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이른 시간에 도착하여 한 바퀴 어슬렁거리고는, 카메라와 삼각대를 든 사람들이 모여있는 풀밭으로 살포시 자리를 잡았다.
실은 그 날은 일몰 사진을 처음 시도한 날이 아니었다. 동호회에서 주최하는 출사에 따라 가본 적이 있는데, 일몰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그런데 거기서도 열심히 찍어놓고는 브라케팅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도 나는 이 날만큼은 긍정적이었다. 동호회 출사는 일몰이 아니더라도 어차피 갔을 테니까. 후후...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나는 삼각대를 설치하고 줌을 돌려보기도 하면서 몸을 풀었다.
옆에 서 있던 아저씨 진사님이 나의 비실비실한 삼각대를 보고는 친절하게도 자기 것을 빌려주었다. 나는 그곳에서 한 시간 정도를 기다렸다. 그러는 사이, 카메라를 옆에 끼고 주변을 맴돌던 총각도 이 곳으로 다시 왔고, 통치마를 입은 아줌마 진사님은 대포 같은 망원렌즈(백통이라 불리는)를 꺼냈다.
그 한 시간 동안 나는 태양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었다. 시간 차에 따라 조리개와 셔터스피드 수치가 달라지는 것을 보고 다시 조절하면서, 태양이 서서히 몸을 풀고 있는 것을 관찰하고 있었다.
"오늘은 맑을 줄 알았는데, 구름이 끼어있네요. 이러면 예쁜 사진은 못 찍을 것 같은데요."
총각이 말했다. 정말이었다. 태양이 내려오는 자리에 구름이 얕고 길게, 옥수수수염을 늘려놓은 것처럼 옆으로, 옆으로 퍼져 있었던 것이었다.
조금만 구름이 비껴줬으면-
그래도 구름이 모여있지 않은 곳으로 태양이 떨어져 줬으면-
우리들은 그들에게 바라는 것이 너무 많았다.
태양은 그저, 제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인데. 어쩌면 태양의 퇴근길이었을 수도 있었다. 오전 9시까지 정상 출근해서 하루를 보내고 오후 6시가 지나면 정상 퇴근하는 것처럼, 태양도 오늘 하루 모든 것들 위에서 만물을 비추면서 제 할 일을 한 뒤 그저, 집으로 가는 길이었을 수도 있었는데. 태양은 나에게 바란 것이 없었을 텐데, 나는 태양에게 바라고 원하는 것이 너무 많았다.
그냥, 요즘따라 흐린 날이 많았는데 오늘 드디어 쨍하게 떠주셔서 감사하다고 먼저 생각을 할 수는 없었을까? 그러나 나는 과제를 완수하지 못하였을 경우 이 길을 어떻게 또 올 것이냐고 하며 나의 노고부터 떠올렸다.
나는 뷰파인더에서 태양이 살금, 살금 퇴근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제 지금인가요?
아니, 아직. 조금 더 멀었어.
이제 지금인가요?
네! 맞네요.
이제 찍을 타이밍이었다. 세팅값은 틀림없이 확인했으므로 만발의 준비가 되어있었다. 50mm, 조리개 f/11, 셔터스피드 1/500s, 감도는 400, 화이트 밸런스는 K5200이 틀림없었다. 나는 집중하였다. 해는 생각보다 빨리 떨어지기 때문이다. 칼퇴하기까지가 시간이 굼뜬 것 같이 느껴지지, 6시가 되면 1분 1초가 아까운 것과 같다. 태양은 재빨리 퇴근길을 서두르고 있었다.
선배님! 선배님! 잠시만요, 이것만 물어보면 안 돼요?
아, 뭔데. 나 집에 가야 된다. 빨리 물어봐라.
나는 태양을 어떻게든 붙잡고 있었다. 그에게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사 먹이거나 손난로를 줄 수도 없고, 아니 태양은 이런 것들이 필요하지는 않나? 나는 서둘러 퇴근하는 태양을 잡고 질척댔다. 아니, 어차피 그는 내가 잡는다고 해도 들어주지도 않을 것이므로 나는 최대한 짧은 시간에 효과적으로 치대었다.
손이 달달 떨리는 것 같았다.
침착하자, 침착해. K5200은 이제 브라케팅 다섯 장 했고, 아! 이거 수평 안 맞네, 다시.
이, 이제... K4000, 다시 0으로 맞추고. 그다음 나는 K3200, K6000, K7000으로 돌아왔다.
마지막 K7000에서 마지막으로 노출 마이너스 2 스텝을 찍자마자 나는 환호성을 질렀다. 일몰 사진 숙제가 완성되었다. 아저씨의 삼각대는 환상적이었다.
곧 태양은 그 모습을 완전히 감추어버렸다. 하늘에는 그가 오늘 하루 동안 머물렀던 흔적만이 남아있었다. 빨간 꼬리 같은 것들이 하늘에 곱게 퍼져 있었다.
나는 어쩐지 사무실 정이 언니가 떠올랐다.
아, 언니- 이 것만 좀 알려주고 가면 안 돼요? 나랑 욱이 좀 살려줘요.
아, 또 뭔데- 내 빨리 우리 애 보러 가야 된다. 빨리 물어봐라.
눈이 땡그랗고 토끼 앞니를 한, 그러나 수화기에 대고 가차 없이 불을 뿜어댈 때에는 아무도 못 건드리는 정이 언니는 우리가 질질 짜면서 제발 좀 알려주고 가라고 하면 투덜대면서도 마우스를 잡고 이 봐라, 저 봐라, 하면서 세상 그 누구보다 친절하고 세세하게 알려줄 거 다 알려주고는 황급히 자리를 떠났었다.
정이 언니는 매일매일 어린이집으로 향하는 오르막을 올랐던 것이다. 엄마를 기다리고 있는 아들 동이를 위해서.
태양에게도 제쳐두고 달려가야 할 어떤 이가 있었을까?
그렇기에 어떤 시점에 이르렀을 때,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아래로, 더 아래로 속도를 내어 몸을 숙였던 걸까? 나 이제 찾지 마요 하는 직장인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