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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민 Dec 07. 2023

장례식장

결혼식장은 부모 보고 오고, 장례식장은 자식 보고 온다는 말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박호산 배우가 연기한 삼 형제 중의 맏이 박상훈은 작은 청소업체에서 일하는 본인의 처지를 한탄하며, 어머니의 장례식장이 쓸쓸할까 봐 걱정한다. 그러다 대기업 상무 후보가 된 동생의 소식에 너무나 기뻐하며 '정희네'로 온 동네사람을 불러 모은다. 정희네 앞 골목길에 서서 화환으로 가득 찬 장례식장과 조문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장례식장을 상상하며 눈물 겨워한다.


아마 이 드라마 때문에, 남편은 어머니의 장례식을 종종 상상했던 것 같다. 남편은 외아들이라 언젠가 있을 어머니의 장례에 대한 부담을 오롯이 지고 있었던 것 같다. 화환과 조문객으로 가득 찬 장례식장에서 어머니 가시는 길이 쓸쓸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과 한편으로 어머니 가시는 길에 '아들 잘 키웠다'는 말 듣게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어머니께 인사를 하고 다시 흰 천으로 얼굴을 덮고 나와 직원의 안내에 따라 병원에서 진행하는 몇 가지 절차를 진행했다. 우선 사망진단서를 발급받는데 중요한 것은 어머니의 주소였다. 내 집처럼 드나들었던 그 집이 어디 있는지는 알지만 정확한 주소를 몰랐던 우리는 잠시 우왕좌왕했다. 등본을 발급해 보라는 직원의 안내에 따라 무인발급기를 찾아 주소를 확인하고 네이버지도 검색을 해 한 번 더 확인했다. 주소를 확인하고 사망진단서를 발급받았다. 사망진단서는 보통 10부를 발급받는다고 한다.


응급실 수납을 하는 순간부터 직감이 왔다. 아, 이 장례의 모든 주체는 나와 남편이겠구나. 집안 어른들이 돌아가셨을 때 마냥 슬퍼만 하던 위치가 아니라, 장례의 모든 걸 신경 써야 하는 주체, 즉 상주가 내 위치라는 걸 깨닫고 '정신 차리자'를 되뇌었다. 장례식장을 어디로 할지부터 시작해 꽃, 수의, 식사, 화장터, 일정 등을 선택해야 했다. 마음으로 선택하지만 비용적인 부분도 무시할 수 없는 그런 과정이었다. 다행히 어머니가 돌아가신 병원이 마침 그 지역에 새로 생긴 대학병원이었고, 위치도 나쁘지 않아 장례식장을 선택하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코로나 때문에 화장터 예약 잡는 게 걱정이라던데 다행히 일정에 맞게 예약할 수 있었다. 모든 게 결정된 시간이 이미 밤 10시라 장례식은 다음날 오전부터 진행하기로 했다.


집으로 오는 길에 목사님과 우리를 전적으로 지원해 주고 아껴주는 지인들에게 연락을 했다. 집에 도착해서는 사무실에서 들은 이런저런 정신없는 비용을 정리해서 총비용을 예상해야 했고, 미리 소식을 듣고 기다리고 있던 분들에게 연락을 했고, 영정사진으로 쓸 사진을 골라야 했다. 며칠간 집을 비워야 해서 짐을 잔뜩 챙겼고, 집 정리도 좀 해야 했다. 1시가 넘은 시간이었고 잠 못 드는 남편과 위로하며 한참을 울고 나니 3시가 되었다. 조금 자고 아침 일찍 출발했다.



아버지의 장례식장을 선택하는 일은 조금 더 복잡했다. 아버지의 고향은 강원도, 사는 곳은 남양주, 일하는 곳은 포천, 우리가 있는 곳은 서울이라 거점이라고 할만한 곳이 없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병원의 장례식장은 교통이 너무 복잡한 곳에 있었다. 장례식 한번 해본 것도 경험이라고 우왕좌왕 없이 차분히 서울에서 좋다고 하는 몇 곳에 전화를 걸어 주차가 편한지, 자리는 있는지, 비용은 어떻게 되는지 등을 확인하고 괜찮아 보이는 곳으로 결정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병원과 장례식장이 다르니 운구하는 절차가 필요했다. 돌아가셨음에도 불구하고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다는 확인서가 필요하다고 해서 장례식장과 중환자실 직원분이 한참을 통화했고 이래저래 증명서를 발급해 장례식장에 보냈다. 운구 담당 직원분이 오셔서 중환자실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운구 준비를 마치고 나오는 한 10분 정도의 시간 동안 어두운 대기실에 앉아있었다. 아, '아 이제 시작이구나'하는 두려운 마음과 '그래, 이번에도 잘 해내면 돼' 하는 단단한 마음으로.


남편은 차로 장례식장으로 가고, 나는 운구차를 타고 이동했다. 담당 직원분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남편의 친가는 제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집이었다는 게 생각났다. 아... 감사하게도 아버지와 형제분들 모두 자식에게 제사를 물려줄 생각은 없다고 하시면서 본인들이 제사를 다 진행하셨다. 딱 한번 제사를 참석하던 날, 작은 어머님들께 들었던 제사상차림 잔소리가 생각나면서 잠시 머리가 지끈했다. 마침 운구 담당 직원분이 상조회가 있는지 물어봤고, 없다고 하자 상조회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함께 한 분을 소개해주었다.


도착한 장례식장 사무실에서 간단한 계약을 하고 나머지는 상조직원과 진행하겠다고 했다. 11시가 가까운 시간이었다. 그 밤에 갑작스럽게 온 직원분은 정장차림에 머리가 살짝 희끗한 어르신이었다. 첫인상을 보자마자 잘한 선택이라는 직감이 왔다. 마음과 비용적인 부분을 적절히 고려해 아쉬움 없이 많은 것들을 선택하고 나오니 1시가 다되어갔다. 근처 모텔에서 잠깐 자고 일어나 장례식장으로 갔다.


어머니, 아버지의 죽음을 아직 온전히 받아들이지도 못한 상태의 자식들이 진행해야 하는, 진행해야 했던 일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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