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들려줘

네 이야기를

by 하루

출장 차 유럽에 머물렀던 9일이 최장 해외 체류 기간인 퓨어 오리지널 코리안,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국어를 자물쇠에 열쇠 끼우듯 맞춤히 쓰는 것이 통 어려운 나. 한국말도 사정이 이런 내가 가끔 업무상 어쩔 수 없이 써야 하는 부실한 잉글리시의 압박을 완화시켜 보려 들인 최소한의 노력이 아침 사무실 영어수업이었다.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일주일 두세 번의 아침은 “굿, 모~닝!” 낭랑한 인사와 함께 바로 딴 사과 베어 물 듯 상큼하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손꼽아 기다리지도 않았는데 예의 없이 왔다 가버린 세월 뒤에 의지는 박약해지고, 체력은 저하되었으며, 수준 낮은 영어는 나아질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언제부턴가 한 주 한번 평소보다 두어 시간 이르게 집을 나서는 것도 장마철 솜이불 털 때마냥 힘에 부쳤다.


기름에 전 튀김가게 꽈배기 같은 혀가 잠이 덜 깬 머리에서 힘겹게 튕겨져 나오는 영어로 횡설수설하는 말? 이라기보다 소리를 세 번째(2년을 함께한) 영어 선생은 알아듣기나 하는 건지. 웅숭깊은 대화는 나누려야 나눌 수도 없어. “오늘 어디서 무슨 사고가 났대” “날씨 좋다, 그치” “주말에 뭐 해?” “요즘 하는 일은 어때~” “최근에 재밌게 본 영화나 책?” 뭐, 이런, 참 잡스러운 습관적이고 표피적인 대화가 오고 갈 뿐.


그러다 가끔 이런 사소한 소재마저 다 소진시키고 나서도 수업이 한여름 더운 해처럼 길게 남아 있을 때면 불쑥 아주 가깝고 친한 이들에게도 좀체 하지 않는 이야기를 하게 될 때가 있다. 예를 들면 가족 얘기 같은. 묵히고 묵혀 곰팡이 피고 시린 뒷방 오래된 뒤주 같은 사연들을.


‘얘는 뜬금없이 이런 얘길 왜 나한테…’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나 난감해하는 선생의 얼굴을 말갛게 바라보며 아무것도 모르는 척 줄줄 논픽션 소설을 쓴다. 그렇게 한참 혼자, 그것도 웃기는 영어로, 얘기들을 그늘에 내어 놓고 나면 찬 소나기가 지나간 것처럼 후드득 마음이 선선해진다.


진공 포장한 듯 꾹꾹 눌려 있었던 것도 몰랐던가. 꺼내 놓고서야 울퉁불퉁해진 못난 생김이 안쓰럽다. 묻어둔 이야기가 있을 때는 아무 시, 누구에게라도 비칠 일이다. 치유하는 힘이 이야기에 있다. 적절하지 않은 곳, 맞춤이 아닌 시간에 고리짝 내 얘기를 듣게 된 젊은 선생께는 미안한 일이지만, 그는 뒤돌아 잊으면 그만이다. 굳이 기억되지 않아도 이야기들은 다 괜찮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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