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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항해사 어름 Feb 23. 2023

<재벌집 막내아들>, 다시 보는 진양철 회장의 정체

고급 마네킹

" 참! 눈알이 튀어나오도록 그 셔츠 좀 잘 살펴봐요. 구멍 하나, 실밥 터진 것 하나 못 찾을 테니. 그 영감이 입었던 옷 중에 가장 좋은 거라우, 아주 비싼 거예요. 설령 내가 가져오지 않았더라도 벌써 없어졌을 거예요."

" 없어지다니, 무슨 말이야?" 조 영감이 물었다.

" 틀림없이 그 옷을 입고 땅속으로 들어갔을 테니까. 어떤 멍청이가 그 옷을 입혀 놨기에 내가 도로 벗겨 왔죠. 시체 싸는 데 옥양목이면 충분하지, 다른 좋은 게 뭐가 필요하냔 말이우. 죽은 사람에겐 옥양목이 제격이지. 그런다고 해서 죽은 사람이 더 추해 보일 것도 아니고." 여자가 웃으면서 말했다.

<크리스마스 캐럴> (찰스 디킨스 / 이은정 옮김) 중에서





나한테는 순양이 전부다!!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중)


 자나깨나 순양 걱정. 순양 바라기. 내 인생엔 순양밖에 없다. 바로 순양그룹의 진양철 회장입니다. 그는 젊을 때 밑바닥에서부터 자신만의 '정도경영'으로 한국 제일가는 재벌이 되었죠. 여기서 그의 '정도'란 다름 아닌 '돈'입니다. 돈이 안 된다면 혈육이든 측근이든 싹둑! 정말 매정하고 잔인하기 짝이 없지만 그가 여태 살아남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어, 잠시만요. 그러고 보니 그의 몸에 순양자동차, 순양증권, 순양생명 등 수많은 비단결 옷들과 반짝이는 보석 치장물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네요. 보이시나요?



너지? (재벌집 막내아들 리뷰, <갬성무비, 유튜브>)


 그러나 진양철 회장은 곧 죽지요. 시한부 인생입니다. 그러니 후계자를 찾는 것에 혈안이 되어 있지요. 후계자 자리를 꿰차려는 자식들의 경쟁. 서로를 끝없이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며 물고 뜯기는 아수라장입니다. 그들에게 진양철 회장은 어떤 존재였을까요? 실제로 진양철 회장의 상태가 위독해진 것을 알았을 때 자식들은 마치 이때만을 기다렸다는 듯 행동합니다. " 이런 비상상황에 아버지를 대신할 사람은 바로 나야." 허허, 참. 그들이 생각하는 진양철 회장은 그저 탐스러운 명품을 온몸에 휘두른 마네킹이 아니었을까 싶군요. 겉옷과 액세서리를 다 떼어내고 나면 거들떠도 안 볼 것이니까요.


" 왜 내를 다 죽일라 카는기가!"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중)


 진양철 회장 또한 느낍니다. 피 같은 자식들이 자신을 죽이려는 이유, 그것은 단지 자신의 몸에 달린 것들을 쟁취하기 위함이라는 것을요. 생존을 위한 원초적 본능, 그의 얼굴에서 잘 드러납니다. 원하는 것만 내어주면 언제든 토사구팽 당할 위기에 처해있는 진양철 회장. 순양이 전부였던 그였기에 순양이 없어진다는 것은 곧 자신이 없어지는 것이고, 그렇기에 몸을 불사르며 지키려 하였건만..


 공수래공수거, 빈 손으로 와서 빈 손으로 떠날 것. 이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연입니다. 진양철 회장 또한 이런 운명은 거부할 수 없습니다. 결국 진양철 회장이 죽는다면 어느 누구든 그 남은 자산을 가지려고 미친 듯이 달려들겠지요.


 그때 진양철 회장의 시체 옆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가 가졌던 것들은 물론이고 그의 시체가 입은 옷까지도 가져가려는 사람들만 들썩인다면 그의 삶이 가졌던 의미는 대체 뭐란 말입니까. 여기서 진양철 회장이 삶의 마지막 순간에 결국 진도준을 선택했던 이유를 엿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시체를 글썽이는 눈으로 바라보며 자신의 손을 잡아줄 단 한 사람, 그런 사람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저 드라마의 단편적인 부분만을 바라보고 재벌은 그저 나쁜 것이라며 악의 보자기로 둘러 씌울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분명 우리는 그들 덕에 국부를 이루었고 많은 혜택들을 받으며 살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수혜를 제공하는 재벌이 그 대신 감당해야 할 대가는 '탐욕'입니다. 타락 천사 루시퍼가 자신의 탐욕으로 인해 신을 부정하고 반역을 꿰한 것처럼, 인간은 탐욕에 둘러싸이면 결국 되려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들을 죄다 잃어버릴 위험에 매 순간 직면합니다.


 사랑이란 건 일절 없는 정략결혼, 가족애란 건 찾아볼 수 없는 과잉경쟁, 심지어 자신의 가족을 죽이려까지 드는 수많은 이들. 이들의 목적은 결국 '돈'. 어차피 죽는 순간에 전부 내놓아야 하는 비본질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삶의 마지막 순간에 바라는 것이 단지 진양철 회장이 그러했듯 자신을 아껴주는 사람이라면 그런 탐욕의 굴레를 경계하고 어떤 것이 자신의 삶에 있어 진짜 중요한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는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 스스로를 위해서요.



이게 그 영감탱이의 최후군.
생전에 누구 한 명 곁에 오지 못하게 쫓아버리더니
죽어선 우리에게 돈을 벌게 해 주네! 흐흐흐!

<크리스마스 캐럴>, (찰스 디킨스 / 이은정 옮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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