 볼을 쓰다듬다가 불쑥 짧게 입맞춤했다. 그는 지수가 자신의 곁에 있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확인하고 싶어 하는 듯했다.

"지수야, 나는 지금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정말 행복해.”

현우가 지수의 손등에 길게 입맞춤하며 나직이 속삭였다.

지수는 현우의 적극적인 애정 표현이 싫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좋았다.

사고 이후 그의 아픈 모습을 보며 가슴 졸였던 만큼, 이렇게 그의 온기를 느끼고 그의 애정을 확인하는 모든 순간이 소중했다. 하지만 동시에 언제 간호사 선생님이나 병원 관계자가 예고 없이 문을 열고 들어올지 몰라 마음이 늘 조마조마했다. 그래서 그의 거침없는 행동 하나하나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현우는 오히려 지수의 조심스러운 반응이 귀엽다는 듯 더욱 능글맞게 애정을 표현했다. 지수가 혹시라도 간호사 호출 벨이라도 누르려고 손을 뻗을라치면, 현우는 재빨리 그녀의 손목을 잡아 자신의 쪽으로 확 끌어당겨 짧지만 강렬하게 입을 맞추기도 했다. 마치 ‘움직이면 키스한다'고 경고하는 듯.

"오빠!” 지수는 놀라서 현우의 가슴을 두 손으로 살짝 밀었지만, 그의 얼굴에는 이미 목표 달성 후의 장난스러운 승리의 미소가 걸려 있었다.

"왜… 우리 둘밖에 없는데 뭐 어때서?” 현우는 두 팔로 지수를 품에 안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의 품은 따뜻하고, 사고 전과 다름없이 단단했다. 지수는 현우의 품에 안겨 그의 안정적인 심장 소리를 들었다. 간호사가 들어올까 봐 여전히 불안했지만, 그럼에도 이러한 현우가 지수는 너무 좋았다. 그의 온기, 그의 심장 소리가 그녀의 불안감을 조금씩 녹여주었다.


밤이 깊어지고 지수가 집에 갈 시간이 되자, 현우는 아쉬움 가득한 목소리로 그녀를 붙잡았다.

"지수야… 오늘 밤… 여기서 같이 자고 가면 안 돼?” 그의 눈빛에는 헤어지기 싫은 아이 같은 투정과 함께, 병실의 길고 외로운 밤을 혼자 보내고 싶지 않다는 진심 어린 애원이 섞여 있었다.

"음… 오빠 오늘 하루만 자고 갈게. 내일 아르바이트 안 가니까. 그럼 난 저기 보호자 침대에서 잘게.”

지수는 구석에 접혀 있는 보호자용 간이침대를 가리키며 말했다.

현우는 지수의 말에 입술을 삐죽 내밀며 귀여운 투정을 부렸다.

"치이… 지수야…. 나 아프잖아. 근데 보호자 침대에서 자고 간다고? 여기 아무도 없는데? 여기서 같이 자자. 옆에 네가 있으면 잠이 잘 올 것 같단 말이야…” 현우는 자신의 침대를 두드리며 말했다.

그의 능숙한 투정에 지수는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아무리 말해도 오빠 침대에서 같이 자는 건 안 돼. 내가 오빠 옆에서 자면 오빠가 너무 불편할 거야. 그리고 간호사 선생님 오시면 어쩌려고?”

지수는 현우의 침대 옆에 앉아 그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현우는 지수의 손길을 느끼며 웃음을 지었다.

"그럼… 퇴원하고 나서는? 같은 침대에서 자 줄 거야?”

그의 목소리에는 은근한 기대감이 가득했고, 그의 눈빛은 장난스럽게 빛났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순진한 얼굴로 가장 도발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 같았다.

"음… 퇴원하는 날… 그날은… 오빠 침대에서 같이 자자.” 그녀의 얼굴에는 장난스러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지수의 예상치 못한 ‘깜찍한 선언'에 현우는 순간 숨을 멈췄다. 그의 눈이 놀라움으로 동그랗게 커졌다.

그는 말을 잇지 못하고 지수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봤다.

"진짜? 와… 너 진짜… 정말 너 땜에… 나는…!”

현우는 감탄사만 내뱉다가 이내 장난기 가득한, 혹은 사냥감을 발견한 늑대 같은 눈으로 지수에게 물었다.

"근데 지수야… 나… 착한 늑대 될 자신 없는데… 괜찮겠어?”

현우의 능글맞지만 매력적인 질문에 지수는 다시 한번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장난스러운 눈빛과 목소리에서 앞으로 펼쳐질 ‘퇴원하는 날의 밤'이 얼마나 뜨겁고 달콤할지, 그리고 그 밤이 자신들의 관계를 얼마나 더 깊은 곳으로 이끌어갈지 분명하게 짐작할 수 있었다.

"내가 정말 오빠 때문에 못 산다… 나도 착한 여우 될 생각 없거든요!”

지수는 그의 코를 살짝 찌르며 크게 웃었다.

아픈 병실이었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그 어떤 공간보다 따뜻하고, 달콤하고, 그리고 은밀한 기운이 감돌았다. 아픔을 함께 나누는 시간 속에서, 그리고 밤이 깊어지며 나누는 솔직하고도 아찔한 대화 속에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 얼마나 소중하고, 그리고 얼마나 강렬하게 끌리는 존재인지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퇴원 후, 두 사람에게는 병실에서의 조심스러운 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설렘과 기대감으로 가득 찬 또 다른 밤이 기다리고 있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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