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공항으로 엄마를 마중 나가던 날 엄마는 나를 보자마자 할아버지 이야기를 꺼냈다. 할아버지의 상태가 좋지 않아서 예정된 일주일을 다 채우지 못하고 돌아가야 할 수도 있다고. 엄마가 도쿄에 머무는 사흘 동안 엄마의 휴대폰 속에서는 전화가 끊이지 않았다. 휴대폰 너머 낯선 어른들의 목소리가 들릴 때마다 나는 애써 모르는 척을 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은 건 한낮의 오후였다. 병원으로부터 소식을 들은 삼촌이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와중에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나의 작고 좁은 자취방 주방에서 엄마는 몇십 분을 그렇게 울었다.
다음 날 엄마를 배웅하고 집에 돌아와 현관 앞에 한참 주저앉아 있었다. 낮게 울리는 냉장고의 기계음이 귓가에 거슬렸다. 냉장고 소리가 원래 이렇게까지 컸던가. 집이 좁은 탓에 어디로 숨어도 잔, 잔, 잔, 잔, 소리가 머리를 울렸다.
할아버지에 관한 마지막 기억은 남동생을 두고 화내는 모습이었다. 치매가 발병되고 단기 기억을 잃기 시작한 할아버지는 눈앞에서 인사한 남동생을 알아보지 못하고 왜 자신에게 인사하지 않냐며 큰 소리를 냈다. 내가 어떤 사람인 줄 알고 인사도 하지 않느냐고. 자신을 우습게 보는 거냐며 한식당에서 언성을 높이던 할아버지가 내 기억 속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 동안 쌓인 설움이 많았던 엄마는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고 그 후로 할아버지를 보러 가는 일은 없었다. 할아버지가 죽도록 밉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새삼 보고 싶지도 않았다. 나의 할아버지는 손녀딸을 예뻐한다거나 다정하게 안아준 적 한번 없는 사람이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엄마는 한 번이라도 더 찾아갈 걸 그랬다며 가슴을 두드렸다. 할머니가 암이라는 걸 알면서도 엄마에게 말해주지 않았다는 사람을. 할머니의 유골을 상의 없이 어딘지도 모를 곳에 뿌려버렸다는 사람을. 할머니가 엄마에게 줬다는 집도 팔아버리고 유품도 모조리 재혼한 여자에게 줬다는 사람을. 엄마가 생활고에 시달릴 때 외면했으면서 막내 삼촌의 사업 비용은 모두 대줬다는 사람을.
그런 사람을.
그런 사람도 보고 싶은 날이 오게 될까.
왜 가족은 그럴 수밖에 없는 걸까.
나도 장례식에 가야 하는 게 아니었냐고 묻자 엄마는 애써 오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할머니의 장례식을 치르고 누군가의 죽음을 마주하는 게 무서워졌다고. 너도 그럴까 봐 그 장면을 보여 주고 싶지 않은 거라고. 문득 친구에게 언젠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나는 너무 사랑하면 그 상대가 나한테서 아예 사라질까 봐 두려움이 앞서는 사람이야. 핏줄의 후천적 트라우마도 계승될 수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영상 통화 카메라로 비치는 장례식장은 고요하고 초라했다. 그곳의 냉기가 뼈를 뚫고 지나가듯 온몸에 서렸다.
영정 사진 속 할아버지 모습은 몇 해 전 마지막 기억 속 모습과 같았다. 그게 조금 미웠다. 엄마는 그 사이에 흰머리가 늘었고 왜소해지고 있는데 할아버지는 기세등등하던 모습으로 남겨져 있다는 게 괜히 억울했다. 일어나서 엄마에게 사과하기 전에는 떠나지 말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할머니의 유골 정도는 남겨두지 그랬냐고. 엄마가 아빠에게 시집올 때 들고나온 게 고작 할머니가 남겨 준 접시 세트인 게 미안하지도 않냐고. 엄마에게 좀 더 잘 해주지 그랬냐고. 그런 말들을 속으로 삼켰다. 할아버지의 죽음이 아주 슬프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수월하게 받아들일 수도 없는 법이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한 계절이 지났다. 엄마는 연락이 끊겼던 이모들과 연락을 다시 하기 시작했고 삼촌과 만나는 일도 잦아졌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돌아왔다. 남동생은 장례식 이후에 다시 외가 친척들과 만나게 된 게 기쁜 눈치였다. 이제 좀 가족 같았다. 보이지 않는 빨간 실로 묶여 있기 대신 개인의 역사를 공유하는 사람들. 한 세대와의 연결이 끊어지더라도 또 다른 세대가 역사를 계속할 사람들. 영상 통화 화면 속에서 친척들이 모여 있을 때마다 도리어 할아버지의 죽음을 실감한다. 어떤 죽음으로 하여금 계속되는 삶이 있다. 이제야 할아버지와 작별할 용기가 생겼다. 봄의 절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