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인상을 바꿀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에는 무엇이 있을까? 사람들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점은 각자 차이가 있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그 사람의 언어가 가장 중요하다. 어떤 어휘를 쓰는지, 말투는 어떤지, 목소리는 어떠하며, 말 속도가 너무 빠르지는 않은지 등등 말이다.단적인 예로, 아무리 상대가 차은우여도 만나자마자 변성기 없는 여성스러운 목소리를 낸다든지, 매 문장마다 욕을 섞는다든지 하는 모습을 보이면 확 깬다. 맞춤법을 틀리는 남자에게 매력을 느끼지 않는다는 행간의 소문 또한 그런 맥락일 것이다. 그때부턴 사실 잘생기고 아니고가 중요하지 않게 된다. 아 물론, 차은우라면 차라리 직접 문법을 알려주면서라도 만나겠다고 하신다면 말리진 않겠다.
언어의 중요성은 일반인뿐만 아니라 역대의 위인들 또한 항상 강조에 강조를 거듭해 왔다. 데일 카네기는 그의 저서 <인간관계론>에서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인간관계의 핵심이라고 여겼다. 넬슨 만델라는 언어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강력한 도구임을 피력한 바 있고, 마틴 루터 킹 주니어는 "우리의 삶에서 가장 지속되는 유산은 우리의 말이다"라고도 하였다.
그중에서도 언어에 있어서는 단언컨대 비트겐슈타인을 따라갈 수 없을 것이다. "언어의 한계는 곧 세계의 한계다"라는 그의 말은 철학에 굳이 관심이 없더라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명언이다. 사실 나는 <논리철학논고>를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대단한 철학적 깊이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지만, 책의 전체 내용을 관통하는 그 한 마디는 얼마나 내 마음속에 큰 울림을 주었는지 모른다. 우리가 사는 세계를 바꾸기 위해선 쓰는 언어를 확장해야만 한다. 여태까지 무심코 쓰고 있었으나 나의 사고를 가로막고 있던 그 언어의 장벽을 스스로 허물어야 한다. 그리고 그중에는 내가 최근에서야 발견한 단어의 장벽이 하나 있다.
매우 가깝고도 먼 미래
" 가까운 미래에는 모든 단순 사무작업들이 AI로 대체될 것이다."
매우 신뢰도 높은 전문가가 이 말을 하는 걸 들었다고 해보자. 당신은 무슨 생각이 드는가? 아마 단순 사무작업을 주 업무로 하는 사람들은 위기감을 느낄 수도 있고, 관리자들은 그 대체하는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으며 비용은 얼마나 드는지가 궁금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말은 어떤가?
" 내일이면 모든 단순 사무작업들이 AI로 대체될 것이다."
이 말을 듣는다면 우리는 단순히 위기감이나 궁금함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단순 사무작업을 주 업무로 하는 사람들은 당장 내일 해고될 수도 있으니 다른 직업을 알아보기 위해 구인 사이트를 접속하거나 능력을 더 키우기 위해 서점의 자기 계발 코너를 들를 것이다. 관리자들은 그 대체재 중에서 자신의 환경에 가장 적합하면서도 가격 경쟁력이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여기저기 수소문을 하기 시작할 것이다. 무엇이 됐든 절대 우리의 반응은 단순한 감정이나 생각에서 그치지 않는다.
전자에서는 내가 아무리 '가까운'이라는 표현을 썼다고 한들 딱히 그 미래가 그렇게 가까워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내일'이라고 표현하는 순간 상황은 180도 달라진다. 가까움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이 몇 배는 더 뚜렷하게 머릿속에 구체화되기 때문에, 그로 인해 느끼게 되는 감정 또한 훨씬 뚜렷하고 커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위기감은 그 위력이 너무 강력한 탓에 구체적인 행동으로 실현된다.
'가까운 미래'는 사실 생각보다 별로 가깝지 않은 셈이다.
시간 할인
우리가 미래라는 표현에 대해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 이유를 행동경제학에서는 '시간 할인(time discounting)'이라는 표현으로 설명한다. 시간 할인이라는 것은 미래의 가치를 현재의 가치보다 현저히 낮게 평가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지금 당장 50달러를 받을지 1년 뒤에 100달러를 받을지 물어보았을 때, 1년 뒤에 100달러를 받는 것이 훨씬 이득임에도 지금 50달러를 받겠다고 한 피실험자가 과반을 차지했다는 실험은 시간 할인의 대표적인 사례로 워낙 유명하다.
