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한 장 한 장 소중히
일출과 일몰 사진을 찍으라고 하였다.
"요즘 인물 사진을 잘 찍어오시네요?"
나는 매주마다 사진 수업을 위해 부산으로 갔다. 네, 조금 멀리서 찍어오는 거 잘하셨어요. 이건 이렇게 크롭 하면 되겠죠? 아직 크롭부터 하지는 마시구요. 나는 장 선생님이 사진을 모니터에 띄워놓고 이리저리 코멘트를 남기면 휴대폰으로 재빨리 찍고는, 그가 하는 말을 노트에 휘갈겨 썼다. 파란색 동그라미, 빨간색 별표, 다음 숙제는 노트 한편에 네모 박스를 그려서 체크하고는 1번, 2번... 번호를 달았다.
이 날에는 화이트 밸런스를 배웠다. 화이트 밸런스란, 광원의 상태에 따라 카메라가 흰색을 흰색으로 인식할 수 있는 범위를 말하는데, 햇빛, 텅스텐광 등 여러 가지의 광원은 저마다의 색이 있기 때문에 어떠한 절댓값으로 수치화된다. 몇 번의 퀴즈에 아리송하게 답을 한 후, 나는 다음 주 숙제를 받아 적었다.
"일출, 정오, 일몰 사진을 찍어오세요. 단, 캘빈 값 다섯 개에 맞춰서."
장 선생님의 과제는 추상적이었다. 상상할 수 있는 사진을 찍어오세요, 셔터스피드를 30초로 해서 찍어오세요. 숙제를 하면서도 그 뜻이 잘 파악되지 않았으나, 결과물을 돌려볼 때쯤에 이해되는 경험을 몇 번 하다 보니 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나는 또 다대포에 왔다. 일몰이 유명하다고 하나 일출 역시 괜찮단다. 조금 더 차를 밟으면 일출로 유명한 해운대가 나왔지만 10분이라도 더 일찍 일어날 정신력이 내겐 없었다. 한참을 묻고 검색하고는, 일출 포인트라는 것이 정확히는 다대포가 아닌 몰운대 공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출사 사이트에서 어떤 열정적인 진사님이 다대포 지역에서 계절별로 해가 뜨는 지점을 지도에 일일이 표시해둔 것을 발견하고는 다음날 새벽을 기약했다.
새벽 4시 반, 빼액 울려대는 알람을 간신히 끄고 남편과 나는 몰운대 공원으로 향했다. 그런데 몰운대 공원이라는 이름은 누가 지은 걸까? 체력이 저질이었던 나에게 그곳은 공원도, 언덕도 아니었다. 산이었다. 나는 꼴딱 꼴딱 넘어가는 숨 사이로 생수를 밀어 부었다. 남편은 내 손을 잡고 끌었고, '난 이제 못 가겠다... 이제 진짜 못 가겠다...' 하던 사이에 파도 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왔다.
우리가 한참을 올라 당도한 곳은 바다를 마주한 절벽이었다.
절벽으로 나서자마자 칼바람이 우리를 휩쓸었다. 빡센 신고식을 치르고 정신을 차려 앞을 보니 바위와, 그 위로 사정없이 내치는 검은 파도만이 있었다. 옆을 돌아보니, 아, 갈매기가 부러질 것 같은 노란 두 다리로 열심히 바람을 버티고 있었다. 이미 절벽 아래에서는 아재들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었다.
나는 바람을 등지고 삼각대를 꺼냈다. 그러고서는 줌을 풀었다가 조였다가 하면서 노출을 맞추는 사이에 날이 점점 밝아지기 시작했다. 드디어 태양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자 남편의 고조된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 이제 찍어요!"
