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내 동료가 되어라.
유니는 매미성 꼭대기의 한가운데에 있는 제일 높은 성곽 위로 올라가 있었다. 다리를 걸터앉은 채로 그는 바다의 어느 지점을 바라보고 있었다.
"언니 저기 있다."
"어, 그래, 봤다." 우리는 다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유니는 나와 같은 해에 태어난 사촌언니다.
나는 고작 3개월 차이인데 왜 언니라고 부르냐는 질문을 많이 들었다. 그런데 나는 언니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한 번도 이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초등학생 때 욱 하는 마음에 이름을 그대로 불렀다가 가벼운 헤드락을 당하기도 했지만, 그것마저 나는 웃겼다. 나는 지금까지 주욱 언니라고 부르고 있다.
유니언니는 언니다웠기 때문이다.
유니는 정명(正名) 사상의 타고난 실천가였다. 공자님이 말씀하시길,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 즉,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아버지는 아버지답게, 아들은 아들답게 행동해야 덕을 가지고 나라를 다스릴 수 있다고 하였다. 이 한마디는 때로는 계급 간 불평등을 초래한다는 오해를 받기도 하지만, 누구든 제 위치에서 제 도리대로 행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 의도한 바였다.
그런 점에서 어린 유니는 누구보다 공자님의 말씀을 잘 듣고 있었다.
첫째, 그는 엄마의 든든한 첫째 딸이었다. 아침이면 엄마의 출근 준비를 돕고 본인의 등교 준비도 하였다. 수업을 마치고 와서는 사과머리를 한 동생을 돌보았다. 유니는 동생이 즐거워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유니가 한 마디 하면-이놈! 하면 미니는 자지러지듯이 웃었다. 유니는 미니를 씻기고 먹이고 재우곤 엄마를 기다렸다.
둘째, 유니는 우리들의 언니로서 도덕과 규칙의 수호자 역할을 자처였다. 그는 매사에 도덕적 판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싸움이 나면 유니는 특유의 공정함과 정의감을 발동시켰다. 이 부분은 누군가의 잘못, 저 부분은 다른 누군가의 잘못. 그러니 너희 화해해하고 유니는 악수를 시켜주었다.
그런 유니는 항상 어른들의 칭찬을 받았다.
'유니는 어쩜 이렇게 듬직해?'
'아니 유니 엄마, 딸내미가 하나는 듬직하고 하나는 이쁘장해서 너무 좋으시겠어.'
그럴 때면 유니의 사랑 많은 어머니는 입을 벌려 활짝 웃었다. 그러고선 어린 첫째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시고는 딸의 볼에 두 번, 세 번 뽀뽀 마크를 남겼다. 유니의 볼이 진달래색 루주로 발그스레해지면서 눌린 뒤에는, 유니는 다시 의젓한 딸로 돌아와서는 아줌마들 앞에서 너스레를 떨었다.
"아이, 제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을 할 뿐이에요!"
그러니 내가 같은 해 3개월 차로 태어난 언니를 언니라고 부르지 않을 수가 있었겠는가. 나는 그를 '언니' 외 다른 존재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
집안일 놀이를 할 때면 각자 업무분장을 나이와 연차를 고려하여 공명정대하게 정하던 언니,
'엄마 오시면 불러드리자!' 다 같이 합창 연습을 하자며 악보를 가져와 지휘하던 언니.
나는 그가 왜 언니다웠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언니는 언니라서. 그게 다였다. 그가 나와 동갑이라는 사실은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평소와 같이 학교를 마치고 유니네 집으로 놀러 갔다. 해가 길었으므로 아마 오후 4시쯤이었던 것 같다. 현관으로 들어서자 안에서는 자매가 투닥투닥 다투는 소리가 들렸다. 난 어깨를 으쓱했다. 아, 또 시작이네.
그들은 인기척도 느끼지 못한 채 여전히 입씨름 중이었다. 손에는 만화책도, 장난감도, 인형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들은 여전히 내가 왔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그 둘은 점점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다 갑자기 잠잠해지더니 울음에 시동 거는 소리가 들렸다. 결국 미니가 울음을 터뜨린 것이다. 동생은 아직 퇴근이 가마득한 엄마가 보고 싶다며 소리 내어 울었다.
나는 아, 또 시작이네 하며 유니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나는 처음 보는 이상한 광경에 말을 잃었다. 언제나 침착하던 유니언니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던 것이다. 유니의 속눈썹 밑으로 생긴 투명한 유리구슬이 떨리면서 점점 부풀어가고 있었다. 유니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아, 울지 말라고...! 진짜 울지 말라고...!!"
