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브 나무에게 안부를

살아 있어 줘 고마워

by 하루


드라세나 레인보우 마지나타, 홍콩야자, 스파티필름, 신고니움, 블루스타 고사리, 아글레오네마, 뱅갈 고무나무, 스투키, 몬스테라, 만세 선인장, 미니벨금, 피쉬본, 유포비아, 니콜라이...그리고 올리브나무.

사무실과 집에서 키우고 있는 식물들의 이름을 일별 하니 여기는 먼 이국의 짙은 초록이 우거진 숲이어야 할 것만 같다. 고향을 떠나 사계절이 뚜렷한(요사이는 조금 덜 뚜렷한) 흙도 낯선 이곳까지 와 좁은 화분에 담겨 있는 걸 보면 안쓰러운 마음이 된다. 그럼에도 초록 잎들이 주는 납작한 위안에 시나브로 젖어 이기적인 선택을 이어하게 되면서 해가 지날수록 화분들이 새끼를 치듯 불어나 집과 사무실로 그 영토를 확장하고 있다.


나는 식물 키우기 자타공인 똥 손이었다. 화원을 하시는 외삼촌이 신혼 때 선물로 주셨던 화분의 작은 나무를 생각한다. 그런 멋진 나무라면 더욱이 매일 들여다보며 애지중지 키웠을 법 한데 그땐 무슨 바람들로 마음이 그리 분주했을까. 식물 따윈 안중에 없어 관심 밖 나무는 죽어가는지 모르는 사이 죽어버렸다. 그 후 에도 신혼 선물로 작은 화분과 식물을 받곤 했는데 미약하게 보내는 '나 여기 살아 있어'하는 생명의 타전을 수신하지 못한 인간 탓에 선인장이라도 몇 달 못가 시들어 버렸다. 딸아이가 자라는 동안 가끔 물고기나 거북이를 키우기는 했어도(역시 오래 살지 못하긴 마찬가지였다.) 오랫동안 식물을 들여놓지 않았다.


그러다 아이가 유치원생이 되고 서울 한복판 번잡한 동네로 이사 오면서 양재동 꽃시장에 가 호기롭게 작은 화분 두 개를 샀다. 어떤 식물도 서너 달 넘겨 살려 낸 적 없는 터라 그저 잊지 않고 물 주는 것 말고는 달리 보살핌이 필요하지 않을 것들(안시리움, 스파티필름)로 골랐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안시리움은 얼마간 꽃도 없이 줄기, 잎사귀 색이 짙어지지 않더니 결국 시름시름하다 죽어버렸다. 그리고 남은 하나. 스파티필름. 힘겹게 몇 년을 버티다 어느 봄 말라 회색 빛이기에 큰 화분으로 갈아 물을 주고 영양제를 꽂아 욕실에 들여놓았다. 다음 날 욕실에 놓아둔 화분에서 지렁이 한 마리가 기어 나온 것을 보고 인간 이외의 움직이는 생물체와 그리 친숙하지 않은 우리 세 식구는 기겁을 하며 화분을 1층 관리실 옆 화단에 내쳐 두었다.


봄이 지나고 여름, 가을을 보내고 초 겨울 쌀쌀한 바람이 불던 날. 그동안 살살 봐주었다며 관리실 아저씨께서 우리가 내어 둔 화분을 자랑스레 내미시고 추우니 이제 집에 들여놓으라며 건네주셨다. 지렁이라도 또 나오면 어쩌려나 살짝 께름칙했지만 환히 웃는 아저씨 얼굴을 보며 차마 내려놓지 못하고 들고 들어와 거실에 두고 찬찬히 보니 그사이 잎사귀도 넓어지고 줄기도 굵어져 있었다. 며칠이 지나고 작은 손바닥 하나가 올라오는가 싶더니 하얀 것이 꽃이었다. 크고 싱싱한 꽃. 한 주 정도 지나 또 꽃. 자세히 보니 줄기 사이에 나오려고 자리 잡고 있는 것이 두 송이 더. 말이 늦되다 걱정 듣다 이제 막 말문이 터진 아이처럼 꽃이고 잎이고 만발이었다.


그 후에도 생존자 1호는 힘겹게 시들었다 살아나기를 반복하며 지난 17년 우리 식구의 반려로 지금은 당당히 2, 3,4호....로 늘어 선 화분들 가운데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1호 이후 용기를 얻은 나는 하나 둘 식물들을 들여놓기 시작했다. 키우기 조금 까다로운 것들도.(유칼립투스를 두 번 보냈지만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암수 동체인 올리브나무를 선물 받았다. 열매가 열린다는 말에 그 열매를 보려 잘 키워보겠다 야무지게 결심했건만 요사이 갈색으로 끝이 시든 잎들이 무시로 보여 조바심에 자꾸 물을 뿌려댄다. 그러다 잘 키우는 사람들의 한결같은 조언을 붙잡는다. 너무 과해도, 너무 모자라도 죽는다. 마음에 든 무수한 바람들로 분주했던 날들엔 모자라 죽였고 지금은 가끔 너무 많이 준 물로 죽인다.


살아 있는 것들의 특징은 뭘까. 시든다는 거(인간도 같다.). 그 게 감쪽같은 조화와 다른 생화의 본질이다. 시든 잎이 있어 살아있는 나무인 줄 안다. 시든 잎. 생명이 보내는 전보다. '나를 좀 봐줘. 내게 안부를 물어 줘.' 열대의 우림과 지중해를 지나 멀고 선 곳까지 번식해 온 식물들에게 여기 작은 화분이지만 잘 살아 있어 줘 고맙다고, 하루하루 초록의 편린으로 내 풍경이 반짝이게 해 줘 고맙다고 작은 물방울을 수증기처럼 분무한다. 그래 이렇게 살살. 어떤 빛과 바람, 얼마만큼의 물을 필요로 하는지 시든 잎이 보내는 신호를 수신하는 예민한 촉수, 이 게 똥 손을 면할 비법이란 걸 이제 겨우 알아간다.


작은 마당 한 뙈기 갖지 못하고 애먼 식물들로 실내를 채우고 있어 안심찮은 마음이지만 초록이 사라진 공간은 어째 마른 잎처럼 버석하다. 언젠가 아무것 없이도 마음이 버석하지 않을 때가 찾아와 주기를(그때가 올까 싶기도) 바라보지만 올봄엔 아직 무딘 촉수라도 짧게 장착하고 유칼립투스를 다시 한번 들여보련다. 벚꽃이 피기 전, 꽃과 잎들이 더운 숨 훅훅 몰아 쉬는, 그곳에 가 봐야겠다. 양재동이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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