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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아 Oct 23. 2023

그건 학대예요.

상담을 시작했다. 몇 번이고 부부싸움이 있을 때마다 상담 이야기가 나왔지만, 미루고 미뤄왔던 걸 드디어 실행에 옮겼다. 이곳에서는 상담 비용이 한 번에 30만 원에 달했다. 가격을 미리 알았더라면, 아마도 돈에 한 번 더 기가 꺾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보다는 어쩐지 내 결혼의 실패를 어느 정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자존심 상해 미루고 미루다 곪아 터지고 나서야 상담실을 찾았다.


타지에서 우리나라의 정서를 이해하는 한국인 상담사를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녀의 상담 시간에 맞춰 우리는 반차를 내야 했다.





하얗고 안락한 소파. 그리고 적당히 손 둘 곳을 마련해 주는 쿠션이 무릎에 하나씩 놓였다.

선생님은 우선 우리가 어떻게 만났는지 물었다.


“친구였어요. 외국에 나오면 의례 한국인 모임 같은 걸 가입하잖아요. 거기서 동갑내기로 만났어요.”


그녀는 시작이 좋다고 말했다. 친구로 만난 관계는 오히려 편하고 통하는 게 많아 상담이 술술 풀린다고 격려했다.


벌써 7년이나 지난 첫 만남, 고백하던 날, 그리고 서로의 호감을 얻기 위해 했던 사소한 에피소드들.

이제는 아기 엄마 아빠가 되어 깜빡 잊고 살던 그날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 분위기가 몽근해 졌다. 어쩌면 상담 선생님의 기술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본론으로 들어가 문제의 시작점인 시부모님 이야기가 나오자 눈물부터 나기 시작했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까요? 음.

시아버지는 처음 만난 ,  인사를  받아 주셨어요. 투명인간처럼 취급했죠.


커플 컨설팅. 커플 테러피. 외국 영화에 가끔 나오는 장면이었다. 영화 속 그들은 이따금 서로에게 눈을 흘기기도 지만,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상황을 존존하게 정리해 .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선생님과 남편과 나는 서로 한마디라도  하지 못해 안달이 났다.

쏟아내듯 서로의 불만을 퍼붓다가, 울다가 눈물 콧물 범벅이 되었다. 시간은 어느새  시간 반을 훌쩍 지나 있었다.


선생님의 결론은 한마디였다.

“어떤 이유에서건 그들이 학대한 걸 지금까지 방치한 거예요. 스스로를 방치하면 안 돼요. Barrier, 담을 쌓아야 해요.

선을 지키지 못하는 이들에게 기대하지 말고, 스스로의 담을 쌓는 연습을 합시다.”



가끔 친구들에게 바닥까지 드러내며 시부모님을 욕한 적이 있었다.

속이 시원한 듯했지만, 이내 현실이 달라지지 않음에, 혹은  바닥을 다른 이에게 드러낸 탓에 우울해졌다.


친구들이 힘을 주어  편을 들어준들 텁텁한 뒷맛이 쉽사리 가시지 않았다.


하지만 상담사 선생님과의 대화는 시원하진 않았다.  시간 반동안 목이 아플 정도로 떠들었는데 부족했다. 남편과 선생님에게 이야기할 기회를  많이 뺏겼다. 그래서 아직 속에는  토해내지 못한 울분이 뒤죽박죽 쌓인 듯했다.

조금도 다듬어지지 않은 거칠거칠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후련했다.


무엇보다도 그들이 내게 한 무례함이 한마디로 정의됐다는 걸 믿을 수가 없었다. 선생님의 말이 귀에 가만히 내려앉았다.  

그건 학대였고,  나를 학대하는 이들을    방치해 왔다.



그 말 한마디로 믿을 수 없을 만큼 위로가 됐다.

내 마음속에 단단히 꼬여있던 자책, 죄책감, 내가 뭘 잘못해서 문제를 어렵게 만든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

이게 맞나? 하는 방향성에 대한 의심.

그 모든 걸 해소시키는 한마디였다.


학대였다. 그 과정의 어떠한 잘잘못을 떠나서 생기면 안 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내 잘못이 아니다.

내 유일한 잘못이라면, 날 학대하고 있는 그들을 어른이라는 이유로, 말하기 어렵다는 핑계로 방치해 왔다는 점이다.


담을 쌓아야만 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너무나 절실히 우리 사이에는 담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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