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앙!! 빠앙!! 귀가 찢어질 듯 버저음이 울려퍼집니다. 그러고는 이내 방송으로 우렁찬 목소리가 들립니다.
"All Station, All Station Standby!!"
당직 항해사의 목소리입니다. 이제 곧 있으면 입항을 하려는 모양이군요. 모든 선원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스탠바이하라는 의미입니다.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무전기를 어깨에 찬 채 스탠바이할 위치로 뛰어 나갑니다. 혹시 저와 같이 나가보시겠어요? 그렇다면 안전모와 안전화 꼭 챙기시고 저를 따라오시죠! 가는 길에 선원들만 아는 용어들을 슬쩍 알려드릴게요.
1. 누군가가 Pilot Ladder 를 타고 올라옵니다.
2. 밧줄을 Bitt 에 겁니다.
3. 누군가가 Gangway 를 타고 배에서 내려갑니다.
4. My stomach is Santa Maria.
5. Did you 짭짭?
6. 그냥 Let go 하세요.
거주구역 밖으로 나오니 밖은 해가 이제 막 지려는 듯 하늘과 바닷바람이 어둑어둑 하군요. 바람은 꽤 선선하게 부는 것 같아 작업할 때 덥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오, 마침 저기 도선사가 보트를 타고 우리 배쪽으로 다가오는군요. 도선사가 본선의 접안을 돕기 위해 배에 올라타려고 합니다. 도선사는 영어로 Pilot 이라고도 하는데요, 당직 항해사인 친구가 미리 Pilot Ladder 를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Pilot Ladder 는 상선이라면 어디나 있는 도선사 승선용 사다리입니다. 도선사가 승선 또는 하선하기 전에, 본선의 부원 및 사관이 같이 사다리를 미리 설치해 둡니다. 이 사다리를 이용하면 도선사가 도선을 위해 승선하거나 도선을 마치고 하선할 때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어요.
이제 거의 터미널에 다 왔습니다. 선박이 접안해서 안벽에 딱 붙어있기 위해서는 본선에 있는 계류용 밧줄을 이용해야 해요. 말이 밧줄이지 웬만한 사람 허벅지만해요. 선박의 크기가 비교적 큰 우리 회사에서는 특히 더 그렇죠. 이 밧줄을 육상 측에 던져 어딘가에 꽉 묶어놓아야만 접안을 안전하게 하는 것이라 볼 수 있어요. 정말 보통 단단한 곳이 아니면 이 밧줄의 힘을 견뎌내긴 어려울 거예요.
그런 맥락에서 비트라고 부르는 이것은 본선이 접안할 때 반드시 필요한 설비 중 하나입니다. 항만에 가본 적이 있으시다면 한 번쯤은 보신 적이 있으실텐데요. 본선의 계류삭(Mooring Line)을 걸어두는 용도로 활용하는 고박 장비입니다. 이 비트는 터미널의 바닥에 아주 단단히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본선을 안전하게 잡아둘 수 있습니다.
후, 아주 안전하게 접안을 마쳤네요! 접안 현측에 부원들이 Gangway 도 잘 내려둔 것 같습니다. Gangway 는 본선과 육지를 연결한 통로입니다. 본선의 사다리를 비스듬히 세우고 난간을 설치해서 사람들이 계단을 타듯 오갈 수 있게 만든 것이죠. 이 통로를 통해 선원들은 물론이고 작업 인부와 같은 외부인들도 자유롭게 배와 육지 사이를 왔다갔다할 수 있어요.
오, 마침 이제 접안을 마친 도선사님도 Gangway 를 통해 육지로 내려가고 계시네요. 저 밑에는 이제 막 승선하려는 새로운 선원분들도 올라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분들이 오실지 기대되는군요.
"My stomach is Santa Maria."
옆에 있던 한 부원이 제게 말을 걸어오는군요. 아마 맥락 상 지금 저녁 시간이라 배가 고프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대체 'Santa Maria'가 무슨 말일까요? 이는 배에서 선원들끼리만 통용되는 은어입니다. '잘못됐다'나 '고장났다' 등의 의미로 포괄적으로 쓰입니다. 그래서 만약 핸드폰을 떨어뜨려 액정이 나갔다면 "My phone is Santa Maria", 만약 발가락이 어느 모서리에 찧였다면 "My toes are Santa Maria" 라고 하는 것이죠.
