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드러내야 하는 순간이 오고 말았다.
장 선생님은 프로 사진작가라고 하였다.
어느 주말 늦은 저녁, 나는 수업 상담 예약을 위하여 선생님과 통화를 한 뒤 습관처럼 그의 이력을 요청하였다. 선생님은 사진학 전공자로, 전시회 경험과 보도사진, 커머셜 사진 쪽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였다고 했다. 햇빛이 잘 들어오는 어느 신식 오피스텔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왠지 모를 부내가 나는 젊은 남자였다. 그는 내게 깍듯하게 인사하고는, 내가 가져온 사진 파일 여러 장을 모니터에 띄웠다.
볕이 잘 드는 거실에 얌전히 놓인 라넌큘러스 꽃병, 아파트 앞 개울가에 핀 벚꽃, 활짝 웃는 남편 사진, 그리고 나의 비장의 카드- 수국 사이에 선 요정 같은 영이를 담은 사진들이 모니터에서 일정한 속도로 한 장, 한 장 넘어갔다. 그것들이 운명적 갈림길에 서기라도 한 듯, 나는 숨죽이고 화면에 눈을 고정했다.
사진이 모두 끝나자, 내내 말이 없던 장 선생님은 입을 뗐다.
"우선, 본인의 색깔을 찾아야 합니다."
사진을 배우고자 한다면 기술 연마는 기본이나 기술만 배우면 망한다고 했다. 대충 알아듣기론 사진은 기술과 감성의 집합체라는 뜻인 것 같았다. 그러면서 선생님은 처음의 꽃 사진을 모니터에 띄우고는 이 사진은 가짜라고 했다. 제가 직접 꽃꽂이해서 찍은 사진인데요? 그런데요? 이 사진에서는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데요? 이 빨간 꽃에서 저는 어떠한 기쁨이나 슬픔, 회한이나 환희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이 사진은 죽은 사진입니다.
"이제부터 꽃 사진은 금지입니다. 꽃을 이길 수 있는 피사체는 없어요."
다음 숙제는 일상에서 발견하거나 일어나는 일을 50mm 화각으로 찍어오는 것이었다. 프린트물도 챙겨 받았다. 앞으로는 바바라 런던의 사진학 강의와 배부하는 프린트물로 진행한다고 하였다.
수업이 시작되자 나는 놀랍도록 충실한 학생이 되었다.
나의 친구들이 나의 열정에 대해선 이미 알고 있었지만 나도 내가 이렇게 불타오르는 인간이었는지는 몰랐다.
바바라 런던의 책이 필요하다기에 중고서점을 수소문하여 구했다. 작가 조사를 2페이지 분량으로 해오라고 하면 나는 10페이지를 해갔다. 이런 사진을 찍어오라고 하면 그렇게 찍었고, 저런 사진을 찍어보자 하면 그렇게 해냈다. 부족하다는 피드백을 받으면 나는 반드시 다음 수업까지 과제를 보완하여 제출하였다. 그러던 중 일안반사식 필름 카메라, 즉 SLR 기준, 조리개와 셔터스피드 수치를 모두 외워오라고 하면, 다음 수업시간에서 나는 화이트보드에 내가 외운 것들을 막힘없이 적어 내려갔다.
사진의 퀄리티도 빠른 속도로 나아졌다.
훗날 나는 남편에게 내 사진이 예전보다 나아졌는지 물어본 적이 있는데, (나는 남편에게 바라는 답을 정해놓고 물어보는 경향이 있다.) 남편은 이런 말을 남겼다. "음... 여보는 그냥, 다른 사람이 됐어요."
나는 크롭 바디와 50mm 크롭 단렌즈 하나만 가지고 꾸준히 찍었다. 집 근처 풍경, 꽃 옆에 앉아있는 영이, 서 있는 영이, 예쁜 카페 사진들, 지인의 친구의 브라이덜 샤워라든지.(사진동호회도 이때쯤 가입했다.) 그러다 보니, 뷰파인더에서 피사체를 더듬다가 속에서 천불이 나는 순간이 드디어 오고 말았다. 내가 표현하고 싶은 대상들은 갈수록 늘어만 갔는데, 나의 미러리스 카메라와 그 고정 화각은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을 아주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제한하고 있음을 깨닫고 말았다. 내 속은 부글부글 끓고 있었기에, 나는 카메라와 렌즈군을 새로 도입하기로 마음먹었다. 사진학 강의 제7판 68페이지에서는 '다른 초점거리의 렌즈가 있어야 가능한 그런 종류의 사진을 찍고 싶다는 강한 욕구를 느끼기 전까지는 다른 렌즈를 추가 구입하지 않는 것이 좋다'라고 되어있는데, 나는 교재를 충실히 따른 셈이다.
