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읍내

손턴 와일더를 기억함

by 하루

"우리는 우리의 마음이 자신의 보물을 알고 있는 순간에만 살아 있다." 책을 읽다가 밑줄을 그었다. 손턴 와일더는 1930년 작 '안드로스의 여인'에서 이렇게 썼다고 읽고 있던 책의 저자가 말한다. '손턴 와일더'라는 이름이 읽히자 내 기억은 뜻하지 않게 불쑥 오래전으로 시간 여행을 한다.


1989년 5월에 올렸던 재학생, 동문 합동 공연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교내 연극 동아리의 65회 정기공연 고 오화섭 선생 번역 손톤 와일더의 “우리 읍내(Our Town)”라는 작품이었다. 신입생 티를 벗지 못한 풋내기가 쭈뼛쭈뼛 문을 두드린 동아리에서 접한 첫 연극. 이미 이름을 얻고 있던 쟁쟁한 선배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즐겁고 무대에 서는 한, 두어해 선배들의 연기하는 모습이 신기하긴 했어도 솔직히 이 연극이 뭐가 그리 좋다는 건가 싶었다. 살짝 온기를 잃은 숭늉같이 맹숭맹숭한 맛이. 그리곤 기억 저 밑으로 아틀란티스처럼 가라앉아 사라진 줄 알았던 우리 읍내.


십 년 전 마흔 즈음 문득 평범하기 그지없던 화요일 퇴근길. 어떤 인과 관계도 성립되지 않는 시공간에 바로 그 우리 읍내 연극 장면들이 머릿속에 선명하게 재연되었던 기억이 그즈음 써 둔 글 속에 화석처럼 남아 있다. 이 제 막 마흔을 넘긴 지 두어해 지난 즈음 무슨 바람과 냄새가 오래된 기억들을 거기 사라진 줄 알았던 심연에서 길어 올렸을까. 그때 써 둔 내 역사책의 한 페이지에 적고 있다. 남의 일기를 훔쳐보듯 다시 읽는다.


"토요일 교보문고에 들러 6,000원을 주고 책으로 묶여 나온 대본을 구입했다. 다 읽는데 1시간 남짓 걸리는 3막짜리 시나리오를 아주 천천히 읽으며 그때 보았던 그 무대를 순서대로 다시 머릿속으로 재연한다. 살아가고, 사랑하고, 죽는 너무 평범해 특별할 것 없는 하루하루의 이야기들. 스무 살엔 이게 뭐야 싶던 얘기들이 2막까지 읽으며 이런 걸까 어렴풋이 깨닫는데 20년 걸렸으니 나이 들어가며 세월에게 약간의 지혜를 빌릴 수 있어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 건지. 마지막 3막의 의미를 알게 되기까지 다른 20년이 더 필요할지 모르지만. 연극에서처럼 만약 죽어서 살아 있던 어느 한 날로 돌아가 볼 수 있다 해도 난 굳이 그러고 싶지 않을 것 같다. 극이 끝나면 앙코르 없이 쿨하게 커튼을 내리고 무대를 내려오고 싶다."


1938년 브로드웨이 초연 이후 얼마나 많은 곳에서 이 연극이 재연됐을까. 1901년 5월 7일 동트기 전 시작하는 시골 읍내 얘기는 너무 평범하고 사소해 오히려 특별하다. 극 중 무대 감독 역이 말한다. "그래 저도 이 연극의 대본 한 권을 정초석에 넣을까 합니다. 천년 후의 사람들이 우리의 평범한 삶을 알도록 말입니다. 전 그게 베르사유 조약이나 린드버그 대서양 횡단비행보다 더 중요하다고 보거든요. 아시겠죠? 네, 천년 후의 사람들이나, 지금 여기 우리들이나, 자라서, 결혼하고, 살다가, 죽는 거, 그거야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대본을 다시 꺼내 읽으며 놀랍도록, 눈물 나도록 아름다운 작품임을 이제야 마음으로 알았다. 읽고 또 읽어도 질리지 않는 특별할 것 없는 심심하고 심심한 이야기가 왜 눈물 나도록 턱없이 아름다운지. 동트는 아침, 아이들의 오후, 해 질 녘의 슬픔.. 나의 하루도, 너의 하루도 한 허리 뚝 잘라 조명이 켜진 무대에 사뿐 올려놓으면 아름다운 연극 한 편이 된다는 걸 알려주는 고마운 작품이다. 두고두고 길이 남을 작품성은 갖추지 못했다는 평단의 이런저런 말들은 무시해도 좋아. 관객이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또 그런대로. 100회.. 천회.. 만회, 그러다 어느 날 마지막 공연으로 손톤 와일더도 감탄할 유일한 연극 한 편이 완성된다. 저승에 간 에밀리가 말한다. "살면서 자기 삶을 제대로 깨닫는 인간이 있을까요? 매 순간 마다요?"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이 글 맨 첫 문장으로 손턴 와일드는 답한다.


난 결국 우리 읍내 공연에 선후배들과 함께 서지 못했다. 이후 창작 뮤지컬 한 편을 함께 했지만 연극에 대한 열정과 재능이 차고 넘치는 선배들, 친구들의 끼를 따라갈 의지도 동기도 찾기 어려웠다. 얼마 후 시간과 노력을 가능성 적은 일에 투자하지 말자는 빠른 계산 아래 동아리 활동을 접었다.(관객들에겐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어디선가 다시 올려지는 우리 읍내 무대가 있으면 보러 가련다. 그건 천 번째일까, 만 번 째일까. 내 삶의 커튼콜은 마다 했지만, 누군가의 마음이 자신의 보물을 알게 되는 순간을 선사해 줄 좋은 연극은 뜨거운 박수갈채로 커튼콜이 이어져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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