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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과 앤 Oct 29. 2024

수다맨이 빨간 머리 앤이었다고?

    너의 수다는 죄가 없으니 발언권을 허하노라(ft.애미의 반성문)



“서한아, 엄마 귀에서 피나는 거 같아?”     


“괜찮아. 걱정 마. 안나. 나는 말 안 하면 죽어.”     


협박이자 애원이 되어 돌아오는 너의 돌직구. 오늘도 나는 네가 버겁다.     

 

 지금 두 모자의 대화가 오고 간 장소가 어디이고 상황이 무엇이라 예상하는가. 흔한 장소인 건 맞지만 흔한 상황인지는 외동을 키우는 엄마라서 장담할 수 없으나 이것이 어느 밤 욕실에서 양치 중에 발생한 일이라는 걸 밝힌다. 그러니까 저 아이의 상황은 제 입안 가득 보글보글 거품이 끓고 있는 와중이라는 것이고, 하루치 육아가 끝나가고 있음에 안도하던 애미는 멱살 잡혀 끌려온 링 위에서 아직 끝나지 않은 마지막 라운드를 확인하는 순간인 것이다. 그리고 실제 저 말은 아이가 본인 수다의 정당성 확보를 위해 자주 쓰는 말이라는 것도 밝혀둔다. 이 웃지 못할 에피소드를 소개하는 것은 앞으로 펼쳐질 의 이 찌질한 고백과 억지스러운 노력이 하소연할 데라고는 동네 엄마와의 씁쓸한 수다나, 한숨 돌리며 마시던 식어버린 커피 한 잔이 전부였을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되길 바라마지않아서이다.       

 

 우리 집 수다쟁이 아들은 하루치 수다 양이 정해져 있어 그 양을 다 채우지 못하면 잠자기 전까지 종알거려야 직성이 풀리는 그야말로 수다맨 그 자체이다. 그걸 모르지 않는 엄마는 이것이 지상 최대 숙명이자 과제려니 생각해 매일매일 참을 인을 가슴에 새기며, 들어주고 받아주고 되물어주며 나름 애를 쓰고 있는 중이다. (어쨌든 현 상황 저 아이에게 가장 최적화된 스페셜 리스트인 것은 사실이고, 나름 커스터마이징이라 생각하며 위로하는 중이다.) 그런데도 너의 성에는 차지 않는지 양치를 하는 도중에도 계속 말하려 들고, 막아서는 엄마에게 한 마디만 할 거라며 잠깐만을 연발하며 저런 협박 아닌 애원을 던지는 것이다.      






 많지 않은 세 식구의 하루 중 가장 복작복작한 저녁 식탁에서도 아들의 발언권 사수는 언제나 우리 부부를 난감하게 만든다. 엄마의 30년 된 애청 프로 ‘배캠(배철수의 음악캠프)’을 들으며 시작된 저녁 식탁. 수다가 무르익어 갈 즈음 어떻게 정치 얘기로까지 흘러갔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선명히 남은 것은 불만 섞인 아이의 말이었다.      


“나는 말할 권리가 없는 거냐고?”      


이 기시감. 흐릿하지만 어디선가 분명히 들은 적 있는 저 소리. 분명 저 나이 어린애였다.



첫 만남에서 자신의 외모를 비하했던 린드 부인에게 화가 나 두 발을 쾅쾅 내리치던 그 빨간 머리 소녀. 용서를 구하러 가라는 마릴라의 말에 소녀가 말한다. “그 아주머닌 제가 못생기고 빨간 머리라고 말할 권리가 없어요.”   



  왜 이 부분이 떠 올랐을까. 35년이나 거슬러 올라가서라도 그 이유를 찾아내고 싶을 만큼 스스로를 이해시키고 싶었던 걸까. 설령 이것이 합리화일지언정 그렇게 해서라도 여전히 뻣뻣한 무릎이 꺾여 다정히 내게 눈 맞춰줄 수 있다면 다소 억지스러운 무의식의 발로라 해도 아무 상관없을 것 같다. 그래서 엄마는 오늘 또 한 가지 사실을 추가한다. 너의 수다는 강산이 세 번 바뀌고도 남을 깊은 사랑이 불러온 확언 같은 것이라고. 그러니 너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다. 죄라면 이 엄마의 지독한 사랑의 결과라 해야겠지.      


