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치 못한 사고

by 은기

캠퍼스의 푸른 잎들은 어느새 짙은 녹음으로 변해 있었고, 교정 곳곳에 심어진 배롱나무들은 붉은 꽃망울을 터뜨릴 준비를 마친 채 숨죽여 서 있었다. 며칠 지나지 않아, 마치 팝콘이 터지듯 일제히 만개한 배롱나무 꽃들이 캠퍼스를 화려하게 수놓으며 본격적으로 숨 가쁜 여름의 시작을 알렸다.

여름의 활기 속에서, 두 사람이 함께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현우가 불쑥 자신의 취미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처음에는 가볍게 등산이나 자전거 타기를 즐긴다고 말했지만, 대화가 깊어질수록 그의 취미 스케일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수야, 나 사실… 이번 주말에 암벽등반 하러 가.”

현우가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암벽등반? 위험하지 않아? 혹시 떨어지기라도 하면…!”

지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막연한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물었다.

"하하, 안전 장비 다 하고 전문가랑 같이 하니까 괜찮아. 그리고 꼭대기 올라가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진짜 짜릿해. 세상과 단절된 고요함 속에서 오로지 나 자신과 바위, 그리고 다음 동작에만 집중하는 순간. 두려움을 직면하고 한 걸음씩 오를 때마다 불가능을 정복하는 기분이랄까?

세상이 다 내 발아래 있는 것 같고, 일상의 무게는 그제서야 비로소 가벼워지는 것 같아. 그때 난 내가 살아있음을 느껴.”

현우는 눈을 빛내며 말했다.

현우는 암벽등반 외에도 번지점프, 패러글라이딩 등 다양한 익스트림 스포츠에 도전해봤다고 덧붙였다. 그의 목소리에는 단순한 즐거움을 넘어서, 한계를 시험하고 내면의 나약함을 극복하려는 깊은 갈망과 모험에서 오는 성취감이 가득했다.

그의 이야기에 지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녀에게 그것은 너무나 낯설고 아슬아슬한 세계였다.

현우는 지수의 복잡한 눈빛을 읽었는지, 부드럽게 웃으며 그녀를 안심시켰다.

"너무 걱정하지 마, 지수야. 나 그렇게 무모한 사람 아니야. 철저하게 준비도하고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면서 행동해. 그냥… 새로운 경험을 통해 나 자신을 더 깊이 알고 싶고, 내 안에 어떤 용기와 강인함이 숨겨져 있는지 시험해보고 싶은 마음이랄까? 어쩌면, 세상에 너무 익숙해지는 것이 두려워서 더 낯선 곳으로 나를 자꾸 떠미는 것 일 수도 있고.”

그의 설명은 설득력 있었지만, 지수는 여전히 그의 익스트림 취미가 그려내는 아슬아슬한 풍경 앞에서 완전히 불안감을 놓지 못했다.

"지수야, 이번 주말에 같이 해볼래? 생각보다 재미있어!”

지수는 그의 제안에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오빠. 암벽등반이라니!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손에 땀이 나고 다리가 후들거려.”

현우는 지수의 솔직한 반응에 실망하기보다 오히려 귀엽다는 듯 활짝 웃었다.

"알았어. 그럼 다음에 지수가 재미있어 할 만한 것을 찾아서 함께 즐기자.”

그의 따뜻한 미소에 지수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떨쳐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현우가 암벽등반을 간다고 말한 주말, 지수는 여느 때처럼 집에서 과제에 몰두하고 있었다. 현우는 아침 일찍 출발했다며 안전하게 잘 다녀오겠다는 짧은 메시지를 보내왔고, 지수는 그의 안전을 진심으로 빌며 조심해서 다녀오라는 답장을 보냈다.

시간은 흘러 오후 늦게까지 과제에 파묻혀 있는데,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액정에 뜬 모르는 번호를 보는 순간 심상치 않은 불안감을 느꼈다.

