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수가 현우와 재회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병실 문이 다시 열렸다. 현우의 부모님이었다.
아들의 사고 소식에 놀라 청주에서 급히 운전하고 오신 모습이 역력했다.
그들의 얼굴에는 피곤함과 함께 아들에 대한 깊은 걱정이 가득했다.
"현우야! 세상에, 이게 무슨 일이야!” 현우의 어머니가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내며 아들에게 달려왔다.
그녀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고, 손은 사정없이 떨렸다. 아버지 또한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침대 곁으로 다가왔다.
"엄마, 아빠. 저 괜찮아요.” 그는 희미하게 웃었지만 목소리는 여전히 힘이 없었다.
어머니는 현우의 붕대 감긴 다리를 보고는 다시금 눈물을 쏟아냈다.
"괜찮긴 뭐가 괜찮아! 이렇게 다쳐놓고! 내가 그러게 제발 그런 위험한 건 하지 말랬잖아!”
그녀는 울먹이며 말했다.
그때, 현우의 아버지가 지수를 발견했다. 따뜻하고 인자해 보이는 눈빛이었다.
"자네가 현우 여자친구 지수 양인가? 현우한테 지수 양 이야기 정말 많이 들었네. 이렇게 만나게 되어서는 안 되는데… 우리보다 먼저 도착해 현우 녀석 옆을 지켜줘서 정말 고마워요.”
어머니 또한 눈물을 훔치며 지수에게 다가와 손을 따뜻하게 잡았다.
"정말 고마워요, 지수 양. 현우 녀석이 이렇게 예쁜 아가씨를 꽁꽁 숨겨두고 있었네. 늘 한번 보고 싶었는데… 우리 아들 녀석 많이 놀랐을 텐데, 지수 양이 옆에 있어 줘서 정말 다행이야.”
"아니, 엄마! 아빠! 둘 다 왜 그래! 지수 불편하게…”
현우는 얼굴이 살짝 붉히며 민망해했다.
지수는 현우의 부모님께 고개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현우 오빠 여자친구 최지수라고 합니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제가 너무 놀라서 옷차림이 좀….” 지수는 자신의 행색이 부끄러운 듯 말을 흐렸다.
어머니는 지수의 손을 토닥이며 말했다.
"괜찮아요, 지수 양. 현우 사고 소식 듣고 얼마나 놀랐겠어요? 아이고, 지수 양이 얼마나 울었으면 눈이 다 빨갛네.” 어머니는 현우를 힐끗 쳐다보며 아들이 여자친구를 울린 듯이 타박했다.
그녀의 따뜻한 손길과 진심 어린 감사가 현우 부모님을 갑작스럽게 뵙게 되어 얼어붙었던 지수의 마음을 녹였다. 현우의 부모님은 아들에 대한 걱정 속에서도 지수를 향한 따뜻한 관심과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자정이 넘어선 시간, 현우 어머니는 지수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지수 양도 오늘 많이 힘들었을 텐데 이제 집에 가서 쉬어요. 내일부터 학교도 가야 할 텐데…” 라고 말했다. 그리고 직접 병원 밖으로 나가 택시를 잡아주었다.
지수는 연신 감사하다는 인사를 건네며 차에 올랐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현우 어머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지수는 현우에게 내일 학교 끝나고 다시 오겠다는 짧은 메시지를 보냈다.
학교 수업이 끝나자마자 지수는 곧장 병원으로 달려왔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현우 부모님은 담당 의사 선생님을 만나러 가신 듯 잠시 자리를 비운 상태였고, 병실에는 현우 혼자 침대에 누워 있었다.
지수는 현우의 침대 곁으로 다가가 그의 얼굴을 살폈다. 그의 창백한 얼굴과 힘없이 감긴 눈꺼풀, 핏기 없는 입술은 여전히 그녀의 심장을 저리게 했다.
"오빠, 몸은 좀 어때? 아픈 데는 없어? 부모님은 어디 가셨어?”
그녀의 목소리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현우는 지수의 목소리에 힘겹게 눈을 떴고, 그녀의 얼굴을 보자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병실 문이 열리고 현우 부모님이 돌아오셨다.
"현우야, 의사 선생님께서 수술이 아주 잘 됐다고 하시더구나. 이제 회복만 잘 하면 된다고 하네.”
어머니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아들의 손을 잡았다. 아버지 또한 현우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현우야, 아빠는 직장 때문에 오늘은 청주로 다시 내려가 봐야 할 것 같구나.
주말에 다시 올라올 테니 그때 보자. 그리고 엄마도 같이 내려갔다가 올 거야.”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현우에게 말했다.
"응, 엄마도 집에 가서 네 필요한 물품이랑 옷가지 좀 챙겨서 저녁때 다시 올게.
네가 좋아하는 반찬도 좀 해올까?”
어머니는 현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지수를 바라보았다.
"지수야, 엄마 돌아올 때까지 현우 옆에 좀 있어줄 수 있어? 아무래도 혼자 있으면 심심하고 불편해할 것 같아서…” 그녀의 눈빛에는 미안함과 간곡한 부탁이 담겨 있었다. 지수는 현우의 부모님께 환하게 미소 지었다.
"네, 어머님. 걱정 마세요. 제가 오빠 옆에 있을게요.”
그녀의 대답에 현우는 물론이고 부모님 또한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현우 부모님이 병실을 나선 후, 병실에는 다시 조용한 공기가 흘렀다. 지수는 현우의 손을 잡고 따뜻한 온기를 나누었다. 지수는 학교에서 있었던 일, 친구들과 나눈 이야기를 현우에게 들려주었고, 현우는 지수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함께 웃고 공감했다. 그의 창백했던 얼굴에 조금씩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저녁때쯤, 병실 문이 다시 열리고 건장한 체격의 남자 셋이 들어섰다. 현우와 함께 암벽등반을 갔던 친구들이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걱정이 역력했지만, 현우의 비교적 안정된 모습에 안도하는 빛이 스쳤다.
"야, 지현우! 너 이 자식, 사람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다!”
친구 중 한 명이 현우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그러게, 이 정도면 병문안 오는 게 아니라 그냥 죽을 뻔한 거 아니냐? 식겁했다, 식겁했어!”
또 다른 친구가 거칠게 현우를 타박했지만, 그들의 눈빛에는 깊은 우정이 담겨 있었다.
친구들은 현우의 사고 경위를 다시 한번 자세히 물었고, 현우는 담담하게 그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들은 현우의 다친 다리를 보고 걱정스럽게 혀를 찼고, 한동안 사고 상황과 앞으로의 재활에 대해 진지한 대화를 나누었다. 지수는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현우의 취미가 얼마나 위험한지 다시 한번 실감했지만, 동시에 현우와 친구들 사이의 끈끈한 유대감도 느낄수 있었다.
친구들이 돌아간 후, 밤늦게 현우의 어머니가 필요한 물품이 담긴 가방과 정성껏 준비한 반찬들을 가지고 병실로 돌아왔다. 이미 잠들어버린 현우의 얼굴을 어머니와 지수는 나란히 서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나직이 속삭였다.
"아휴, 이 녀석… 이젠 정말 괜찮겠지?” 지수는 어머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현우의 손을 살포시 잡았다. 따뜻한 그의 손길이 느껴졌다.
"그럼요. 이 정도 다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어요.”
어머니는 지수의 손을 마주 잡으며 따뜻하게 토닥였다. 병실 안에는 두 여인의 잔잔한 숨소리와 함께, 아들을 향한 깊은 사랑과 안도가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날 밤, 병실의 희미한 불빛 아래, 현우의 어머니와 지수는 말없이 서로에게 깊은 유대감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