나는 날숨과 들숨을 고정하고 카메라를 조작했다. 동그랗고 환한 오렌지빛 얼굴이 행진하는 과정을 뷰파인더를 통해서 지켜보았다. 나는 어떠한 감탄사도 내지 않았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짧았다. 그리고- 사진이 나왔을 때쯤 나는 등을 돌려 남편을 보았다. 나는 태양처럼 환하게 웃고는 남편에게 달려갔다. 우리는 삼각대 옆에서 같이 태양의 위엄 있는 행진이 마무리되는 것을 지켜보았다. 나의 첫 일출 사진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운전하는 남편 옆에서 나는 두 발을 쭈욱 뻗고 말했다.
"여보, 이번 숙제가 역대급인 것 같아요."
남편은 씩 웃었다. 나는 계속 말했다.
"사진 하나 찍는 데에 이렇게 많은 걸 하게 될 줄 몰랐어요. 그렇게 내도록 검색하고, 전날에 가방 싸고, 오늘 아침엔 난리 한바탕 치고."
그 언젠가 첫 수업 시간에 '한 장 한 장 소중하게 찍는 연습을 하세요' 하고 들었던 것이 떠올랐다.
나는 그 말을 곱씹어 생각했다.
한.장.한.장.소.중.하.게.찍.는.다.는.것.은.무.엇.일.까.
그리고 오늘 아침의 경험을 반추해보았다-.
오늘 내가 찍은 것은 무엇인가? 떠오르는 태양.
태양을 찍기 위해 나는 왜 이 곳에 오게 되었는가? 집 근처에서는 못 찾겠고 해운대는 멀고 다대포가 그나마 가까워서.
다대포에는 스팟이 많다던데 어떻게 찾았는가? 몇 날 며칠 인터넷 검색으로.
장비는 무엇을 챙겼는가? 24mm-70mm와 70mm-200mm 렌즈. 그리고 삼각대.
어떻게 기술적으로 구현하였는가? 50mm로, 노출 0은 조리개 f/11, 셔터스피드 1/250s. 70-200은 설명 생략.
그런데 브라케팅은 했는가? 아, 맞다.
아 맞다. 브라게팅.
나의 과제는 매주마다 조건이 누적되어 달렸는데, 광량마다 달라지는 노출도에 적응하기 위하여 나는 매주 제출하던 숙제마다 조리개와 셔터스피드, 감도를 수동으로 조작하여 노출도를 마이너스 투 스텝부터 플러스 투 스텝까지, 다섯 개를 만들어가야 했었다. 브라케팅을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노출의 실패나 사진의 후작업을 대비하기 위한 일종의 보험이었다. 즉, 나는 그런 노출도 조절을 오늘 아침에 누락하였고, 그것은 즉, 오늘 아침 나는 애먼 남편을 데리고 헛고생을 한 것을 뜻했다. '다시 와야 할 것 같은데...' 약간은 졸린 눈으로 운전대를 꽉 잡고 있는 남편을 나는 흘깃, 쳐다보았다.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며칠 뒤 기상예보가 좋았던 날 나는 몰운대에 다시 왔다. "몰운대 공원으로 안 올라가도 골목 식당 쪽으로 둘레길이 있던데 거기서 찍고 올게요. 여보." 하는 말에 남편은 첨언하지 않고 "잘 갔다 오세요."라고 대답했다. 쌔근쌔근 잠들어있는 남편을 뒤로하고 다시 온 몰운대에서는 바람이 바다를 천둥처럼 내려치고 있었다. 머리를 덮은 야상 후드는 자꾸만 벗겨졌다. 이번에는 제대로, 어떠한 감상도 느끼지 않고 정확하게 숙제를 완수했다. 어딜 가냐며 자꾸 끌어당기는 바람을 뿌리치고 나는 뒤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향했다.
이 이후에 있을 일몰 숙제를 더한 후, 나는 당당하게 수업에 임했다.
"다시 찍으면 안 되냐고 하시더니. 아닌데요? 너무 잘하셨는데요?" 하는 선생님의 말에 나는 말을 아꼈다.
나는 아직도 생각한다.
한.장.한.장.소.중.하.게.찍.는.다.는.것.은.무.엇.일.까. 그것은-
마음인 걸까,
머리인 걸까.
그 균형의 비율은 몇 대 몇 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