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항해사 어름 Jul 25. 2024

'당연함'으로 맞았습니다.

해가 서쪽에서 뜰 수도 있잖아요

 여자는 결혼하면 밥하고 빨래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

 


 나에게는 듣기만 하면 이상하게 '발작버튼'이 눌리는 단어가 있다. 바로 '당연히'라는 말인데, 처음 한 두 번 그 단어에 대한 반발심을 느꼈을 때는 내가 왜 기분이 나쁜지 인지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다보니 자연스럽게 그 상황마다 갖는 공통점을 인지하게 됐다. 정말 이상하리만치 그때마다 항상 상대방의 말 속에는 '당연히'라는 말이 포함되어 있었다. 내가 대체 왜 그 단어에 그렇게 집착하게 된걸까?


 

 일단 그 상황들은 모두 공통적으로 어떤 업무나 지식 등을 주제로 하고 있었다. 특히 업무를 할 때 처리하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인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이 상황들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쪼개볼 수 있다. 첫 번째는 내가 그 업무에 대한 경험이 없을 때이고, 두 번째는 내가 그 업무에 대한 경험을 지겹도록 많이 해봤던 때이다.

 

 

 첫 번째 : 내가 업무 경험이 없을 때

 

 나는 당시 이제 막 진급을 통해 새로운 업무를 받아들이고 있는 상황이었고, 그렇기에 사수에게 업무를 한창 흡수하고 있었다. 그 중 하나는 수치를 다소 생소한 엑셀에 순서대로 기입하는 것이었는데, 내가 생각한 순서가 맞겠지 하며 자신있게 수치를 기입했다. 그러고는 그걸 본 사수가 옆에서 한 소리 했다.

 

" 당연히 왼쪽에서 오른쪽이지, 뭐하는 거야."

 

 참 별 것 아닌 말인데 '당연히'가 포함된 그 사수의 말에 나는 순간 엄청 기분이 상했다. 그 양식이 익숙해진 지금은 나도 별 생각 없이 올바른 순서대로 기입하기는 하지만, 처음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충분히 헷갈릴만 했다. 내가 그때 기분이 상했던 이유는, 그 말이 마치 '그걸 모르는 게 문제고 아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당연함'이라는 이름으로 대충 바닥에 원을 동그랗게 그려놓고는, 그 밖에 있는 것은 이상하다고 손가락질하는 것 같았다. "그 원 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네가 알아서 할 일이고 아무튼 네 생각이 문제다."라며 손가락질만 하는 셈이랄까? 손가락질을 하기 이전에 그냥 그 사람의 손을 잡고 안으로 인도해줬으면 간단할 일인데 말이다.


대충 바닥에 원을 그려놓고는, 그 밖에 있는 것은 이상하다고 손가락질하는 것 같았다.

 

 

 두 번째 : 내가 업무 경험이 많을 때

 

 내 담당은 아니지만 일을 할 때 가끔 내가 전체 총괄 역할을 해주는 업무가 있다. 이건 위에서 어떻게 지시하느냐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항상 내가 개입하는 일은 아니다. 그래서 매달 그 업무가 있을 때마다 그때그때 협의를 통해 그 일에 내가 개입을 할지 말지를 결정해야 한다. 어찌됐든 내가 반드시 참여해야 하는 업무는 아닌 것이다.

 

 어느 날, 그 작업이 시작되는지 아닌지 내게 사전에 이야기도 없이 갑자기 시작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보아하니 아무도 총괄하는 업무를 맡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그 작업 담당인 상관에게 "제가 이거 맡아서 하면 될까요?" 라고 물었다.

 

 "그럼 당연히 네가 하지 누가 하냐?"

 

 '당연함' 공격을 이미 여러 번 당해보니 이제 이 말을 듣자마자 '아 또 당연함 공격이군' 하며 나름 의연하게 대처했다. "아 네 그러면 제가 하겠습니다." 대처는 의연했지만 기분은 '당연히' 상했다. 애초에 시작하기 전에 언질이라도 해줬다면 흔쾌히 했을 터지만, 사전 공지 하나 없이 당연히 내가 하는 거라니.. '너는 내가 따로 말하지 않아도 당연한 듯이 해야 해. 그러니 내가 굳이 너한테 양해를 구할 필요는 없지.' 뭐 이런 식이다.