"여보세요?” 지수는 마른침을 삼키며 조심스럽게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로 떨리고 다급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수십 년은 늙어버린 듯 낯선 목소리였다.

"저… 오늘 현우랑 같이 암벽 등반했던 사람인데요… 혹시… 현우 여자친구 되세요?”

그 말이 들리는 순간, 지수는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하는 것을 느꼈다.

심장이 롤러코스터를 타듯 곤두박질치고,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는 것 같았다.

"네… 네, 맞는데요… 무슨 일인가요?” 그녀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현우가…암벽등반 하다가… 다쳤어요. 지금 병원 응급실로 옮겼는데… 현우 부모님이랑 통화가 안 되어서… 지수 씨께 전화 드렸어요.… ○○병원 응급실입니다. 오실수 있으실까요?”

남자의 목소리는 공포와 혼란으로 가득했고, 주변의 웅성거리는 소음과 섞여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다쳤다’, ‘응급실’이라는 단어는 너무나 선명하게 귓가에 박혔다. 병원 이름을 확인하는 순간, 지수는 더 이상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정신없이 책상을 박차고 일어나 지갑과 휴대폰만 움켜쥔 채 집을 나섰다.

심장은 목구멍까지 치솟아 숨쉬기조차 버거웠다.

머릿속에는 온통 ‘사고', ‘다쳤다', ‘응급실'이라는 단어와 함께, 암벽등반이 위험하다고 걱정했던 자신의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설마… 설마…’ 부정하고 싶은 현실이 그녀의 발목을 붙잡으려 했지만, 본능은 더 빨리 움직여야 한다고 외쳤다. 택시 안에서 지수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손톱을 물어뜯는 것도 모른 채, 불안감에 몸을 떨었다. 제발 큰 사고가 아니기를, 제발 오빠가 무사하기를, 살아만 있어달라고 신에게 빌고 또 빌었다. 눈물이 앞을 가렸지만, 닦을 새도 없었다.


병원에 도착해 응급실 앞에 내리자마자 지수는 거대한 불안감에 휩싸였다. 병원 특유의 소독약 냄새와 긴박하게 오가는 사람들의 움직임, 그리고 멀리서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가 그녀의 심장을 더욱 조여왔다.

응급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자신에게 전화를 걸었던 현우의 친구가 그녀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지수 씨…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현우는… 다행히 현장에서 응급처치 후 병원으로 바로 이송되었고, 응급 수술도 잘 마쳤다고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어요. 지금은 회복실에 있고, 잠시 후 일반 병실로 이동할 겁니다.” 현우 친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지수는 그의 말에도 여전히 심장은 불안하게 뛰었다.

"정말요? 오빠…많이 다쳤나요?”

현우 친구는 어두운 얼굴로 사고 경위를 설명했다.

"암벽을 내려오던 중에 갑자기 발을 헛디뎠다고 해요. 다른 곳보다 다리 쪽이 많이 다쳤어요.…

지금 현우 부모님도 연락받고 오고 계신다고 하네요.”

그의 말을 들은 지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현우 친구에게 말했다.

"네… 제가 부모님 오실때까지 오빠 옆에 있을테니… 친구분도 많이 놀라셨을 텐데, 이제 집에 가셔서 옷도 갈아입으시고 좀 쉬세요. 전화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지수는 고마움을 전하며 현우 친구를 돌려보냈다.

홀로 남겨진 응급실 로비에서 지수는 발끝부터 얼어붙는 듯한 불안감과 현우를 빨리 보고 싶다는 간절함에 휩싸였다. 언제쯤 회복실에서 나올까, 언제쯤 일반 병실로 옮겨질까.

시간은 더디게 흘렀고, 그녀의 시선은 전광판의 '회복실'이라는 글자에 고정되었다. 그의 이름이 뜨기만을, 혹은 병실 안내 방송이 나오기만을 숨죽여 기다렸다. 심장이 발버둥 치듯 격렬하게 뛰었다. 이 모든 것이 꿈이기를 바랐지만, 싸늘한 병원의 공기가 현실을 일깨웠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드디어 현우가 일반 병실로 옮겨졌다는 연락을 받았다.

