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전부를 건 우리, 너희에게 전부를' 지나가는 버스에 큼지막이 써진 사교육 광고 문구를 보다가 전부를 건다는 건 어떤 걸까 문득 궁금해졌다. 먼저, 어떤 것에 전부를 걸어본 적이 있었던가? 글쎄... 딱히 그랬던 적은... 음... 아무래도... 떠오르지 않는데.... 어쩜 인생의 짧은 한 순간이라도 내 전부를 걸어 본 대상이... 음... 없단 말인가... 한심하군.... 근데, 전부라는 건 뭐지? 내 시간, 노력, 열정, 관심, 인내가 합쳐진 피, 땀, 눈물? 바로 목숨. 숨을 쉬며 살아있는 힘.
저런 광고가 먹히는 걸 보면 누군가의 전부를 걸지 않고서는, 영혼을 갈아 넣지 않고서는 성공이란 걸 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세상인가 보다.('그런데 내 입시에 왜 그들의 전부가 걸리는 걸까?' 의문을 품어볼 만한데..) 요즘 세상이 말하는 성공과는 먼 평범하기 짝이 없는 삶을 사는 나. 전부를 걸었기 때문에 크게 이루었다 말하는 사람들의 성공담을 별나라 얘기로 들을 뿐 그렇게 한번 살아보고 싶다 생각한 적이 없는 나. 역사에 기록될 대단한 성공을 누린다 해도 결코 목숨 같은 걸, 자기 전부를 어떤 대상에게 걸고 싶지는 않은(건지 그러지 못하는 건지, 그게 같은 말인지) 나. 영혼을 갈아 넣는다는 말에 저 밑 깊은 곳에서부터 화가 올라오는 나는 은행 이자 빠져나가 듯 철 없이 착실히 나이만 먹었다.
무언가를 진심으로 원하면 그 원하는 걸 얻기 위해 많은 걸 거기에 쏟아붓고 애를 써야 한다. 그렇게 노력을 해도 될까 말까다. 그게 삶의 덧셈 뺄셈이지. 맞다 세상에 공짜가 없다니까. 그런 노력 끝에 얻은 열매는 얼마나 달고 뿌듯한가. 그렇게 노력하는 시간들이 주는 보상이 분명히 있고 삶의 어떤 시기에는 다른 시기보다 그 노력이 집중되는 때도 있다. 그런 야박한 생의 덧셈, 뺄셈을 무시할 수도 무시해서도 안될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대상에, 어떤 목표에 내 전부를 몽땅 걸고 그것만을 위해 전력으로 달리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다 걸진 말고 조금 남겨두었으면. 그 남겨진 일부가 속도를 조절하고 방향을 가늠하며 전체를 통솔할 수 있기를. 일부러 어렵게 남겨둔 영혼은 주변을 살피고 사색하고 같이 거닐고 함께 노래하고 자주 하늘을 보고 감탄할 수 있기를 바란다. 주변에 그런 삶이 성공적인 삶이라 생각하는 친구들이 가득 차 넘치기를 고대한다. 사람들 사이에 성공이라는 것 자체에 큰 의미가 부여되지 않는 세상이 되기를 꿈꾼다. 각각의 삶을 생각할 뿐 성공한 삶과 그렇지 않은 삶이 따로 있지 않은 그런 세상이기를 소망한다. 꿈이 참 소박하다.
어딘가를 향해 앞만 보며 전력으로 질주하는 삶은 자기 자신뿐만이 아니라 함께 하는 사람들의 삶도 위태롭게 만들기 쉽다. 성공을 이루었다고 평가받거나 자부하는 사람들이 그 성공을 위해 같이 하는 사람들의 영혼을 함부로 갈아 쓴 결과 주변 사람들의 삶이 황폐해지는 걸 볼 때가 있다. 이런 종류의 억압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고 아무리 큰 보상이 뛰따른다 해도 상대의 영혼에 가해진 피해를 복구하기 어렵다. 심지어 자신의 영혼에 가해진 상처도.
내 전부는 태어날 때부터 온전히 내게 속해 있는 것으로 어딘가에 걸 수 있는 카지노의 칩이 아니다. 누군가의 전부, 그 목숨도 그렇다. 숨을 쉬며 살아 있는 힘은 내 존재 밖의 대상이나 목표에 투사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며 내 안에 있어 생 전체를 끌고 가는 힘이다. 우리는 그 힘으로 살고 꿈꿀 수 있으니 그것을 혹여 어딘가에 모조리 다 걸어버리지는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