" 너는 내가 따로 말하지 않아도 당연한 듯이 해야 해." 뭐 이런 식이다.

 

 

 당연함의 공격성

 

 '당연하다'라는 단어가 항상 공격성을 갖는 것은 아니다. 이 단어가 어떤 위화감도 없이 찰떡같이 어울리는 경우들이 있다. '해는 당연히 동쪽에서 뜨지', '냉동실에 물을 넣으면 당연히 얼지' 같이 진리나 보편적인 통념을 말할 때처럼 말이다. 이런 말들에는 왜 '당연히'가 이상하지 않을까?

 

 내가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이렇다. 그 이유는 아마 우리는 단 한 번도 서쪽에서 뜨는 해를 경험해본 적이 없어서지 않을까? 게다가 냉동실에 물을 넣으면 넣는 족족 꽁꽁 얼려있지 않은 것을 본 적도 없다. 단 한 번이라도 서쪽에서 뜨는 해를 보았거나 냉동실에서도 물이 녹아있는 것을 보았다면 '당연히'라는 말이 어색해질 것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런 경험을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렇게 예외없이 작지만 확실한 경험들이 쌓이고 쌓여 우리의 '당연함'이 되었다. 다른 말로는, 우리가 보는 시선이 그런 식의 '당연함의 장벽'으로 점점 쌓여올라간다. 그렇게 그 장벽이 충분히 높아졌을 때쯤, 그 너머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고 듣기만 해도 기괴한 그 무엇이 된다.


예외없이 작지만 확실한 경험들이 쌓이고 쌓여 우리만의 '당연함의 장벽'이 된다.

 

 그렇다면 해가 서쪽에서 뜬다고 하는 사람을 미친 사람 취급하듯, 당연함의 장벽 바깥에 있는 사람은 이상한 놈 취급을 받게 될 수밖에 없다. '당연히 이렇게 해야하는 것을 모르는 이상한 사람'이 되고, '당연히 도와줘야하는 것을 무시하는 배은망덕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지구가 평평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보는 듯한 무시가 섞인 시선, 그 비스무레한 시선은 우리의 일상에서 '당연하지 않은' 것들을 향한다.


 

 

 당연함의 역발상

 

 이건 반대로 말하면, 이런 말을 듣고 그 화자의 세상을 유추해볼 수도 있다는 말이다. 해가 동쪽에서 뜨는 게 당연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해가 동쪽에서 뜨지 않는 것을 본 적이 없다는 말이다. 냉동실에서 물이 당연히 언다고 말하는 사람은 냉동실에서 물이 얼지 않은 것을 경험해본 적이 없다는 말이다. 이 사람들은 혹여나 해가 서쪽에서 뜨는 걸 봤다는 사람을 본다면 그를 거짓말쟁이로 몰아가거나 미친 놈 취급할 것이다. 적어도 이 사람들의 '당연함의 장벽' 안에서는 해가 동쪽이 아닌 다른 곳에서 뜬다는 말처럼 황당무개한 말이 없다.


'해는 당연히 동쪽에서 뜨지.' 그 이유는 아마 그 사람이 단 한 번도 서쪽에서 뜨는 해를 본 적이 없어서일 것이다.

 

 그래서 일을 처리함에 있어 하나의 시퀀스밖에 모르는 사람에게 또한 그 절차 외의 모든 것들은 황당무개하다. 비슷한 맥락에서, 자신을 돕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자신을 돕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무언가를 '당연함'이라는 단어로 수식한다는 것은 그 화자가 그것 외에는 일체 경험해본 적이 없었다거나 최소한 그것 외에는 당연한 오답으로 생각한다는 의미다.

