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바다쟁이

선원의 데이터 전쟁

바다 한가운데서 데이터 사수하기

by 항해사 어름

" 지금 터져?"


선원들이 정말 심심찮게 자주 주고받는 질문입니다. 선박에 같이 승선하게 되면 여러분도 똑같은 질문을 자연스럽게 하시게 될 거예요. 이 질문은 폭탄이 터지냐 김밥 옆구리가 터지냐도 아니고 바로 데이터가 터지는지를 물어보는 건데요. 데이터가 터지는 곳을 찾다가 좌초해 버린 선박도 있을 정도로 선원들에게 데이터는 가장 간절한 요소 중 하나입니다. 선원들의 웃픈 와이파이 이야기, 한 번 시작해 볼까요?


데이터 터뜨리기 대작전

그럼 여기서 질문! 바다에서도 과연 데이터가 터질까요? 일단 우리에게 흔히 익숙한 'LTE' 및 '5G' 표시와 막대그래프는 육지에서 어느 정도 반경까지는 작동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국가, 지역, 날씨마다 차이가 있으므로 어느 정도 거리까지라고 딱 잘라 말하긴 어렵지만, 약 20 km 정도 남짓이라고 생각하면 쉬워요. 거기다가 섬들이 많이 분포하는 해역 같은 경우는 섬 각각을 기점으로 데이터 반경이 다양하게 존재하기 때문에 선원들에겐 그나마 데이터가 잘 잡히는 구간이라고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여기서 문제는, 선박을 운항함에 있어 데이터가 잡히냐 안 잡히냐는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라는 점이죠. 화물을 운반하는 화물선에게는 데이터가 터지고 말고보다 화물을 제때 운송하는 게 비교할 수도 없이 더 중요하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간혹 운이 좋아 앵카링을 연안 가까이에 오래 하고 있다거나, 드리프팅(drifting, 어떤 목적에 의해 엔진을 끄고 바다 위에서 장기간 떠 있는 일)을 육지 근처에서 오래 하고 있다면, 그 순간이 선원들에게는 몇 안 되는 행복 중 하나예요. 얼른 로밍을 터뜨려서 여태 못 썼던 데이터를 마음껏 쓰는 거죠.


특히 드리프팅의 경우에는 바다 위에 그냥 떠 있는 것이다 보니 조류에 의해 위치가 실시간으로 바뀌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데이터가 잘 터졌지만 몇 시간이 지나 데이터가 다시 막히는 경우가 생기기도 해요. 그러다 보면, 당직 시간 동안 핸드폰을 못 쓰니 데이터를 이용하지 못하다가, 당직이 끝나고서야 선박이 데이터 반경을 벗어나 데이터가 막히는 최악의 상황이 펼쳐지기도 하죠. 그럼 그 항해사는 전생에 아마 자신이 극악무도한 죄를 저질러서 천벌을 받는 게 아닌가 하며 추측해 보곤 합니다.


그래서 데이터가 터지지 않을 때는 아쉬운 대로 그나마 선내에서 육지에 가장 가까운 쪽으로 최대한 붙어서 핸드폰을 허공에 번쩍 드는 의미 없는 행위를 하곤 하는데요. 만약, 이런 정체 모를 주술행위를 하는 항해사를 본다면 '데이터 때문이구나'하며 공감하는 온화한 미소를 한 번 지어주세요.


선원들에게 불친절한 핸드폰

물론 데이터가 없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어요. 왜냐하면, 선내의 무선 안테나를 활용한 와이파이가 있기 때문이에요. 아니, 그러면 처음부터 와이파이를 쓰면 되지 왜 그렇게 데이터를 찾아 헤매냐고요? 선원들에게는 와이파이를 마음대로 쓸 수 없는 특별한 이유가 있답니다.


선원들은 유튜브를 자유롭게 보기 어려워요.


선내 와이파이가 가진 단점 중 하나는 그 속도가 제한적이라는 거예요. 유튜브 기준으로는 정말 잘 터질 때 720p 화질로까진 시청할 수 있지만 대체로 480p 화질이 안 끊기고 볼 수 있는 한계예요. 영상통화는 대체로 원활히 된다고 보기 어렵고, 간혹 전화조차도 끊겨서 잘 안 되는 경우도 있어요.


