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호기심 많은 영이를 응원하며

이 것 저 것 둘러봐도 괜찮아.

by 냥냥이

나의 사진 메이트, 영이.


영이와 나는 직장동료다.

작년 여름 파견근무 복귀 후 발령받은 부서에서 영이는 일하고 있었다. 나는 이때 영이를 처음 만났다. 우리는 업무 얘기가 대화의 100%에 수렴했다. 영이도 마찬가지였겠지만, 나는 그에게 크게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 영이가 알고 보니 나의 대학 동기의 막냇동생인 것을 알게 되고, 올해 초 내가 팀을 옮겨 자리가 가까워지면서 우리는 조금은 더 친해졌다. 그러다 올해 초여름경, 영이를 알게 된 지 1여 년이 지났을 때 즈음에 나는 영이라는 사람을 더 알게 될 기회를 얻었다. 풍경과 스냅사진에 질린 초짜에게 영이는 한줄기 빛이었다.


"영이, 너 사진 찍는 거 좋아한댔지?"

"네네! 근데 잘은 못 찍고... 실은 누가 찍어주는 걸 좋아해요."


잡았다, 요놈.

우리는 사계절 계약을 했다. 나는 그의 소셜네트워크용 인생샷을 찍어주고, 영이는 나의 피사체가 되어주는 조건이었다. 우리는 여름부터 지금까지 함께 다녔다.


얼마 전 가을 어느 날이었다.

영이와 나는 오랜만에 만나 핑크뮬리와 바다의 윤슬을 보러 갔다.


사계절 계약 중 여름을 끝냈으므로 나는 영이의 가을 샷을 남기기로 하였다.

나는 그를 바닥에 앉혔다. 조금 아련하게 찍어볼까? 하고 조리개를 개방하여 정중앙에 앉은 영이에게 초점을 맞추었다. 피사계 심도를 벗어난 뮬리들은 분홍색 물감처럼 번져있고, 그 사이에서 영이는 새초롬하게 앉아있었다. 핑크뮬리는 생각보다 별로라는 그의 말에, 아니야, 나중에 사진 받아보면 생각이 달라질걸? 하고 나는 대답했다.


자, 새로 산 카메라 자랑 좀 해보자, 하며 나는 핑크뮬리 사이에 선 그에게 카메라를 들어보라고 했다. 두 손으로 쥐어도 보고, 눈에 갖다 대고 나를 찍어보라며 주문했다. 그 사이에 나는 줌을 조였다 풀었다 하며 분홍 물결 사이에 선 영이를 카메라에 담았다. 영이는 LCD로 결과물을 확인하고는 기뻐했다. 완전히 고객 맞춤형 사진이었던 것이다.


그 뒤 우리는 해금강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수다를 떨었다. 주로 내가 묻고 영이가 대답했다. 사무실에서 보던 영이는 언제나 새초롬하고, 얌전하고, 조용조용히 얘기하던 모습이었는데 여름부터 몇 달을 함께 다니다 보니 나는 영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조금은 더 깊게 알게 되었다.


우선 그는 가족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막내딸이었다. 온몸에서 나오는 귀여운 아우라에는 이유가 있었다.

한편 그는 꿈도 많고(직업만이 꿈은 아니다.) 하고 싶은 것도 많은 적극적인 성품을 지녔다. 게다가 호기심을 실행시키는 추진력도 있었다. 누굴 만나야 하면 만났고, 무엇을 배워봐야겠다 하면 정말로 그것을 배워버렸다.


영이가 오늘 가져온 하얀색 렌즈 교환식 카메라도 최근에 산 것이다- 영이가 나와 함께 다니다 보니 카메라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된 것이었다. 영이가 내 작고 가벼운 미러리스 카메라에 대해 호기심을 보이면 나는 그것을 영이 손에 쥐어주었다. 삐빅, 날렵한 반셔터음과 철컥, 하고 셔터막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에 영이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선배! 이거, 이거!! 뭐예요?"

그러다 동네에서 열리는 필름 카메라 원데이 클래스에도 가면서, 영이는 카메라에 꽂히게 되었다.


아, 그리고 영이에 대해 더 알게 된 것은- 영이는 사진보다는 영상파라는 것이다. 조카나 일상을 브이로그로 담아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또 착한 꼰대 짓을 했다. 영상을 배우려면 사진도 알아야 한다면서 등등.


