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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항해사 어름 Feb 22. 2023

우리 안에 스크루지가 있다면

<크리스마스 캐럴>

 유령이 스르르 거리를 미끄러져 갔다. 이윽고 어느 두 사람이 만나고 있는 장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스크루지는 여기에서 설명을 들을 수 있을까 싶어 다시 귀를 기울였다.

 이 사람들도 스크루지가 아주 잘 아는 사람들이었다. 매우 부유하고 영향력도 막강한 사업가들이었다. 스크루지는 그들에게서 좋은 평판을 받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물론 사업적인 측면에서, 어디까지나 사업적인 측면에서였다.

" 잘 지내셨습니까?" 한 사람이 물었다.

" 네, 사장님께서도 잘 지내시지요?" 다른 사람이 대답했다.

" 간밤에 스크래치 영감이 운명했다는군요."

" 저도 들었습니다. 날씨가 꽤나 춥죠?"

" 크리스마스에 제격인 날씨죠. 스케이트를 안 타시나 보군요, 그렇죠?"

" 네, 안 탑니다. 전 다른 볼일이 있어서 그만 실례해야겠군요. 그럼, 안녕히 가시죠!"

 다른 말은 없었다. 그들만의 만남이고 그들만의 대화이고 그들만의 작별이었다.



 악독과 안하무인의 대명사 스크루지. 그러던 어느날 유령이 다가와서는 그를 어딘가로 인도합니다. 유령이 말이 없는 탓에 대체 여기가 어딘지, 언제인지 알 수 없었지만 이윽고 그것은 자신이 죽은 이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깨닫게 되지요.


 스크루지의 죽음은 세상에서 하나뿐인 자신의 삶이 끝나버리는 종말과도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토록 좋은 이미지를 보이기 위해 노력했음에도 그의 죽음은 그저 그날 스쳐지나가는 안부 인사 정도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자신의 죽음이 " 날씨가 꽤나 춥죠?" 라는 말과 견줄만한 하찮은 이야깃거리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 나도 언젠가는 죽을텐데, 죽을 때 사람들의 반응이 이렇다면 난 감당할 수 있을까?'




 실제로 스크루지 영감은 그 죽은 남자가 자신이라는 걸 깨닫고 미친듯이 오열하거든요.


 세상의 모든 사람이 저를 애도할 수는 없겠죠? 저와 일면식이 없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럴 수 없을테고, 저를 미워하는 사람도 세상엔 분명 있을테니까요. 하지만 제 죽음을 진심으로 슬퍼해주는 사람이 세상에 아무도 존재하지 않아서 모든 사람에게 제 죽음이 그저 안부 묻기 좋은 인삿거리일 뿐이라면 그 삶은 세상에 존재하긴 했던 것일까요, 아니면 애초부터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일까요?


 그러고 보면 제가 여태 눈치 보며 좋은 평판을 위해 노력했던 사람들이 떠오릅니다. 그 사람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온갖 스트레스를 감당해내고는 막상 가족들에게 짜증을 냈더랬죠. 하지만 결국 제가 만약 죽는다면 평가에 그렇게 목맸던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를 생각하니 정신이  깼습니다. 과연 자신의 비위를 맞춰주던 사람이 사라져서 슬퍼할지, 아니면 그저 그날의 안부 인사 정도로 마무리하고는 자신들의 일상으로 돌아갈지 안 봐도 비디오였거든요.


 아, 물론 그 사람들이 나쁘다거나 그런 뜻은 아닙니다. 다 각자의 삶 속에서 소중한 사람들일테니까요. 하지만 어찌됐든 인생이라는 건 제가 살아가는 것이니 저의 기준에서 보았을 때 제 삶을 진심으로 생각해주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다시금 생각할 법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의 소중한 시간들을 어떻게 그 사람들과 채워 나가야 할지도요.




나의 죽음을 진심으로 슬퍼해줄 사람이
이 세상에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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