선내 와이파이의 두 번째 단점은 속도가 불안정하다는 거예요. 심할 때는 아예 와이파이 자체가 작동하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대체로 정지궤도 위성과 선박 안테나 사이에 맹목 구간이 겹치거나, 해역 자체가 위성 권역에서 벗어나 있는 경우를 그 예로 들 수 있어요. 저번에 연애와 관련된 글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렇게 와이파이가 아예 먹통인 경우가 담당 이등 항해사에게 제일 곤욕인 순간이라고 할 수 있죠.


선내 와이파이가 가진 가장 치명적인 세 번째 단점은 바로 사용가능량이 정해져 있다는 거예요. 회사에서 기본적으로 한 달 사용량을 사람 한 명당 10GB로 제한하고 있어요. 만약 그 이상을 쓰고 싶다면 데이터를 개인 돈으로 별도 구매해야 해요. 이 와이파이 이용권은 대체로 로밍 가격보다 훨씬 비싸기 때문에, 돈이 아까워서 10GB 내에서 해결하려는 경우가 대다수예요.


핸드폰 업체들은 보통 이런 선원들의 경우를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거의 대부분이 [와이파이로만 다운로드], [데이터로도 다운로드 허용]처럼 이 두 선택지만 선택할 수 있도록 해 둬요. 누구든 앱을 업데이트하거나 다운로드할 때 와이파이를 쓴다고 하면 예외 없이 동의할 거라 생각하는 거예요. 하지만, 와이파이 사용량을 최대한 아끼고 싶은 선원들 입장에서는 이 설정이 다소 불친절하다고 느끼게 돼요. 차라리 값싼 로밍 데이터로 업데이트를 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는 거죠.


특히, 이런 설정들은 우리가 모르는 곳곳에 숨겨져 있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간혹, 자고 일어났더니 와이파이가 다 닳아 없어졌다고 불평하는 선원들이 곳곳에서 속출하게 돼요. 이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선 핸드폰 사용을 하지 않을 때는 와이파이를 아예 꺼두는 방법밖에 없어요. 특히 자기 전에 와이파이를 항상 끄고 자는 식으로 말이죠. 이런 과정을 매번 거치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만 우리의 와이파이를 안전하게 사수할 수 있답니다.


선원들의 출항 전 필수 루틴

이렇게 와이파이 이용에 제한이 있는 탓에 데이터 반경에 들어가는 순간만이 선원들이 가장 해방감을 느끼는 순간이 될 수 있어요. 휴가를 위해 하선할 때, 작업을 위해 접안할 때, 대기를 위해 앵커링 할 때 등이 드디어 와이파이 감옥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순간인 거예요. 선원들은 다시 출항해서 불안정한 와이파이 환경에 노출될 상황을 대비해서 각자가 만반의 준비를 하는데요. 특히 출항하거나 새로운 배에 승선하기 전 선원들의 가장 흔한 필수 루틴이 바로 '오프라인 저장'이에요.


유튜브 프리미엄이나 넷플릭스 등 OTT의 오프라인 저장을 활용해서 보고 싶은 고화질의 영상을 미리 잔뜩 핸드폰에 다운 받아요. 오프라인 저장의 대상은 단순히 영상뿐만 아니라 음악, ASMR, 만화 등 각자의 취향에 따라 달라져요. 아무래도 유튜브 프리미엄을 이용하게 되면 음악도 동시에 다운 받을 수 있어 일석이조라 선원들 사이의 이용도가 높은 것 같습니다.


오프라인 저장이 모두 완료되었을 때, 선원들은 천군만마를 등에 업은 것 같은 든든함을 느껴요. 마치 컨테이너를 잔뜩 실어 만선이 된 24K 컨테이너선 같다고나 할까요? 선박에서는 화물 선적 및 고박이 완료되고 엔진이 스탠바이되었을 때가 출항 준비 완료라면, 선원 개개인에게 있어서는 스마트폰이 영상과 음악으로 잔뜩 만선 되었을 때가 진정한 출항 준비 완료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선원들과 연락하고 싶다면

와이파이의 불안정함은 선원들과 연락하는 것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줘요.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영상통화도 간혹 끊기는 경우가 많아 쉽지 않고, 그나마 음성통화라도 가능하지만 이럴 때도 통화 품질을 개선할 수 있는 선원들만의 팁이 있어요.


