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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냥냥이 Jul 23. 2020

여학생은 천 원으로 무엇을 샀던 걸까

후회하는 쇼핑

선생님의 종례가 끝나자마자, 한 양갈래 머리의 여학생이 잰걸음으로 교실 뒷문을 박차고 나왔다. 그러고는 동갑내기 아이들이 포진한 복도를 가로질러 현관을 빠져나오고는 광활한 운동장을 가로질렀다. 여학생이 한 발 한 발 내딛을 때마다 4-2라고 적힌 노란 이름표가 가슴팍에서 달랑거렸고, 하얀 운동화 밑으로는 노랗고 뿌연 모래가 일정한 속도로 뒤로 튀었다. 걸음이 점점 빨라지자 등딱지처럼 붙어있는 책가방 안에서는 필통과 책들이 위아래로 출렁대었다.

그때였다.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 잔머리 부스스한 이마에는 실망스러운 주름이 잡혔고, 토끼 앞니 뒤로는 작은 탄식이 새어 나왔다. 횡단보도에 거의 다다랐을 때쯤 신호등의 파란 불이 깜빡이더니 빨간 불로 바뀌어 여학생의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었다.

‘빨리 집에 가야 하는데, 이게 뭐고!’

이거 아무래도, 집안 어딘가에 여학생을 끌어당기는 자석이 숨어있는 모양이었다.

여학생이 애달피 기다리는 것은 뽀송뽀송 솜털이 복실복실 하게 난, 작고 통통한 생명체들이었다. 까맣고 작은 눈은 어딜 보는지 몰라 속을 알 수 없었고, 작은 부리는 손가락을 대면 반들반들했었다. 털 찐 몸에 비해 앙상한 두 다리가 손바닥 위에서 오들 오들 떠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간지러움에 어깨가 들썩이곤 했다. 두 아기의 이름은 나리와 달래였다. 한 아이는 개나리처럼 샛노래서 나리, 다른 한 아이는 진달래처럼 발그레하여 달래였다. 어렵게 들인 동생들은 여학생의 조기 귀가의 일등공신이었다.

신호등이 다시 파래지자 여학생은 아예 집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따뜻하게 잘 있겠지?’

아침 뉴스에서 기상캐스터가 오늘은 날이 쌀쌀하다고 했었다. 그래서 여학생은 박스로 만든 나리와 달래의 집 위에 박스 단면을 오린 지붕을 덧대어주고 등교했던 것이다. 햇볕이 잘 드는 현관에 두었으니 따뜻하게 잘 있겠지. 문제없을 거야! 그러면서 여학생은 땀에 절어 이마에 붙은 잔머리를 떼어내었다. 딱지가 붙은 등은 불이 난 듯 더웠다. ‘집에 가면 냉장고에 보리차 꺼내 마셔야지!’

“달래야! 나리야!”

애달파 반쯤 쉰 목소리를 내며 반투명 유리 쇠문을 벌컥 열자, 아침에 두었던 병아리 박스 집이 그대로 현관에 있었다. 어 그런데... 지붕이 이토록 넓었던가? 병아리 집 위에 덧대었던 종이박스 천장이 기이하게 넓어 보였다. 그래도 아침에 마련해두었던 숨 쉴 틈도 있었다. ‘애들 답답하겠다.’ 여학생은 숨은 가다듬고 종이 지붕을 거두었다.

분홍색, 노란색 병아리 두 마리가 신문지 위로 맥없이 쓰러져 있었다. 그 광경에 여학생의 단춧구멍 같은 눈이 얼어붙듯 커지고 토끼 앞니 뒤로는 숨소리가 헉하고 폐 안으로 숨어버렸다. 차마 가방을 내려놓지 못했던 뜨끈한 등은 어느덧 서늘해졌고, 손에는 여전히, 지붕이라고 불렀던 직사각형 종이박스가 들려있었다. 이미 햇볕을 받아 달궈진 유리창으로 다시 한번 햇볕이 쨍하고 내렸다. 아침 뉴스에서 기상캐스터는 오늘은 날이 쌀쌀하다고 했었다.

여전히 두 병아리는 미동이 없었다. 숨이 날아가 버린 두 생명체를 아무리 뚫어지게 쳐다봐도 여학생 자신의 눈 깜빡임 외에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이윽고 정지화면이 뿌옇게 흐려지고는 털썩, 하고 쪼그려 앉은 무릎 사이로 뜨거운 빗물이 하염없이 쏟아졌다. 목청에서는 쇠 긁는 소리가 끄억 끄억 나고 있었다.

불과 며칠도 되지 않았다. 집으로 가는 길, 학교 정문에서 꽃무늬 캡 모자를 쓴 아줌마 옆에 놓인 박스 안에는 마리 당 500원인 새 생명들이 삐약 삐약 대고 있었다. ‘친구 하나 데리고 가면 좋잖아. 한 마리 500원이야.’ 아이는 그날 저녁 내내 할머니를 졸랐다.

‘할머니, 나 병아리 사고 싶단 말이에요!’
‘이것아, 병아리 밥은 누가 주고 똥은 누가 치울기고?’
‘제가 하면 되잖아요~!’

제가 하면 되잖아요.
밥도 제가 주고, 똥도 제가 치우고, 닭이 될 때까지 제가 정성스럽게 키우면 되잖아요. 이름도 제가 짓고 매일매일 모이와 신선한 물을 채워줄 거예요. 닭이 되면 마당에 풀어 키울 거예요. 닭장도 아빠한테 만들어달라고 하면 되잖아요!

다음날 손에 들린 검은색 봉지, 그 안에 든 병아리 두 마리와 꽁꽁 싸맨 모이 한 줌의 가격은 천 원이었다.

여학생은 쥐가 나는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그칠 줄 모르는 울음으로 알 수 없는 말을 웅얼거렸다.

단돈 천 원의 쇼핑. 여학생은 천 원으로 무엇을 샀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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