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와 베짱이의 시간

모두 예술이야

by 하루

얇은 보라색 스웨터 터틀넥 아래에 작은 구멍이 생겼다. 반짇고리를 찾아 구멍을 꿰매고 보니 그 작은 구멍을 꿰맨 자국이 삐뚤빼뚤하다. 난 바늘로 하는 일에 대체로 서툴다. 학창 시절 가정 가사 실기도 고역이었다. 치마를 만들어도 주머니를 꿰매도 자수를 놓아도 다 어설퍼 깔끔한 솜씨를 가진 친구들이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어떻게 그렇게 썩 괜찮은 옷과 주머니를 바늘로 한 땀 한 땀 이어 만드는지. 유려하게 바늘로 그려내는 꽃과 나비라니. 내 솜씨가 신통치 않았던 것과는 별개로 크건 작건 바늘이 하는 일엔 늘 경탄을 자아내는 신비로운 힘이 있다는 걸 어릴 적부터 알고 있었다.


학교 가기 전 나이 즈음 찍은 흑백 사진에서 털실로 짠 앙증맞은 스웨터나 모자를 입고 쓴 언니와 내 모습을 찾아볼 수 있는데 어쩌면 그 옷들을 접한 때가 처음 바늘의 경이로움을 알 게 된 순간들이 아닐까 한다. 어린 눈에 친할머니의 뜨개질 솜씨는 하늘이 구름 모양을 자유자재로 바꾸듯 못 만들 게 없을 것처럼 놀랍고 신기했다. 두 개의 긴 바늘로 분홍, 검정, 노랑 색실을 엮어 만든 고운 옷들을 받아 입어 볼 때면 그다지 살갑지 않았던 친할머니였지만 '할머니가 우리를 사랑하고 있나 보다' 생각했던 것 같다. 그 옷들은 요술 지팡이로 그냥 뚝딱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애쓴 끝에 나오는 할머니의 따뜻한 '알' 같은 거라고. 애석하게도 나는 할머니의 솜씨를 물려받지 못했다.


주말이면 겨우 세 가족이 모여 식사를 한다. 남편이 만든 찌게며 전이며 나물들을 먹으며(남편은 요리를 좋아한다.) 연신 "네 아빠가 만든 음식은 왜 다 맛있을까?" "음식에 진심이어서 그렇지." 딸아이가 답한다. "엄마는 음식에 애정이 없잖아. 그러니까 만들면 맛이 없지." 바느질에 서툰 것처럼 요리도 신통치가 않다. 그래 솜씨보다 애정의 문제다. 내가 물려받지 못한 건 솜씨가 아니라 바느질과 음식에 대한 애정이다.


그래도 너무 의기소침해지지 말자며 뭔가 애정이 쏠려 있는 것들을 생각해 본다. 글쓰기, 그림 그리기(보기), 노래하기(듣기), 식물 키우기.... 늘어놓고 보니 먹고사는 것과는 좀 떨어져 있다 싶은 것들이다. 배짱이가 된 기분. 이건 나의 오래된 콤플렉스다. 고단한 현실과 유리되고 싶은 무의식이 본능적으로 추상적이고 이상적인 생각을 더 즐겨하도록 만드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일들에 조금 더 애정을 기울여 보자 다짐하는 요즈음이다. 나이 들 수록 더, 일상의 일들을 개미처럼 능숙하게 잘할 필요가 있다. 요리나 청소, 바느질 같은 일상의 일들을 맘에 들게 잘해 보려 노력할수록 알게 되는 게 있다. 개미의 시간에 정성을 기울일수록 배짱이의 시간이 충만해진다. 경이롭게도 배짱이의 시간에 더 깊이 사유하고 더 기껍게 향유할수록 개미의 시간을 그것과 같은 밀도로 보내고 싶어 진다. 애써 공을 들인 두 시간은 서로를 추동하여 위로 밀어 올린다. 개미로 살아야 하는 나와 배짱이여야 하는 내가 공존하며 서로에게 그저 살아 내야 할 하루하루의 시간들을 견딜 위대한 힘을 주는 법을 배워가는 중이다.


"삶이 문화이고, 삶이 예술이죠. 먹고, 자고, 마시고, 입는 모두가 그렇죠." 어제 기사에 성파 종정 스님의 말씀이 실렸다. 문학도 미술도 음악도 예술이고 먹고, 자고, 입는 것도 예술이다. 이건 나눠지는 게 아니다. 윤기 나게 잘 지은 밥도 예술이고 공들여 떠 주신 스웨터도 예술이고 빗질 자국 내며 마당을 쓰는 것도, 마당 쓸다 낙엽 보며 지은 시 한 수도 예술이다. 우리가 삶의 모습을 총체적으로 보고자 할 때 삶은 맛깔난 제철 밥상으로 색색의 반짇고리로 가지런히 개어 놓은 빨래로, 주말 아침 거실의 은은한 음악소리로 봄날 창밖 밤 벚꽃으로 아이가 그린 작은 그림의 모습으로 무시로 온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존을 위협하는 절대적 곤궁함을 벗어난 지 한참 지난 현대에도 우리는 늘 마음의 허기를 안고 산다. 허기지게 궁핍하게 살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 하지만 그렇게 살지 않을 방법을 알고 있는 이는 많지 않아 보인다. 풍요의 비밀은 매일의 위대한 일상 안에 서로의 밀도를 채워가며 단단해지는 개미외 베짱이의 두 시간 사이에 있다는 걸. (알고 있다가도 너무 자주 잊는다.) 다만 예술이어야 마땅한 우리 삶의 모든 순간에 우리가 갖춰야 하는 예의는 그 순간들이 우리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예술임을 알아보는 눈을 갖는 것, 예술이 되도록 애정을 기울이는 것,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이는 것이다. 된장찌개가 맛있게 끓기를 기다리는 순간에도 골무와 바늘꽂이를 꼼꼼히 그리는 시간에도 풍요로운 삶의 비결이 함께 숨어있다. 이름을 얻든 그렇지 못하든 간에 진실은 우린 모두 자기 삶을 빚고 있는 예술가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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