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어제도 뜨고 졌던 해인 것을. 시간이라는 개념 속에 들어오면 완전히 새로운 것이 되어버린다. 인간이 만든 이 시간이라는 개념은 많은 것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덕분에 우리의 삶도 시간마다 새로운 의미로 채워진다. 의미를 찾고 싶어 하는 인간의 심리. 그 저변에는 존재에 대한 의문이 깔려있겠지. 이제 4일 후 뜨는 해는 새해 첫 해가 되고 그 일출을 보며 희망을 품는 사람들. 시간이라는 물리적 한계가 숙명인 인간에게 그래서 의미는 중요하다. 유한함 속에서 찾은 의미는 삶을 빛내주니 말이다.
의미라는 이 단어가 화두가 되어 여기까지 왔다. 존재의 의미 일 수도, 삶의 의미를 어디에 둘 건가의 문제였을 수도 있다. 돌고 돌아 결국엔 다시 원점으로 온 것 같은 이 느낌은 무엇인가. 그때가 아니라면 지금인 이유가 있겠지. 자세히 알고 싶지는 않으나 왜 이것인지 혹은 이것이 맞는지는 궁금하다. 물 흐르는 듯 사는 것이 아니라 흐르는 물을 세세히 관찰하고 느끼고 기록하는 삶. 밖으로 흐르는 시간과 내 안에 흐르는 생각을 끄집어내 씨실 날실 엮듯이 베틀을 짜는 일. 그래 나는 올해 베 짜는 여인네가 되었구나. 꼼짝없이 베틀 앞에 앉아 간헐적으로 넣어야 하는 무늬 4개에 규칙적으로 넣어야 하는 무늬 하나를 합쳐 부지런히 가동해야 하는 이 노동. 완성될 그 무엇이 아직 짐작도 되지 않으나 중간중간 분명 빼먹은 무늬 때문에 성글고 엉망진창 될게 뻔하지만 그래도 베틀 앞에 앉아 있기만 해다오. 바라는 것은 그뿐이니 의미 타령은 그때 가서 하는 걸로. 의미를 찾은 거 같다 호언장담하기보다는 의미일지도 모를 일을 만나 조금 다른 삶을 맛보게 된 것에 만족하는 것. 아직은 그것으로 충분하니 과하게 애쓰지도 말고 원래 나에서 잠깐 낯선 나를 찾아보는 정도로 속도를 조절하자.
세밑, 어떤 마음이 가장 많았을까. 아쉬움. 막연히 의미를 찾으면 희망과 기대가 커질 거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은 것을 보면 의미는 환희로 가득 찬 오로라는 아닌가 보다. 오로라일 거라 믿어서 여태 의미를 지나쳤던 걸 수도. 오로라는 오로라인데 그 안에 수많은 갈래길이 있다. 그 갈래길마다 마음이 접혔다 펴졌다 하며 빛의 산란이 더 화려해지는 것이라는 어렴풋한 느낌이 이제야 든다. 그래서 의미 타령 집어치우려 했음에도 이 해의 의미는 빼놓을 수가 없겠다. 의미를 찾아 나선 길에 의미를 고민하게 하고, 의미를 만들어내는 많은 사람들. 결국 의미 있게 글 쓰는 송년회까지 맞게 하다니. 나란 사람이 커졌다 작아졌다 반복하게 한 이 공간과 사람과 시간. 의미는 이미 도처에 가득했음을 고백하며 세밑 의미론자들 속에서 의미에 취해 의미를 외친다.
너의 의미가 나의 의미가 되어 드디어는 세 밑, 눈부신 의미로 가득하다니.브라보, 피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