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글자가 전하는 위로
꽃과 들과 풀과 별 그리고
라디오에서 DJ가 말한다. 한 글자로 된 단어들이 힘과 위로를 준다고. 예를 들면 밥, 집, 꽃. 술...
그 후로 시간이 날 때마다 한 글자 단어들을 떠올려 본다.
몸. 눈. 코. 입. 귀. 배. 등. 턱. 뺨. 팔. 발. 손. 뇌. 집. 방. 문. 창. 벽. 못. 담. 들. 밭. 논. 산. 숲. 길. 풀. 잎. 꽃. 물. 섬. 강. 흙. 벌. 새. 나. 너. 짝. 형. 벗. 정. 꿈. 말. 일. 춤. 별. 밤. 잠. 해. 달. 빛. 등. 불. 향. 초. 차. 술. 잔. 병. 쌀. 밀. 죽. 밥. 탕. 똥. 책. 시. 색. 털. 면. 점. 선. 칼. 끝. 밑. 막. 틀. 비. 눈....................................
끝없이 이어지는데 신기하게 한 단어씩 떠올릴 때마다 기운을 북돋는 힘이 느껴진다. 그 기운은 어디서 오는 걸까. 언어 학자도 아니고 문화 인류학자도 아니지만 매일의 단상을 적는 에세이에 자유롭게 써 봄직한 생각 하나. 먼저 생겨난 말이 아닐까. 존재와 가까운, 생존과 직결된, 원초적 본능과 연결된, 지금 여기가 어딘지 알게 해 주는 단어가 아닐까. 원시인의 대화법을 상상해 보자.(서툰 외국어로 나누는 대화도 말이 짧다.) 나, 너, 밥, 입(나랑 너랑 밥 먹자). 길게 말하기 전 살아남기 위한 의사소통은 한 글자로 먼저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손가락보다 손 먼저. 반찬보다 밥 먼저. 하늘보다 땅이 가까워. 사랑보다 정. 소설보다 시 먼저. 밤에 잘 잔 잠이 아침을 맞고. 형태에 앞서 색. 시작하기 전 끝이 있음을 알고. 달과 별과 빛과 꿈은 길을 안내해. 우리보다 먼저 나와 너.(외국어는 딴판이다 반박하면 할 말이 없다. 그냥 내 생각이니 심각해지지 말자.) 들. 밭. 논. 산. 숲. 길. 풀. 잎. 꽃. 물. 섬. 강. 흙..... 삶의 터전을 이루는 것들. 한 글자 단어가 가진 힘은 실존과 가깝게 연결되어 있어 나오는 게 아닐까. 거기서 삶을 안심시키는 위로를 부수적으로 얻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리는 가끔 너무 복잡하게 많은 생각을 한다. 종종 너무 먼 곳을 본다. 왜 이렇게 우울하지 어딘가 문제가 있어.(지금 배가 고픈 거 아닐까) 우리 사회는 너무 한심해(바로 선 나와 네가 모여 바로 선 우리가 되는 건데) 세상이 부러워할 대단한 사랑을 바라(다정히 매일의 일상을 변함없이 함께 해 주는 위대한 사랑은 옆에 있을 수도) 사는 게 지루해(꽃을 보는 것으로, 춤을 추는 것으로 충만할 수도) 새로 문을 연 파인 레스토랑으로 미식 여행을 떠나고 싶어(갓 지은 찰진 밥 한 그릇이 그리운 것일 수도) 팔로워 수가 너무 적어, 외로워(나를 잘 알아주는 벗 하나가 없어)
오늘도 한 글자 단어를 새롭게 발견한다. 바위는 무겁고 돌. 네모 대신 원. 소리 없이 글. 뿌리 전에 씨..... 재밌는 놀이다. 위로와 힘을 주는 걸 너무 멀리서 헤매며 찾지 말 것. 내 존재 가까운 삶에 단단히 박혀 있는, 맨 앞 줄에 있는, 눈에 보이는, 주어진, 본능에 충실한 것에서 먼저 가치와 힘을 구할 수 있기를 바랄 것. 거기서 얻은 위로가 더 먼 곳을 둘러볼 수 있게 해 주리라 믿을 것. 한 글자 단어가 건네는 신비로운 위로를 구하기 위해 오늘 하루도 배 든든히 밥 잘 먹고 힘 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