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밤의 물가에서

우리 부부가 사랑한 베리아일랜드

by 냥냥이

미러리스 카메라를 샀던 때의 이야기로 돌아간다.

2018년 가을이었다.


그때, 남편과 나는 호주 시드니에서 살고 있었다. 결혼을 하자마자 나는 시드니에서 파견 근무를 하게 되었고, 남편은 그런 나를 혼자 보낼 수 없다며 함께 왔다. 사람들은 대단하다고 하면서도 우리를 걱정하였다. 그래도 우리의 신조는 부부는 어떤 일이 있어도 함께 있는다는 것이었다. 나보다는 남편의 의지가 더 강했다.


우리 남편은 이런 사람이다.

'여보, 왜 기침을 해요?'

'아... 여보가 이불을 돌돌 말고 자서 새벽에 덮을 게 없어서 좀 추웠어요.'

'음, 그럼 이제 이불 두 개를 쓸까요?'

'절대! 안돼요! 부부는 한 이불을 덮어야 해요!'


그런 우리는 함께 호주로 향했다. 하늘과 바다가 참 아름다운 곳이었다. 건조한 출근길 차창 너머 보이는- 아침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는 바다와 하늘과 오페라하우스는 이 곳의 명물이었다. 카메라를 샀던 것도 이때였다. 그 해 12월 우리는 뉴질랜드 여행을 앞두고 있었는데, 자연이 그렇게 다르다던데- 하며 나는 남편을 설득했고, 남편은 잠시 한국에 들어왔을 때 카메라 매장을 들렀던 것이다.


카메라는 부부의 재미 그 이상이었다.

낯선 곳에서의 파견근무는 결코 만만치 않았다. 나는 씩씩대며 귀가하고는 남편에게 빨리 매운 떡볶이를 만들어달라고 닦달 쳤다. 떡볶이가 매워서 나는 매우 울었다. 그래도 떡볶이로 스트레스를 푸는 것보다는 카메라가 더 유익했다. 그렇게 나는 카메라를 항상 소지하고 다녔던 것이다.


우리는 매일 저녁이면 동네 산책을 했다.

우리는 울스톤크라프트(Wollstonecraft)라는 동네에 자리를 텄다. 나는 호주스러운 곳을 원했다. 그러나 남편은 편리한 곳을 원했다. 그런 점에서 울스톤크라프트는 우리의 합의점이었던 것이다. 울스톤크라프트는 모든 것의 중간 지점에 있었다. 한인마트와도 가까운 편이었고 하버브릿지와도 가까웠다.


나는 그 작은 카메라에 우리 동네를 매일 가득 담았다.

다리 밑으로 지나가는 기차의 궤적과, 누군가가 정성스럽게 가꾼 아름다운 정원과, 보랏빛 자카란다 나무 한 그루와, 어느 집 식빵 굽는 고양이, 울창한 고사리 숲 담았다.


그중에서도 우리 부부가 가장 사랑했던 것은 동네의 작은 공원, 베리아일랜드 보호구역(Berry Island Reserve)이었다.


베리아일랜드는 내륙과 연결된 작은 섬이라고 했다. 시드니 남쪽 만을 바라보는 작은 공원에는 작은 덤불숲과, 재미난 울음소리를 내는 쿠카부라 새들과, 날개를 번뜩이는 과일박쥐들이 살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 잔디밭에 드러누웠고, 아이들은 손때 묻은 놀이터 주변을 뛰어놀았다. 주말이면 바비큐를 하거나 소풍 온 사람들이 넘쳤다. 그런 작고 사랑스럽지만 알찬 곳이었다.


우리는 종종 해 질 녘에 길을 나섰다. 크고 아름다운 대저택이 있는 내리막길을 따라 베리아일랜드로 향했다.


이 곳에서도 카메라를 들었다. 정박한 배 뒤로 퍼지는 석양, 띄엄띄엄 서 있는 나무 옆을 산책하는 호주 할아버지, 짝을 이뤄 지저귀는 갈색의 쿠카부라 새들, 빳빳이 선 노란 모자를 쓰고 소리를 꽥 질러대는 하얀 앵무새를 담았다.