 이 사랑은 정확히 35년을 거슬러 올라갈 만큼 깊고, 지독한 역사이다. 하여 이 사달의 원인으로 지목될 만큼  삶 깊이 배어 있는 가장 묵직한 잔향. 베이스 노트 그것이다. 알다시피 앤은 엄청난 투머치 토커에 범접할 수 없는 상상력 부자다. 습기로 가득 찬 꿉꿉한 어둠마저 보송보송하게 만드는 햇살 같은 그 성격에 사로잡혔음은 물론 성격이 팔자라고 그녀가 갖게 된 행복도 그 성격 덕분이라 생각해 긴 세월 그녀의 밝고 상냥함을 추종했다. 앤을 읽고 있으면 따뜻한 오후 햇살이 내리쬐는 잔디밭에 앉아 지저귀는 새소리를 들으며 좋아하는 사과를 한 입 베어 무는 것 같아 마음이 저절로 녹아내리곤 했다. 그런데 그게 이렇게 이어질 줄이야. 그렇게 책장 가득 쌓아 놓고 잊을 만하면 꺼내 보더니 실로 대단한 태교가 되었구나. 삼자대면. 그렇게 예상치 못한 조우는 35년이 흐른 어느 날 나란히 앉은 모자의 저녁 식탁 앞에서 이뤄진 것이다. 이쯤 되면 순전히 내게서 비롯된 필연이라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니 이제 할 일은 이 아이를 2015년 버전 남자 빨간 머리 앤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면 오히려 쉽게 풀릴 수도 있지 않겠는가. 이미 매일매일 저 엉뚱한 아이의 말에 뒤돌아 한참을 웃는 게 일상인데 이 정도면 그때 그녀에게 했던 것보다 더 깊고 지독한 사랑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꼴 아닌가. 그러니 마음 한번 잘 집어 먹으면 이 얽힌 실타래 같은 육아를 더 쉽게 풀어낼 수도 있으리라. 또한 그렇게 참지 못할 정도로 힘들었다면 엄살쟁이 엄마가 견딜 수나 있었겠는가. 혹시라도 의학적 판단이 필요한 정도의 수다였다면 천하에 이 호들갑 조급증 엄마가 병원 문턱이 닳게 드나들며 진작에 백방으로 뛰어다녔지 참았겠느냔 말이다. 그러니 이 모든 부침은 결이 달라도 너무 다른 아이를 담아내느라 간장 종지만 한 내 그릇이 넓혀지며 생긴 제2의 산통일 뿐이다.       

 






사람과 소통하고 싶은 욕구가 누구보다 많은 아이, 엄마의 마음이 궁금해서 자꾸 묻고 싶은 아이, 그래서 같은 주제로 함께 이야기 나누며 자기 존재감을 확인하고 싶은 그런 생기발랄한 아이를 키우고 있는 것은 오히려 축복을 거머쥔 운 좋은 엄마라는 뜻이다. 그리고 엄마가 되었으면서 빨간 머리 앤이 선물한 또 다른 교훈을 잊었단 말인가. 이 귀엽고 사랑스러운 빨간 머리 여자애를 반듯하고 올곧게 키워 낸 것은 혈연이 아니었다는 점을. 결혼도 출산도 해보지 않은 한 여인이 아스러질 듯 서있던 한 생명에게 우주를 선물하고, 세상 가장 귀한 가치인 ‘존재 자체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런데도 시뻘겋게 물들고도 남을 혈연으로 그것도 5년 간 애간장 태우며 겨우 얻어내 시작된 이 귀한 길을 이제껏 간장 종지만 한 그릇 하나로 버티면서 힘들다고 엄살을 부려댔으니 얼마나 철없고 모자란 엄마인가. 저기 식탁 끝에 반달눈을 하고 앉아있는 매튜 아빠는 그대로이니 마릴라 엄마만 정신 차리면 우리 집에도 초록 지붕집의 기적이 찾아오는 건 시간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머지않아 찾아올 사춘기라는 그 혼란과 침잠의 시간. 뱉는 말이라고는 ‘응’, ‘아니’, ‘내가 알아서 할게’가 전부라는 그래서 외국인을 모시고 하숙시킨다는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는 그 시기가 곧 도래하리라. 그리고 그때 한 가여운 여인이 있음을 잊지 말자. 저녁 어스름이 깔려 어두운 아이의 방을 멍하니 쳐다보는 안쓰러운 이 여인. 환청처럼 맴도는 쫑알쫑알 귀여운 목소리를 찾아 핸드폰 사진첩을 정신없이 뒤적이는 이 애처로운 여인. 그녀를 위해라도 늦지 않게 준비해야 한다. 그래서 듣지도 만지지도 못할 아련한 존재가 될 저 아이를 할 수 있는 만큼 크게 팔 벌려 따뜻하게 품어 마음 가득히 담아 두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그의 힘찬 비상에 마음껏 손 흔들며 기뻐해 주는 씩씩하고 쿨한 엄마로 설 수 있을 테니.







"아니, 말할 권리가 있지."

"어른들이 하는 정치 얘기라서 그래. 학교에서도 아직 이런 건 안 배우잖아."


"나도 알아, 정치"

"예전에 어떤 아저씨가 손 흔들고 배꼽인사하면서 뽑아달라고 그랬잖아. 일꾼 된다고."

"그런데 일꾼이 많이 필요한가 봐. 이번에 또 봤어."

"엄마랑 아빠는 누구 뽑았어?"


"비밀 선거라 말하면 안 돼."


"아니, 그런 게 어딨어? 아들한테는 말해 줄 수 있잖아"     



너에게 발언권을 허하노라.

말해보렴. 너의 정치 성향을.

이어가 보자. 우리의 백 분 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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