대체 이 Santa Maria 라는 말이 어디서 나왔는지는 이견이 분분합니다. 'Santa' 는 이탈리아어로 '성'을 뜻하고 'Santa Maria' 는 성모 마리아를 지칭합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죽으면 성모 마리아의 곁으로 간다고 해서 '죽다'의 의미가 범용적으로 쓰이게 된 게 아니냐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쪽에서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대서양 횡단 시에 사용했던 '산타 마리아호'가 1492년 히스파니올라 섬에 좌초되었던 것을 상징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냐는 말도 있죠.
그 어원이 어디서 왔든지 간에 선원을 만나서 아는 척을 하고 싶다면 한 번쯤 써보시길 바랍니다. 아마 그 단어를 어떻게 알았냐며 깜짝 놀라고 좋아할테니까요!
아무튼 저는 그 부원에게 "You go and 짭짭 right after this" 라고 말해주었습니다. 부원이 알겠다고 얼른 일을 끝내보겠다고 하는군요. 여기서 '짭짭'이라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요? 말 자체만 놓고도 눈치챌 수 있듯 이 단어는 '먹다'를 뜻하는 선원들끼리의 은어입니다. 말 자체가 먹는 소리를 나타내듯 굉장히 직관적이죠.
저도 배를 처음 탔던 날 다른 외국인 부원이 제게 "짭짭?"이라고 한 단어로 물어본 것이 기억납니다. 그 어감이 너무 직관적이어서 그런지 그 말을 처음 들어봤음에도 단숨에 무슨 의미인지 알아챌 수 있었죠!
'짭짭'은 정말 선원이라면 국적을 불문하고 누구든 다 아는 단어라고 볼 수 있는데, 제가 가장 신기했던 건 유럽 사람이 이 단어를 쓸 때였습니다. 선원 경력이 있는 영국인이 제게 "Did you 짭짭?"이라고 물었을 때 저는 의외의 단어가 나와 흠칫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영어권 국가에서는 쌍지읒과 같은 된소리를 잘 내지 못한다고 들었는데 제가 들은 그 '짭짭'은 너무나도 정확한 쌍자음 'ㅉ'이었기 때문이죠.
이처럼, '짭짭'이라는 단어도 선원이라면 웬만하면 다들 알고 있는 단어인 것 같습니다. 어디선가 선원을 또 뵙게 된다면 이 단어도 한 번 써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저희도 이제 슬슬 밥을 먹으러 가볼까요? 식탁 가운데에 오렌지가 쌓여있는 걸 보니 오늘 후식은 오렌지인 모양입니다. 아니, 잠깐만요. 여기 이 오렌지는 좀 썩은 것 같은데요? 조리장에게 이야기하고 Let go 해야할 것 같습니다.
배에서는 Let go 라는 단어를 매우 자주 씁니다. 'Let go Anchor' 는 닻을 내리라는 의미이고, 'Let go All Lines' 는 모든 계류삭을 bitt로부터 벗겨내라는 의미입니다. 이런 용례에서 대충 짐작할 수 있듯, 'Let go' 라는 것은 무언가를 '던지다' 또는 '던져버리다' 라는 의미를 가진 선원들끼리의 은어입니다.
'Let go'는 원래는 업무를 할 때 자주 쓰는 용어이지만, 이를 응용해서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이기도 해요. 제가 방금 썼던 것처럼 말이죠. 한번 동료가 울상으로 제게 오며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저 방금 제 아이폰 Let go 했어요.." 라고요. 어찌나 당황스럽던지. 알고 보니 본인 핸드폰을 놓치는 바람에 바다에 떨어뜨린 모양이었습니다.
어느 직군이나 그렇겠지만 선원들도 그들끼리만 쓰는 용어가 정말 많아요. 그래서 난생 처음 승선해서 이런 용어들을 접하다보면 무슨 말인지 몰라 당황스러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용어들은 입에 착 달라붙기만 하면 그 용어만큼 그 상황에 어울리는 단어가 없기도 해요. 여러분들에게는 이렇게 그 직군에서만 쓰는 은어가 있나요? 있다면 댓글로 공유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