예를 들어 태평양 한가운데 있는 항해사와 연락을 한다고 해볼게요. 이때는 당연히 데이터 반경 내에 없기 때문에 전화를 걸 수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음성 통화 어플을 쓰는 게 좋아요. 보통 데이터 음성 통화하면 보이스톡을 많이 떠올리시지만, 이건 우리나라에서만 주로 쓰는 어플이라 그런지 해외에서는 작동이 잘 되지 않아요. 인스타그램의 DM을 활용하거나 WhatsApp 을 사용하는 것이 훨씬 통화 품질이 좋고 끊김 없이 이용할 수 있어요.


또한, 사소하지만 통화 품질을 높일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은 지금 활성화되어 있는 어플들을 전부 끄는 것인데요. 아무래도 평소에 어플을 쓰고 나서 따로 닫지 않고 그대로 방치해 두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어플들을 전부 끄게 되면 스마트폰이 최적화되면서 통화 품질이 좀 향상되는 경우가 꽤 있어요. 선원과 통화를 할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생긴다면 꼭 참고해 보시길 바랍니다.


와이파이의 구원자

요즘에는 너무 다행히도 선박별로 점차 스타링크가 설치되고 있어요. 스페이스 X에서 쏘아 올리고 있는 저궤도 위성인 스타링크에서는 초고속 인터넷을 지원하는 사업을 부가적으로 운영하고 있는데요. 이 스타링크는 매우 성능이 좋아서, 실제로 써본 선원들의 말에 의하면 바다 어느 곳에서도 영상통화는 물론이며 유튜브를 고화질로 끊김 없이 시청할 수 있고 고성능 게임을 온라인으로 육지처럼 즐길 수 있다고 해요.


이제 곧 선원 누구나 배에서 쉽게 게임할 수 있는 날이 올 겁니다.


이 스타링크가 단계적으로 선박별로 설치되었을 때 우리 회사는 어떻게 운영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육지에서와 똑같은 속도로 인터넷을 쓸 수 있는 환경이 된 것만으로도 선원 입장에서는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앞으로는 데이터 하나에 죽고 살며 스트레스받는 선원들이 없어지길 바라봅니다.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

와이파이를 다 써버렸을 때 선원들이 가장 기다리는 것은 한시라도 빨리 입항하는 거예요. 얼른 육지에 다가가야 로밍 데이터를 쓸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발을 동동 구르며 데이터가 터지기만을 빌던 그 항해사는 지금 카페에 앉아 무제한 와이파이를 펑펑 쓰며 평온하게 글을 쓰고 있어요.


혹시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누구는 돈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할 것이고, 누구는 자유를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할 거예요. 저는 배를 타고 내리기를 거듭하면서 한 가지 깨달은 사실이 있어요. 그건 바로,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이라는 거예요.


데이터를 당장 못 쓸 때는 정말 그만큼 답답한 게 없어요. 가끔은 답답함을 넘어 좌절감까지 느껴질 정도예요. 그래서 그때만큼은 데이터만 쓸 수 있게 된다면 소원이 없겠다고 빌게 되더군요. 그런데 아이러니한 건 막상 데이터를 편하게 쓸 수 있는 지금은 그 소중함을 전혀 못 느끼고 있다는 점이에요. 나중에 다시 배를 타게 되면 분명 또 데이터를 갈구하게 될 게 뻔한데 말이죠.


정정하겠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그냥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이에요. 데이터는 아무 잘못이 없는데 제가 소중함을 느끼다가 한 순간에 내팽개치는 것처럼, 세상 그 무엇도 그 가치는 제가 생각하기 나름인 것 같아요. 이제 앞으로는 데이터의 소중함을 더 느끼면서 휴가를 즐겨야겠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또 데이터가 궁해지더라도 너무 거기에 목메지 않고 살아야겠습니다. 그 기회에 안 읽던 책도 좀 읽고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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