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 심은데 팥은 절대 나올 수 없는거야?

2025-10-에세이

by 은기

나는 요즘 아이들을 키우면서 지금까지 들어왔던 속담이 나를 비웃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콩 심은 데 팥이 안 나오는 것은 분명한데, 왜 내게서는 바라던 콩이 아니라 가장 피하고 싶던 콩의 그림자만 자꾸 자라나는 걸까.


오늘도 스무 살 된 딸아이 방 문 앞에서 한바탕 소리를 질렀다.

"너 도대체 몇 시까지 잘 거니! 정신 안 차릴 거야?”

딸은 귀찮다는 듯 이불을 뒤집어쓰며 모로 눕는다. 나는 딸아이 방문 앞에 서서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았다. 마침 걸려온 친정 엄마의 전화에 나는 억울함을 토해냈다.

"엄마, 쟤는 대체 누굴 닮아 저렇게 게으른지 모르겠어. 해가 중천에 떴는데도 아직까지 자빠져 자고 있어!” 수화기 너머에서 친정 엄마는 잠시 침묵하더니 툭 한 마디를 던졌다. "너랑 똑같다.” 나는 그 말이 너무 황당하여 크게 부정했다.

"아니, 엄마! 내가 언제 그랬어! 나는 저렇게는 안 살았지!” 하지만 엄마의 단호한 대답은 내 귀에 못처럼 박혔다. 내가 아무리 부정해도 친정 엄마의 눈에는, 지금 내 아이들과 다를 바 없는 '콩'이었던 것이다.

내 아이들은 분명히 '나'에게서 나왔다. 그런데 어찌 이리도 내가 기억하는 나와 다른 부분들만 쏙쏙 골라 가졌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스무 살 딸아이는 이제 어엿한 성인이건만, 여전히 방바닥에 널브러진 옷가지와 쌓여가는 배달 음식 용기들을 외면한다. 내가 아무리 독립과 책임감을 강조해도 딸은 "엄마는 걱정이 너무 많아”라며 대충 넘긴다.

고등학생 아들 녀석은 더하다. 사춘기라는 방패 뒤에 숨어 하루 종일 방문을 잠그고 산다. 엄마에게는 무뚝뚝한 ‘어', ‘아니' 대답이 전부지만, 친구들과는 밤새도록 이어폰을 끼고 웃고 떠든다. 나는 때때로 이 아이가 외계인과 바뀐 것은 아닐까 라는 엉뚱한 상상까지 한다. 10대 때 친구들과 온종일 깔깔대며 동네를 누볐던 나와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다.

나는 아이들의 이런 모습이 내가 보지 못했던 ‘팥'의 모습이라고 믿었다. 내가 애써 심지 않으려 했던, 나에게는 없다고 생각했던 게으름, 방어적인 태도, 감정적인 회피 같은 것들. 나는 콩을 심었는데 왜 이리 팥 같은 특성들이 자라나는지 답답하기만 했다.

친정 엄마는 내 푸념을 듣더니 혀를 끌끌 차면서, 결국 내 젊은 시절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네가 스무 살 때도 그랬어. 네 방은 폭격 맞은 것 같았지. 문 열고 들어가면 잔소리할까 봐, 네 방문도 항상 닫혀 있었고.” 나는 깜짝 놀랐다.

내 기억 속의 나는 항상 부지런하고 야무진 딸이었다.

"엄마, 나는 그때 공부하다가 잠깐 쉴 때 TV를 봤지, 하루종일 TV를 보지는 않았어. 그리고 그때는 핸드폰도 없었구.” 내가 변명하자 엄마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때는 TV가 지금의 핸드폰이었지. 그리고 내가 네 방 문 앞에서 발 동동 구르던 건 기억 안 나니? 넌 고등학교 다닐 때 까지 아침밥을 내가 쫓아다니면서 먹여주었잖아. 학교 지각할까봐.” 친정 엄마는 내가 외면했던 과거의 나를 거울처럼 비춰주었다.

아이들의 게으름이나 반항적인 태도가 사실은 내가 과거에 가졌던 '불안함과 세상에 대한 방어적인 자세'가 현재의 환경에 맞게 형태만 바꾼 것일 수 있다는 깨달음이 머리를 스쳤다.


'콩 심은 데 팥이 나온다'는 말은 틀린 말이었다. 내 아이들은 나의 콩이 맞았다.

다만 내가 그 콩의 모양을 다르게 기억하고 싶었을 뿐이다. 나는 내가 아닌 아이들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내 안에 있던 어떤 기질과 습관이 아이들에게 유전되었음을 인정해야 했다.

게으름은 사실 자유를 향한 갈망이 옷을 잘못 입은 모습일 수도 있다. 방어적인 무뚝뚝함은 내가 어릴 적 세상을 대했던 낯선 환경에 대한 경계심일 수도 있다.

콩 심은 데서 콩이 나오듯, 내 아이들의 모습은 내가 걸어왔던 삶의 궤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당장 일어나라'고 잔소리했지만, 사실 나 역시 현실의 불안 앞에서 문을 닫고 도피하고 싶은 어른은 아닐까 자문하게 된다.

결국 콩 심은 데 팥은 절대 나올 수 없었다. 내가 아무리 내 아이들이 나를 닮지 않았다고 부정하려 해도, 아이들은 나의 콩이자 나의 뿌리였다.

친정 엄마의 "너랑 똑같다”는 말은 단순한 지적이 아니었다.

그것은 "네가 걸어온 길을 네 아이들이 걷고 있으니, 너의 경험으로 아이들을 가장 잘 이해하고 감싸 안아 줄 수 있다”는 따뜻한 메시지였다.

나는 이제 아이들의 '콩스러움'을 보며 좌절하는 대신, 그 안에서 나의 젊은 날을 발견하려 한다.

콩을 심었으니 콩이 나는 것은 당연한 이치.

이제 남은 일은 이 콩이 튼튼하게 자랄 수 있도록 물을 주고 햇볕을 쬐어주는 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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