그러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물가의 펜스 앞에 섰다. 멀리서 그루브를 타고 밀려와 돌담에 부드럽게 뭉개지는 바닷물을 함께 보았다. 그 찰박하는 소리의 리듬도 들었다. 그러면 내 작은 미러리스 카메라의 셔터막은 날렵하고 경쾌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닫히곤 했다. 찰박, 찰칵, 찰박 찰박, 찰칵-


그러다 과일박쥐들이 나무 열매를 가지고 날카롭게 째째 거리며 다투는 소리가 들리면, 우리는 꽤나 어두워졌다는 것을 알고는 가로등이 듬성하여 어두침침한 오르막길을 잰걸음으로 올라 집으로 향했다.


베리아일랜드와 남편의 존재는 나의 휴식처였다- 내가 시드니에서 무사히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전적인 이유였다.


2019년 여름, 계약기 종료로 귀국 후 우리는 정신없이 지냈다.


그래도 나는 가끔 시드니가 생각이 나기도 하고, 지도 없이 조지스트리트를 걷고 기차를 타는 꿈을 꾸기도 했었다.

"여보, 시드니 생활 기억나요?"

"아니, 하나도 기억 안 나요."

남편은 시드니에서 있었던 일은 다 까먹었다고 했다. 그렇게 나도, 현재에 포커스를 맞추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불과 몇 주 전이었다.

남편과 나는 급하게 작은 바다 도시를 다녀올 일이 있었다. 내 친구 은이의 급한 연락을 받고 부랴 부랴 은이를 보러 갔었던 것이다. 은이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는 야경이 유명하다는 카페 앞에 잠시 차를 세웠다. 나는 차에서 내려선 렌즈 캡을 열었다.


지역에서 유명한 선상 카페였다. 하얀색 페인트칠이 된 아담한 오두막이 수면 뒤에 설치되어 있어 마치 물 위에 집이 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손님들은 그 위로 난 다리를 건너가서 커피를 마셨다. 이 곳은 일몰이 더 유명하긴 하지만, 야경도 괜찮았다. 전구로 둘러싸인 밤의 오두막이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카페는 이제 문을 닫는다는 말에 나는 찰박거리는 검은 물가로 더 가까이 다가갔다.


바다는 카페에서 퍼지는 노란빛을 받고 까맣게 일렁이고 있었다.

반짝이고 일렁이는 빛은 내 카메라 안에서 모습을 정지하였다. 그러나 뷰파인더 안에서는 빛무리들이 계속해서 왔다, 갔다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셔터스피드 다이얼을 왼쪽으로 더 돌렸다. 곧 셔터막이 다시 활짝 열렸다가는 조금, 시간을 머금고 삼키고 있었다.


느릿느릿 흐르는 시간을 조물 조물 머금는 셔터막을 기다리고 있는 동안 나는 느릿하게 찰랑이는 물 어느 지점을 진득하게 바라보았다. 내 눈 앞에는 어느덧 베리아일랜드가 있었다.


남편과 함께 손을 잡고 걷던 베리아일랜드.

그곳에서 나는 남편에게 토로하고 또 토로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할 것들을 재잘거리곤 했다. 남편은 그럴 때면 손을 더 꼬옥 잡아주었다.


그런데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나만 힘들었던 것이 아니었다.

남편도 똑같이 힘들었을 텐데, 외국살이가 흔하지 않은 기회여도 타지살이는 타지살이일 뿐인데. 나와 똑같이, 아니 나보다 더 익숙하지 않았을 생활에 힘듦을 또 겪고 겪었을 텐데, 남편은 나와 함께 있기 위해 그 모든 것을 참고 견뎌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꿀꺽, 셔터막이 시간을 삼켜버리는 소리에 나는 눈을 와락 떴다.


그리고 남편이 너무 보고 싶어 졌다-

결혼 전 예비 신혼집에서 정장 차림으로 프러포즈를 할 때 했던 약속- 언제나 항상 옆에 있겠다는 약속을 우리 남편은 정말 한결같이 지켜왔던 거구나. 나는 그가 고마워졌다. 원래 고마운 사람이지만.


멍 때리고 있는 내게 어느새 남편이 다가왔다.

"여보, 다 찍었어요? 이제 늦었는데 가요."

"잠시만요."


나는 주변을 정리했다.

우리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리고 느릿, 느릿 다가왔다 멀어지는 물소리를 우리는 가만히 듣고 있었다.

남편과 나도, 자연스럽게 귀를 기울였다. 우리는 더 이상 별 말을 하지 않았다.


베리아일랜드의 물소리가 차박, 차박 들려오고 있었다.


그 수많은 것들을 다 잊어버리더라도 적어도 우리가 잊을 수 없는, 아끼고 아꼈던 베리아일랜드의 느릿한 물소리가 우리에게 다시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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