얽힌 관계, 폭풍의 서막

by 은기

다음 날, 지수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태준의 작업실을 찾아갔다. 차가운 바람이 불었지만, 지수의 발걸음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어제의 뜨거운 밤이 준 안정감 때문이었을까. 그녀는 현우를 향한 믿음이 굳건했다.

태준의 작업실은 낡은 창고를 개조한 듯한 밴드의 연습실이었다. 문을 열자, 시끄러운 음악 소리와 함께 태준이 연습을 멈추고 그녀를 돌아보았다.

"올 줄 알았어.” 태준은 턱을 괴고 지수를 바라보았다.

지수는 "내 휴대폰 돌려줘.”라고 차갑게 대꾸했다.

태준은 기타를 내려놓고 웃으며 지수에게 다가왔다.

"뭐가 그렇게 급해? 사무실에 있으니깐 들어가서 커피 한잔하자.”

"나 너랑 커피 마시고 싶지 않으니까 어서 휴대폰이나 가져다줘.”

태준은 지수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밴드 팀원들을 향해 "잠깐 쉬자”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지수의 손을 잡고 사무실로 이끌었다. 팀원들은 태준과 지수의 모습에 호기심을 보이며 말했다.

"사진 속 그 애 맞지? 저번에 S대 공연 끝나고 우리 내팽개치고 찾으러 다녔던 여자분!”

"그런 거 같은데...”

"이쁘네. 태준이가 못 잊을 만하네.”

팀원들은 그들의 모습을 보며 한마디씩 던졌고, 지수와 태준이가 들어간 사무실을 쳐다보았다.

태준은 지수를 의자에 앉히며 "뭐 마실래? 아이스 커피? 아니면 핫 커피?”라고 물었다.

지수는 그의 행동에 한숨을 쉬며 "아이스...”라고 짧게 답했다.

태준은 지수를 보며 싱긋 웃었다. "오케이. 우리 지수는 항상 얼죽아지.”

지수는 이런 태준의 모습에 잠시 옛날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태준은 지수에게 커피를 주면서 맞은편 의자에 앉아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더 예뻐졌네. 아니다 우리 지수는 항상 예뻤지!. 너랑 이렇게 마주 앉아 있으니 옛날 생각도 나고 조금 떨린다.” 태준의 솔직한 고백에 지수는 당황했지만, 감정을 애써 억누른 목소리로 차분히 말했다.

"쉰 소리 작작해! 넌 내가 우스워? 너 나랑 헤어질 때 어떻게 했는지 기억 안 나? 넌 헤어지자 라는 문자 한 줄 보내고 잠수 탔던 놈이야. 아무런 설명도 없이...”

태준은 잠시 숨을 고르고 말했다. "그때... 내가 쓰레기 같이 행동했던거 인정해. 그때는 어쩔 수가 없었어.” 지수는 태준의 말을 자르며 싸늘하게 덧붙였다.

"넌 항상 ‘어쩔 수가 없었다'라고 말하지. 네 주변 여자들 때문에 내가 불만을 표출해도 어쩔 수가 없다. 네 즉흥적인 행동으로 내가 힘들어할 때도 어쩔 수가 없다. 지금도 넌 나보다는 네 감정만 앞세워서 사람 불편하게 하고... 참, 사람 변하지 않는다.”

지수는 묵혀뒀던 감정을 쏟아내며 말을 이었다.

"너랑 끝난 지금 이런 대화 하는 것도 짜증 나. 그러니깐 이제 헛소리 집어치우고 휴대폰이나 내놔.”

태준은 지수에게 할 말이 많아 보였지만,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는 조용히 서랍 안에서 휴대폰을 꺼내며 본인의 휴대폰을 지수에게 내밀었다.

"네 번호 알려줘. 그러면 줄게.”지수는 이 상황을 빨리 끝내고 싶어 태준의 휴대폰을 낚아채듯 받아들었다.

화면을 누르고 자신의 번호를 빠르게 찍어주고는 휴대폰을 다시 그에게 돌려주었다.

"됐지? 빨리 줘.” 태준은 지수가 찍어준 번호로 전화를 걸어 지수의 번호인지 확인한 후, 지수의 휴대폰을 건넸다.

그때, 현우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휴대폰 화면에 뜬‘우애수' 라는 세 글자를 보고 태준은 눈살을 찌푸렸다. 지수는 얼른 전화를 받았다.

"응, 오빠... 지금 받았어... 이제 가려고... 응, 알았어... 이따 봐.” 지수는 태준을 한 번 째려보고 인사도 없이 사무실 문을‘쾅' 소리가 나게 닫고 나갔다.

태준은 그런 지수의 뒷모습을 보고‘우애수라... 쉽지 않겠군.' 하고 혼잣말을 했다.


지수는 차가운 바람이 부는 밖으로 나와 곧장 휴대폰을 열었다. 통화 목록에서 태준의 번호를 찾아 망설임 없이 삭제했다. 그리고 그의 번호까지 완전히 차단했다. 다시는 그의 연락을 받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였다. 지수는 거울처럼 매끈한 휴대폰 화면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이제 정말 끝이야.’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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