 

 

 당연함의 결과

 

 이런 맥락을 통해 나는 '당연하다'라는 말은 해서 득 될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내가 만약 상대방에게 당연함의 화법을 사용했다면, 일단 상대방은 기분이 나쁘다. 자신을 바보 취급했다고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내가 생각하는 정상의 범주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하며 비정상인 취급을 당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나는 그 화법을 통해 상대방에게 내 좁은 식견까지 드러내고야 만다. 내가 생각하는 세상이 딱 이 정도 뿐이라고. 그러니 나에게는 당신을 이해할 능력이나 여유가 없다고 미리부터 선을 그어놓는 셈이다.


 이 두 가지 측면에서 상대방도 기분이 상하고 나도 내 좁은 속을 드러내니 누구 하나 득을 보는 사람이 없으리라.

 

 

 당연함이 알려주는 것

 

 나는 이런 당연함의 화법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이 희망사항을 크게 두 가지 카테고리로 쪼개 보았다. 첫 번째로는 일단 내 입에서부터 그 단어가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상대방의 입에서 나왔을 때 내가 좀 더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일단 이론적으로는 당연함의 늪에서 벗어나려면 '당연하게도' 경험을 많이 쌓는 것이 정답이다. 하지만 세상에 있는 모든 경험을 내가 다 해낼 수 있을 리 없다. 매우 당연하게도 비현실적이다. 그래서 내가 시도하고 있는 방법은 '상상'이다. 내가 쌓아놓은 그 장벽 너머에도 사람이 살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상상을 해보는 것이다. 내 좁은 지평으로는 아직 이 정도까지밖에 보지 못하지만, 그래도 그 밖에 무언가가 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남겨둔다. 그렇게 하다보면 확실히 무언가를 당연함으로 규정짓는 일은 확실히 줄어드는 것 같다. 겸손한 마음으로 내 장벽을 조금씩 넓혀가는 셈이다.


 예를 들면, 내가 '여자는 결혼하면 남편 아침이나 준비하는 게 당연하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해보자.(물론 어디까지나 예시일 뿐이다!) 그런 내가 혹여나 이 '당연한' 여성상을 벗어난 다른 무언가가 있을 수도 있다는 상상을 품고 산다면, 나와는 다른 여성상을 주장하거나 몸소 실천하는 사람이 나왔을 때 조금 더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렇게 내 가치관이 변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도 있는 것이다.


내가 쌓아놓은 그 장벽 너머에도 사람이 살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상상을 해보는 것이다.

 

 이제 문제는 상대방의 말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느냐는 점이다. 일단 이렇게 번지르르하게 생각했어도 결국 막상 그 단어를 들으면 기분은 여전히 나쁠 것이라는 게 문제다. 나도 사실 뭐가 정답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나름 효과를 봤던 방식은 '알아차리기' 방식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어떤 계기로 기분이 안 좋았을 때 왜 안 좋아졌는지 이유만 알아채도 좀 빨리 회복되는 것 같다. 내가 내린 결론대로, 그저 나는 저 사람의 장벽 밖에 있던 사람이었을 뿐이라는 생각을 하면 기분을 조금은 더 쉽게 다스릴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한 발짝 더 나아가서, 가끔은 속으로 상대방 욕을 하며 중얼거리기도 한다. '그렇게 세상을 좁게 살아서 어떡하려고 그러냐. 불쌍하다, 불쌍해!' 내가 정말 아량이 넓고 배포가 큰 사람이라 좀 참아준다는 식이다. 좀 쪼잔한 방법 같지만 회복하는 데 효과는 굉장하다!

 


 

 당연함의 화법에 순간 기분이 확 상하셨다면, 내가 썼던 방법도 나름 괜찮으니 한 번 여유 되면 시도해보시길. 그리고 덩치가 크다고 꼭 당연히 농구를 좋아하라는 법은 없으니, 혹여나 길에서 나를 마주치더라도 "농구 당연히 좀 하시겠네요?" 하는 말은 좀 피해주셨으면 좋겠다.

 

 아무튼.

 

 상상은 세상에서 사람밖에 할 수가 없다는데, 모두가 그 상상을 상대방을 이해하는데 쓰려고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작가의 이전글 제발 아마추어처럼 구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