해금강 어느 해안가로 향하는 길에 나는 물었다.


"영상 배운다더니, 어떻게 되고 있어?"

영이는 말끝을 흐렸다. "그냥, 요즘은 일상을 담고 있어요. 조카가 너무 뛰어다녀서 TV 모드로 찍고 있었어요. 어린애들이 움직이는 속도는 따라잡을 수가 없어요오..."

언젠가는 저 알아서 하겠지- 나는 또 착한 꼰대 짓 하려는 내 입을 다물었다.


해금강에 도착했을 때에는 하루 중 해가 가장 아름다울 때였다. 바다가 아름답게 반짝이고 일렁대고 있었다- 나는 사진을 접하면서 '윤슬'이라는 말을 알게 되었는데,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이 이렇게도 아름다운 줄 몰랐다.


햇빛을 받고 앉은 영이는 아름다웠다. 20대의 여성의 아름다움은 제 나이가 한참은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이다. 나는 영이에게 눈을 감고 고개를 들라고 했다. 그리고 뒤돌아서 바다를 보라고 했다. 해가 완전히 넘어가기 직전에는 해를 등지고 옆으로 서서 영이의 매끈한 콧날을 담았다. 영이는 그제야 환하게 웃었다. 사진 언제 보내주실 거냐며.


우리는 더 늦지 않게 창원으로 향했다.

돌아가는 길에는 새로 산 카메라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거제의 구불구불한 길을 지날 때 나는 말했다. 습관처럼-


"하고 싶은 게 많을 때는 참 좋을 때다." 하고.

영이는 대답했다. "아니에요-. 제대로 마무리한 게 없어요..."


자주 만나다 보면 대화의 주제와 패턴이 겹친다.

어느 여름날, 해바라기를 보러 가는 길에 또 비슷한 대화를 했던 것이다. 영이는 우쿨렐레를 배워보고 피아노도 배워보고, 타로카드도 독학해보았다고 했다. 그 말에 나는 하고 싶은 게 많으면 좋은 거라고 했는데, 영이는 그때에도 제대로 마무리한 게 아직 없다고 대답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대화, 또 어디서 많이 본 장면 같았다.

지금의 영이와 나는 10년 전 나와 언니들의 데칼코마니였다. 20대의 나는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다. 나는 미래의 어떤 가능성을 위해 뭐든 투자하고 싶었다.


나는 영어와 스페인어를 공부하였으며, 그 외에는 건전한 취미 생활로 기타와 타로카드, 태블릿으로 웹툰 그리는 것을 배웠었다. 그중에서 영어 하나라도 남아서 내게는 다행이었다. 그러나 영어가 남을 것이라는 미래를 알기 전 나는 마음 한편에서 불안했다. 이 것 저 것 손만 대다가 어중이떠중이가 되는 것은 아닌지.


언니들은 말했다. 넌 참 하고 싶은 게 많아서 좋겠다고, 자기들은 이제 하고 싶은 게 없다고. 그럴 때면 나도 영이와 같은 대답을 했던 것이다.


"아니에요-. 제대로 잘하는 건 없는데요, 뭐."


지난여름, 나는 그런 영이에게 내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영이는 내심 의외인 듯했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이 것도 한 번, 저 것도 마음 가는 대로 해봤으면 좋겠어. 하고 싶은 게 있다는 건 그만큼 삶을 잘 살아보고 싶어 한다는 뜻이니까." 영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고 싶은 게 생기면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시도해보기.

그게 맞는지 안 맞는지는 해봐야 아는 거니까.

그러다 마음을 쏟고 싶은 한 가지가 나타나면, 그때에는 결과를 생각하지 말고 그냥 즐겨보기.


적어도 같이 다니면서 본 영이는 스스로 행복을 좇을 줄 아는 멋진 사람이니까,

뭐든 호기심을 갖고 들여다볼 줄 아는 영이를, 나는 거울을 보듯 응원했다.


'조만간 또 불러주세요.'

어디서 이런 소리가 들렸다고 하면 믿을 사람이 있을까?

영이와 나의 카메라는 차의 뒷좌석에서 오늘의 노고 끝의 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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