유니는 미니를 끌어안았다. 언니의 품에 안겨 입을 벌려 우는 미니의 목소리가 아득한 동굴 저너머의 것으로 들렸다. 나는 손에 든 봉지를 바닥에 툭, 떨궈놓고는 그들에게 달려갔다.
서너 시간 뒤면 올 엄마를 보채며 우는 미니와 그런 동생을 꽉 껴안고 우는 유니, 그리고 왜 우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따라 우는 나- 세 여자아이는 부둥켜안은 채 꽤 오랫동안 화음을 넣어 합창했다.
유니가 우는 모습을 본 것은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고모가 돌아가셨을 때에도 유니는 눈물자국으로 칠갑된 볼 위로 억지로라도 미소를 뗬다. 너무너무 고맙다며 손을 잡았었다. 아니, 그는 이제 오히려 감정 자체에 덤덤해진 듯했다. 그는 기뻐도 기뻐하지 않고 슬퍼도 슬퍼하지 않아 보였다. 어느 봄날 유니는 내게 말했다. 다 지나간다고, 기쁨과 슬픔, 고뇌와 아픔은 마음속에서 생겨난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므로 다 지나간다고 말했었다.
"언니야, 이제 다 찍었으면 갈까?"
하고 보니, 유니는 여전히 매미성의 가장 높은 성곽에 앉아서 저 멀리 바다를 내다보고 있었다.
그는 무엇을 보고 있던 걸까.
오랜만의 만남 뒤에 나는 다시 집으로 가기 위해 차 시동을 켰다. 부릉부릉 소리를 뒤로 유니와 미니가 오늘 와줘서 너무 고맙고 즐거웠다고 연신 손을 흔들었다. 백미러로 보이는 그들의 모습이 멀어지고 있었다. 그들은 차로 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서 메모리에 저장된 사진들을 컴퓨터로 옮겼다.
자매는 신나게 웃고 있었다. 그런데 피를 나눴기에 닮은 구석도 분명 있겠지만, 그들은 참 안 닮은 구석이 더 많았다. 한 명은 치마, 한 명은 바지. 한 명은 검은 긴 생 머리, 한 명은 갈색의 웨이브 진 짧은 단발.
사진을 넘기다 보니 나는 목청껏 소리 내어 웃고 말았다. 그럼에도 둘은 자매였던 것이다. 그들은 예쁜 사진 대신 추억을 만들자며, 내가 쥐어준 감성적인 솔방울을 가지고 머리에 올리고 혀를 쭉 빼고 팔다리를 휘저었다. 그리고 바다를 배경으로 옆으로 누워 눈을 감고 있었다. 그 모습은 흡사 유명한 신전의 와불 같았다. 그리고 뇌쇄적으로 찍어주겠다며 머리를 한껏 쓸어 올리며 카메라를 도발적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써먹을 수 있는 사진이 하나도, 단 하나도 없었다.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자매는 웃기도 많이 웃고 울기도 많이 울었다. 서로를 상처 입히기도 하고, 서로에게 상처 받기도 하면서 그들은 자라났던 것이다.
인생의 거의 모든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그들은 서로가 서로의 '동료'이자 '동지'가 되었던 것 아닐까.
주어진 삶을 어떻게든 살아내기 위해 치열하게 뜻을 함께 나눴던 내 편-
성격이 달라 매일 입씨름하지만, 서로 한심한 눈빛으로 쳐다볼 때도 있지만,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언제든 첫 번째로 연락할 수 있고, 해결해야 할 일이 생겼을 때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나누면서, 아무에게도 하지 못할 이야기를 서로에게만 나누며 함께 웃고 우는, 그렇게 함께 성장하는. 자매는 함께 성장하였던 것이다.
나는 사진 폴더의 하단을 흘끗 보았다. 로우파일 123개. 이 중 쓸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들이 뿅뿅 쏴대는 엔도르핀에 나의 허파 역시 카메라를 마구 흔들어놓았던 것이다.
나는 폴더를 껐다. 음, 쓸만한 게 하나도 없구나, 이 자식들.
그래도 나는 어쩐지 콧바람을 불었다. 한참 올라간 광대가 그대로 떠있었다.
가까운 사람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기억을 언제든 생생하게 떠올려볼 수 있다는 것- 내가 사진을 배우고 난 이후에 가장 순수하고 본질적인 즐거움을 그 날에 찾은 게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