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독백

회신

by 섬광

최근 들어 학교는 신입생 모집으로 분주하다. 정문 앞에는 각 학과별로 실기고사 안내 표지판이 세워져 있고 강의실의 책상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떨어져 있었다. 작년 이맘때교수님이 22 학번이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23 학번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신 게 떠올랐다. 그 뒤로는 흩어지는 교수님의 말소리를 들으며 손톱으로 책상을 탁, 탁, 두들겼다. 두꺼운 옷을 꺼내고 찬 바람에 귀가 시린 시기가 오면 어김없이 내가 입시를 준비하던 시기가 떠올랐다. 여름 내내 깊은 굴곡을 지나고 적응이 겨우 됐을 무렵에 실기고사를 보러 다녔다. H 대는 나의 열일곱 첫 실기고사에서 처음으로 예비를 준 학교였다. 가망은 없는 숫자였지만 엄마는 예비 번호만으로도 기뻐하시며 딱 한 번만 더 해보자고 말씀하셨다. 딱 한 번만. 한 번 더 해보고 안 되면 그땐 정말 일본 대학으로 방향을 돌려보자고. 그렇게 학원에서 과외를 옮기면서 1 년간 입시를 다시 하였다. 그리고 이듬해 겨울, 권태와 방황을 반복하던 끝에 겨울 H 대에 무사히 합격했다.

3월 2일 개강 첫날의 마음은 그랬다. 글도 부지런히 쓰고 영화와 연극도 자주 보러 다니고 책도 많이 읽는 누구보다 자유로운 예술인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개강한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이곳은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보다 글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나처럼 적당히 글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글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 회사를 그만두고, 오래 준비한 미술을 포기하고 온 사람들 속에서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일본어를 계속할 수 있었던 데에도 그런 마음들이 일부 작용을 했다. 좋게 말하면 일본어학과는 일본어를 잘해도 밑져야 본전이지만 타과생인 주제에 뛰어나게 잘하는 게 있다는 건 경쟁력이 된다는 걸 알았다. 동시에 까놓고 말하자면 나도 당신들만큼 좋아하고 잘하는 게 있다는 최후의 자기 방어였다. 1 학년 1 학기 적잖이 충격을 받은 나는 그 후로 일절 글을 쓰는 일을 기피했다. 소설 대신 레포트를 내고 산문으로 입학을 했으면서 소설 강의는 수강하지 않았다. 그건 단순한 도피이기 이전에 더 이상 이 집단에서 밀려나고 싶지 않다는 희망 사항에 더 가까웠다.

너만큼 기록하는 걸 좋아하는 애를 본 적이 없어

문예창작과라는 주제에 글을 잘 쓰지 못한다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아서 공개적인 글은 잘 쓰지 않았다. 스스로 글을 좋아하지도 잘 쓰지도 못한다고 부정해 온 주제에 이상하게 블로그와 각종 SNS에 문장을 늘리는 일이 잦았다. 상념이 가시화되지 못하면 무언가 몸을 묵직하게 누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주기적으로 글을 써야만 했다. 그리고 이따금 네 글을 좋아한다는 사랑 고백을 들었다. 그럴 때마다 고백에 적절한 대답을 찾지 못해 못 들은 척을 하거나 눈동자를 굴리며 대답을 대신했다. 집에 돌아가서는 한참을 곱씹으며 일기에 글씨를 꾹꾹 눌러 적었다. 내가 내 생각보다 글을 사랑했다는 걸 깨달은 건 이미 한참 달아난 후의 이야기였다.

졸업을 앞두고 학점 문제로 어쩔 수 없이 소설 강의를 수강하게 되었다. 1 년 반이 넘는 시간 동안 소설을 그다지 읽지도, 쓰지도 않았던 나로서 60 매 짜리 소설을 완성시키는 일은 고역이었다. 몇 번을 쓰고 읽어보고 다시 쓰기를 반복했다. 잠들기 전에는 수없이 소설 속 장면을 영상화하여 곱씹다가 잠들었다. 몇 주를 그러고 있자니 어쩐지 입시를 준비하던 시기가 다시금 떠올랐다. 온전히 내 손끝에서 태어난 세계 속 나만 아는 인물들과 마지막 온점 후에도 잘 살 거라는 믿음 따위가 말이다. 생각해 보면 늘 내가 글을 쓰는 건 그런 마음에서 시작을 했다.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인물들이 대회에서 우승을 하고, 새로이 도착한 곳에서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지 않기를 바란다는 마음이었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무렵의 마음으로 돌아가서 글을 쓰니 딱 맞게 소설이 완성되었다. 나도 모르는 새 커다란 굴곡을 넘어온 기분이었다. 소설을 다 쓰고도 여러 번 파일을 열어 다시 읽었다.


어릴 때부터 미래의 나에게 편지를 쓰고 꽁꽁 숨겨두곤 했다. 학교를 나가지 않고 집에만 있던 내게 가장 은밀한 친구는 미래의 내가 되었다. 안녕 Y랑은 잘 지내? 공부는 좀 어때? 여전히 G를 좋아하고 있어? 꼭 외고에 붙었으면 좋겠어. 글을 계속 쓰고 있으면 좋겠다. 이런 말들이 편지에 자주 올랐다.


미술에 천부적인 재능을 둔 동생을 부러워하다 글을 잘 쓴다는 칭찬 한 마디에 작가가 되겠다고 다짐하던 내게, 학원이 끝나고 나만 제자리라며 버스 타러 가다 말고 울던 내게, 그럼에도 평생 글을 옆에 두고 살고 싶다던 내게.


이제는 그 어린 물음을 찾아가 대답해주고 싶다. 여전히 글을 쓰는 일에는 너무 많은 용기가 필요하지만 결국 이곳으로 이끌었던 마음은 무엇이었는지 지금의 나보다 네가 더 잘 알고 있을 거라고. 글은 나의 전부가 아니었으며 내가 더 이상 넘어지지 않기 위한 차선책이었다고 해도 여기로 돌아온 데에는 분명 어떤 관성이 작용을 했을 거라고. 왜 글을 사랑했는지 잊어도 좋고 돌아오는 길을 오래 헤매도 좋다고. 그렇지만 여느 소설의 마지막 온점을 찍었을 때 느꼈던 잔잔한 환희와 아쉬움은 앞으로도 기억하고 있기를 바란다고.


돌아오는 주에 소설 합평 일정이 있다. 소설 최종 파일을 올리기 전에 마지막으로 소설을 다시 읽었다. 내 생에 마지막 소설이 될 각오로 썼던 덕분에 대단한 아쉬움은 없다. 글을 시작할 때 첫 마음가짐으로 쓴 소설을 들고 단상에 올라서는 상상을 했다. 적당한 긴장감과 불안이 한 데 뒤섞여 얽힌다. 얼마라도 더 좋으니 이 마음이 나를 붙잡고 있어 주길 바란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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