지수는 그의 병실 번호를 확인하고 곧장 혼자서 병실로 향했다. 복도를 걷는 내내 심장이 쿵쿵거렸다. 문 앞에서 심호흡을 하고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고 들어선 순간, 지수는 침대에 힘없이 누워 있는 현우를 보았다.

그의 팔과 다리에는 두꺼운 붕대가 감겨 있었고, 얼굴에는 옅은 긁힌 상처가 보였다. 평소 활기 넘치던 그의 모습과는 너무나 다른, 창백하고 연약한 모습이었다.

방금 수술을 마친 사람답게 그의 얼굴에는 깊은 피로와 고통의 흔적이 역력했다. 핏기 없는 입술은 바싹 말라 있었고, 감긴 눈꺼풀 아래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오빠!” 지수는 조용히 현우를 불렀다. 현우는 지수의 목소리를 듣고 천천히 눈을 떴다. 흐릿한 눈빛이 초점을 맞추더니, 예상치 못한 지수의 출현에 놀라움이 역력한 표정을 지었다.

"네가 어떻게 여기에…?” 그의 목소리는 기운이 없었다.

"오빠… 괜찮아?” 지수는 그의 옆에 서서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지 못하고 글썽이며 물었다. 그의 목소리를 확인하는 순간, 그동안 억눌렀던 모든 감정이 눈물과 함께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응, 괜찮아… 근데 여긴 어떻게 알고 온 거야?”

지수는 흐느끼며 대답했다.

"같이 등반하신 분이… 내 번호로 연락해 주었어… 여자친구 맞냐고… 사고 났다고… 흐으윽…” 그녀는 말을 잇지 못하고 아이처럼 서럽게 울었다.

현우는 지수의 우는 모습을 보고 당황했지만, 이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떨리는 그녀의 손을 마주 잡았다.

"울지 마, 지수야. 나 괜찮아. 팔과 다리가 부러진 것뿐이야. 너무 걱정하지 마.”

그의 목소리에는 아픔이 묻어났지만, 지수를 안심시키려는 듯 따뜻하고 나직했다.

"부러진 것뿐이라니! 얼마나 아팠을 거야… 흐윽…”

지수는 그의 말에 더 서러워져서 계속 울었다. 그의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해서 마음이 찢어질 것 같았다. 현우는 남은 힘을 다해 다치지 않은 손을 들어 지수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었다. 그의 손길에 그녀의 울음이 조금씩 잦아들었다.

"지수야…오빠 정말 괜찮아. 걱정 안해도 돼. 네가 이렇게 와주니깐 벌써 다 나은 것처럼 안 아픈걸?”

그의 눈빛에는 불안에 떨었을 지수를 향한 미안함, 그리고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깊은 애정이 담겨 있었다. 지수는 눈물을 닦아내고 현우를 바라보았다.

"정말… 정말 괜찮은 거야?” 지수는 다시 한번 확인하며 그의 손을 꼭 잡았다.

"응, 괜찮아. 지수야… 나 많이 걱정했구나?” 현우는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지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했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고,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고, 그를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단 한 순간도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차마 말로 다 할 수 없는 감정이 목까지 차올랐다.

"당연하지! 정말… 얼마나 놀랐는데…”

현우의 따뜻한 온기가 지수를 안도하게 했다.


예상치 못한 현우의 사고는 지수에게 세상이 뒤집히는 듯한 충격과 극한의 공포를 안겨주었지만, 동시에 그 두려움의 깊이가 곧 현우를 향한 사랑의 깊이라는 것을 처절하게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단 한 번의 상상만으로도 숨조차 쉴 수 없었다는 사실이, 그녀의 마음속 현우가 어떤 의미인지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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