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워요, 상뻬

진정한 우정

by 하루

2주 전 방 서랍을 정리하다 3년 전 독서, 메모 기록장을 발견하고 책상 위에 올려 두었다가 무료한 일요일 오후 문득 들추어 보니 2021년 기록들이다. 3년 전 읽거나 듣던 책과 음악의 목록과 짧은 메모들. 계통 없이 빼곡히 적힌 글자들이 그때를 소환한다. 그 가운데 장 자끄 상뻬의 "진정한 우정"에 나온 문장을 적어둔 페이지에 눈이 머문다. 2021년 12월 11일의 기록인데 상뻬는 이듬해인 2022년 8월 11일에 세상을 떠났다.


S 이봐요, 마르크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합니다. 난 아무것도 발명해 내지 않았어요. 아무리 기를 써도 절대 풀리지 않을 엄청난 문제는 고독입니다. 인간은 무엇을 하든지 혼자라고 느끼게 마련입니다. 그러면서 이런 가학성 취미가 다 뭐냐고 저 높은 곳에 있는 존재를 원망하죠! 도대체 무슨 이유로 우리를 이토록 고독한 존재로 만들었냐고요? 정말이지 희극적이면서 부조리하고, 또 무지 웃기는 일이죠.

......

S 늘 그렇죠, 그 미묘한 균형의 문제입니다.

L 아, 또다시 균형의 문제로 돌아왔네요! 줄타기 곡예사처럼, 우리 모두는 바로 그 균형을 제대로 잡을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그러면서, 줄 끝까지 가 보는 거죠. 혼자서 고독하게 말입니다·····. 우정에 기댈 수 있다면, 이 엄청난 고독을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요?

.......

S 다시 한번 말하지만, 우정은 기적입니다. 우리네 삶에는 작은 기적들이 있을 뿐입니다. 추론이며, 이론, 난 그런 건 믿지 않습니다. 오직 사소한 기적과 우연들이 있을 따름입니다·····.


고인의 전기를 쓴 작가이자 친구인 마르크 르카르팡티에와 상뻬가 나눈 우정을 주제로 한 대화를 읽으며 마음에 담아두려고 적어 둔 모양이다. "... 고독을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요?"라고 쓴 글 밑에 나름 내 의견을 붙여 적어 둔 게 보인다. "고독은 극복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그저 함께 갈 뿐. 바라건대 사이좋게..."라고 썼다.


난 초등학교 친구가 없다. 서울에서 시작해 전라도를 거쳐 부산에서 마친 초등학교 6년, 3번의 전학이 있었으니 길어야 1, 2년 남짓 우정을 길게 쌓을 형편이 못 되었나 보다. 전학생은 며칠간 손님의 자격을 획득한다. 호기심의 대상이자 경계의 대상이 된다. 친구들은 쉬는 시간 주위를 맴돌며 이런저런 탐색 후 이내 새로 온 이방인에게 향하던 관심을 거두고 다시 끼리끼리 놀던 대로 논다. 이번엔 전학생 차례다. 다가갈 까, 그냥 혼자 지낼 까. 돌이 켜 보면 크게 상처받은 일도 상처 준 일도 없이 무난히 손님 자리에서 내려와 현지인 코스프레를 하며 금세 어울려 지냈던 듯하다. 전라도에서 온 아이가 경상도 억양을 흉내 내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만 여기가 진짜 내가 있어야 할 곳인지 확신하는 건 긴 시간이 지나도 쉽지 않았다. 늘 다른 곳에 가 있는 마음을 온전히 주는 법을 몰랐고 나와 너를 구분하는 안전하고 편리한 거리가 필요했다.


사실 중고등학교 친구도 거의 없는 걸 보면 비단 잦은 전학의 문제인가 타고난 성격의 문제인가 두 측면이 합쳐진 증폭 작용인가 궁금하다. 별 아쉬움 없이 40여 년을 지내 왔어도 아주 가끔 매미소리 시끄런 여름밤이나 바람 불어 스산한 가을 오후 헐렁한 차림으로 동네 친구와 치킨 안주 삼아 시원한 맥주 한잔하고 싶을 때가 있다. 가까이에 내 유년기와 십 대를 아는, 그 시간들을 경계 없이 두런두런 나누며 증명해 줄 증인이 없어 외톨이 같다 느껴질 때가 있다. 지금 살고 있는 동네로 처음 이사 올 때는 이렇게 오래 머물지 몰랐지만, 어쩌다 보니 딸아이는 유치원, 초, 중, 고를 한 동네 같은 집에서 다녔다. 어릴 적 18년을 한 동네에 산다는 건 어떤 경험일까. 어른이 되어 직장을 다니며 산 18년과는 시간의 밀도가 다르지 않을까 짐작해 볼 뿐이다. 맞벌이로 늘 한적한 집에 아이 친구들이 때때로 놀러 온다. 자주 와라 얘들아. 그리고 오래오래 같이 잘 지내렴. 나이 들어도 어릴 적 친구랑 노는 게 제일 신나니까.


상뻬와 마르크는 어릴 적 친구는 아니지만 두 사람이 나눈 대화를 읽으며 서로 많은 것을 나누는 "진정한 친구"(상뻬는 이 단어가 동어 반복이라고 말한다.) 임을 알겠다. 나는 친구는 아니지만 상뻬에게 내적 친밀감을 가지고 있다. 40여 년 전 "속 깊은 이성 친구"라는 책을 친구에게 선물 받아 읽고는 그의 그림과 글을 보고 읽는 것이 좋아 그의 책이 보이면 한두 권씩 사 읽었다. 왠지 쓸쓸하거나 외톨이라고 느껴질 때 책꽂이에서 "꼬마 니콜라" 같은 책을 꺼내 본다. 묘한 향수를 자아내는 그의 그림과 유머 가득한 글이 실린 그의 책을 볼 때면 마치 오래되고 다정한 친구가 옆에 슬그머니 와 앉아 있는 느낌을 받곤 한다. 나는 지금 최선을 다해 너를 위로하고 있다고 소리 높여 외치지 않고도 그의 책은 그 일을 해낸다.


어째 추울 때보다 더울 때 더 외로운 건지 알 수 없지만 무더운 여름 한복판 더위의 강도만큼이나 찐득하게 고독이 달라붙을 때 상뻬의 그림책을 보며 외줄 타기를 계속해 보기로 한다. 그리고 나면 밖에 나가 커피 한잔 하며 두런거릴 친구를 만나 기적을 체험해 볼 마음이 생긴다. 고마워요 상뻬, 그곳에서 이곳에서의 상처일랑 모두 잊고 아픔 없이 편안하기를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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