우리가 미래를 위한 투자를 평가절하하는 것은 이때뿐만이 아니다. 예를 들어, 미래의 건강을 위해서 운동을 한다거나 건강한 음식을 먹는 것은 일정 수준의 고통이 따르기 때문에 당장 맛있어 보이는 튀김류나 패스트푸드를 택하는 것도 시간 할인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한참 뒤에나 있을 수능을 위해 오늘 당장 공부하기보다 피시방에 가서 게임을 하는 것을 선택한다면 그 학생 또한 미래의 가치를 낮춰 현재의 쾌락을 더 높게 생각하는 시간 할인의 함정에 빠져있다고 볼 수 있다.
미래보다 가까운 현재
'미래'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매우 추상적이고 상상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렇기에 현재의 나와는 상관없는일이라고 치부해 버리기 쉽다. '미래에 건강이 안 좋아질 것이다', '미래에 성적이 잘 나오지 않을 것이다' 하며 아무리 이야기해 봐야 대체 언제가 되어야 그 '미래'라는 놈이 나타나는 것인지 감을 잡기가 어렵다. 다시 말해 미래라는 단어가 주는 언어의 장벽에 갇혀있는 셈이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했듯, 설사 시간 할인의 함정에 빠져있다고 하더라도 이 미래를 아주 임박한 시간으로 당겨온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아무리 건강에 관심이 없던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내일 당장 암에 걸린다고 생각한다면 오늘 어떻게 해서든 식단을 철두철미하게 지키고 운동을 하러 밖으로 나갈 것이다. 아무리 공부에 관심이 없던 학생이라고 하더라도 시험 바로 전날에는 독서실에 앉아 뭐라도 책을 펼쳐보기 마련이다.
'내일'이라는 단어가 주는 위력은 생각보다 강력하다. 미래라는 모호한 개념을 단숨에 실질적인 형태로 실체화시킨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행동을 강제로 끌어낼 수 있다. "멀지 않은 미래에는 AI 가 모든 단순 업무를 대체할 것이다"라는 말을 들었고 이 말에 신뢰성이 충분히 있다고 느껴진다면, '미래'라는 단어를 '내일'이라고 바꿔 생각했을 때 우리는 미래를 위해 당장 취해야 할 즉각적인 행동을 실천할 수 있게 된다.어떻게 보면 나 자신을 속이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단어 하나를 바꾸는 것만으로 스스로에게 강력한 추진력을 심어줄 수 있다면 그만큼 가성비 좋은 일도 없다.
어찌 됐든 미래는 언젠가는 오기 마련이고, 그에 대한 대처는 항상 그보다 훨씬 전부터 선행되어야 한다. AI 가 세상을 지배하는 세상이라면 딥러닝이나 컴퓨터 언어에 대한 기본적인 배경지식은 갖춰야 한다. 건강이 악화될 게 예견된 상황이라면 장기간에 걸쳐 식습관을 고치고 운동하는 습관을 길러야 하고, 언젠가는 수능을 쳐야 하는 상황이라면 오늘 당장 하루에 정해진 양의 단어를 외우고 수학 개념을 익히며 독해 능력을 배양해야 한다.
미래를 위한 오늘의 실천에 공감한다면, 우리는 미래가 아닌 내일을 보아야 한다.
한계 허물기
나에게 이 언어의 장벽과 관련해 영감을 주었던 것은 영화 <위키드>에서 오즈가 던졌던 작은 대사 한 마디였다. 그는 그가 계획한 미래 도시 모형을 보여주면서 "the city of the future" 이 아닌 "the city of tomorrow"라는 말로 소개했다. 단순하게 future라고 했다면 큰 감흥이 없었을 텐데 이 tomorrow라는 말을 들으니 그 도시의 모습이 되기까지는 정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이 확 실감이 되는 느낌이 들었다. tomorrow는 나의 마음을 깊숙한 곳까지 침투했다.
당신이 그리는 미래의 삶의 모형은 무엇인가? 희망하는 삶의 형태는? 이상적으로 바라는 삶이 있다면 그 삶이 당장 내일이 될 것 같이 살아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에 그치는 것이 아닌 행동으로, future 가 아닌 tomorrow 인 것처럼 말이다. 혹시 모른다. 위기감으로 인해 무심코 행했던 오늘의 행동이 무지막지한 나비 효과를 불러일으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