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대를 잡은 사람은 나
강남 금싸라기 땅 건물 사이 겨우 끼워 세워진 예식장은 연달아 여러 집 하객들을 맞이하느라 분장 다 번진 피에로처럼 지쳐 보였다. 게으르고 깜냥 없는 주인 탓에 주말 북새통에 끌려 나온 차는 옹색한 지하 주차장을 꾸역꾸역 밀고 들어 서 차와 사람으로 범벅 인 틈을 비집고 한자리 간신히 차지했다. 토요일 늦은 오후라 새신랑에게 ‘오래오래 잘 살라’는 인사를 건네고 금세 돌아 나올 참이었다. 겨울 짧은 해가 뉘엿거리고 있는 하늘엔 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
짧은 축하 인사를 건 낸 후 내려와 세워 둔 차에 올라타고 주차 안내원의 손짓에 따라 천천히 차를 앞으로 빼는 순간 갑자기 밀고 들어와 내 차 왼쪽 앞 범퍼를 들이받는 차. 어어어… 하다 섰다. 이건 뭐지. 차에 가만히 앉은 채로 한 5초 생각했다. 내 차 왼쪽 앞 범퍼와 저 차 오른쪽 옆구리가 부딪혔다. 왜 이런 일이 생겼나, 누구 잘못이지? 일단 내려보자.
사고의 전말은 이렇다. 주차 아르바이트생이 내 차 바로 앞에 서서 앞으로 오라는 수신호를 한 것을 나는 나더러 나오라 한 것으로 알고 나간 것이고 실재로는 주차장 입구에서 들어오던 저 차더러 오라 한 것이어서 저 차는 저 차대로 신호 따라 우측으로 돈 것이었다. 전후 상황이 파악된 두 운전자는 황당했는데 연신 죄송하다는 주차 아르바이트생을 다그칠 수도 없고, 식장 측 관리인도 별 대책 없다 하며 가을 옥수숫대처럼 서 있을 뿐이었다. 양측 보험 회사를 불렀다. 보험회사 직원 말이 주차 안내원은 운전자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에 불과하고 모든 운전의 책임은 부주의한 운전자가 져야 한다는 것이다. 졸지에 두 운전자는 어이없게 당한 자가 아닌 부주의한 자가 되었다.
멀리서 보고 있을 때는 납득이 되던 일들도 내 눈앞에서 벌어지면 이해가 어려운 때가 있다. 그 반대인 경우도 있다. 닥쳐보면 또 그 게 아닌 얘기들. 타인의 상황으로 전해 들었다면 그건 그렇지, 보험회사 직원 설명도 이해 됐을까. 막상 내 경우가 되니 괜히 억울한 생각이 들고 그 말이 맞는 가 싶었다. 나오라고 해서 나간 것뿐이지 않은가. 나오라는 손짓만 없었어도 사방 두루 살피며 새우젓 눈을 하고 ‘주의’해서 별일 없이 빠져나왔을 것 아닌가 말이다. 수신호는 그냥 참고용 안내일 뿐이라니.
그 후로도 며칠 내내 억울한 마음이었다가 차가 다 수리되어 나온 날 저녁 내 잘못이다 인정하기로 했다. 안내는 안내일 뿐 그 걸 따르느냐는 운전자가 결정할 일이고 결정했으면 그다음 일들도 온전히 운전한 사람의 몫인 거라고. 맞는 말이다. 어떻게 그러냐고 생떼를 쓰기엔 사는 일이 그랬었다는 걸 기억할 만큼은 겪었다. 매일매일 등대로 삼으라고 외치는 수많은 안내와 지침, 신호를 따라 가지만 내가 아닌 누구도 꼭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 거라고 말하지 않았다. 나만이 그럴 수밖에 없음을 알고 그렇게 해야만 하는 당위를 가지고 있다는 걸 그냥 알게 돼 버려서 종이에 배인 가늘고 긴 상처에 짠물이 닿은 것 같은 마음 일 때가 있다.
묻지 않고 사다 주신 옷을 입기만 하면 되었던 어릴 적처럼 지금도 가끔 누군가 그래 줬음하고 철 덜든 생각을 한다. 애 닳게 결정하고 선택하는 수고로움 없이 내 취향에 맞춤인 선물이 눈 뜨면 내 무릎에 놓여 있길. 다 커버린 사람에게… 피식 웃다가, 문득 내가 누군가에게 맞지도 어울리지도 않는 알록달록 옷가지들을 호들갑 떨며 수선스럽게 들이 밀고 있지는 않은 지 뜨끔해졌다. 아침 출근길 로비에서 만난 어린 직원들에게 별 시답지 않은 소리를 한 것은 아닌지. 점심시간을 함께 한 동료들에게 좋아하지도 않는 메뉴를 눈치 없이 권한 건 아닌지. 하얀 종이 같은 딸내미 얼굴을 보며 위험 천만한 수신호를 마구 날린 건 아닌지…. 모르겠다. 현명한 지인들이니 쓸데없이 헷갈리는 잡설일랑 귓등으로 바람처럼 흘려보내고 부디 삶의 골목들 안전 운행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