나는 오래된 중고 일안반사식 풀프레임 카메라와 표준줌렌즈, 그리고 망원렌즈를 우리 집 식구로 들였다. 군식구처럼 딸려온 몇몇 단렌즈도 제습제를 넣은 리빙박스 한 곳에 거쳐를 내어주었다. 중고마켓에서 몇십 년 된 필름 카메라도 구입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평화로운 수업 시간이었다. 선생님은 지난주에 찍어온 사진을 리뷰하였다.
"이 정도면 이제 괜찮은데요? 이제 주제를 가지고 찍어보세요."
"지금도 주제로 찍고 있는 것 같은데요?"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반문했다. 마스크로 가려진 표정은 가끔 오해받기 쉽다.
"아, 그런 표정 좀 짓지 마시고요. 이제 포트폴리오 만들자고요."
포트폴리오의 존재에 대해서는 이미 수업 상담을 하면서 들은 적이 있다.
기술을 어느 정도 습득하게 될 때쯤 하나의 주제를 정하여 상징과 의미를 사진에 더하곤, 그것을 연작으로 만드는 것이 수업의 커리큘럼이라고 하였다. 이 포트폴리오는 점차 디벨롭될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당시 '일안반사식 카메라'가 DSLR라는 것조차 몰랐던 나는 그것을 까마득한 미래의 어느 날, 정말로 내가 사진 천재가 되었을 때 일어날 일쯤으로 치부해버렸다. 포트폴리오, 한글 다섯 글자는 내 머릿속에 없었다. 시키는 대로 그저 찍고, 또 찍고 다녔을 뿐.
음... 그랬었지. 포트폴리오. 음...
"사진 배우시는 거 보니 이 정도면 이제 만들어도 돼요. 시작해봐요."
수업 후 오피스텔 지하 주차장을 나는 천천히 느릿하게 빠져나왔다. 그 날 따라 남해고속도로는 유독 막힘이 많았다. 내비게이션에 떠 있는 색깔은 흐릿한 파란색을 뗬는데, 도로에는 짐을 잔뜩 실은 벌건 화물차들이 일정한 속도와 간격으로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나는 본의 아니게 꾸물대며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다음 수업 때까지 또 열심히 사진을 찍고 다녔다.
뷰파인더에 눈을 갖다 대면서도 나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포트폴리오의 존재는 물먹은 시멘트처럼 나의 마음 한 곳에 치덕 치덕 쌓여서는 찍어대는 그 어떠한 사진도 평범하게 보이게 만드는 신묘한 힘을 발휘했다. 그 날은 일정을 빨리 접고 집에 와서 드러누웠다.
장 선생님이 예시로 보여주었던 그 사진들이 생각났다. 학생들이 미국 석사와 국내 학사를 준비하기 위해 찍은 사진들은 해석의 여지가 남는 그런 작품들이었다. 잘 찍든 못 찍든- 그것들은 좋은 종이에 인화되어 미술관 어느 하얀 벽에 조명을 받고 전시되어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그런 작품들이었다. 선생님은 학생들이 의도한 바와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어떠한 기법을 썼는지 설명했었다. 기법은 달랐으나 그것들은 공통적으로 학생 본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답은 나와있었다. 내 이야기를 할 것.
내 이야기를 하려면 나에 대해서 생각하고, 무엇을 왜,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에 생각해야 될 게 뻔했는데, 또 나는 "왜"에서 멈춰버리고 말았다. 나는 내 안의 그 비실거리는 관엽식물이 자꾸만 내게 말을 걸고 싶어 하는 것을 눈치챘다. 그 호기심이 많던, 아니 많았다고 생각했던 그 어린놈은 제 뿌리가 잘려나간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꾸 나의 소매에 치근덕댔다.
음- 어른들을 위한 동화 이야기를 해볼까? 생각하면 그놈은 내게 물었다.
그런데 그 주제는 왜 하려는 거야?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해볼까? 음- 좋은 생각이긴 한데 그 주제는 왜 하려는 거야? 이유는?
나는 그놈의 뿌리를 조각조각 잘라내어 입을 틀어막고 싶었지만,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그 작은 나무는 마음속 어딘가 내 시야가 닿지 않는 곳으로 제 몸을 숨겼다. 그러나 어디선가 우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그 작은 나무는 잘린 뿌리를 웅크려 껴안고는 어디에선가 열심히 울고 있었다.
올해 초 친구의 부추김으로 소설을 써보려고 했던 것이 생각났다.
구상한 스토리는 지금 생각하면 중간쯤밖에 안 되는데, 나는 그것 이상으로 전개시킬 수 없었다. 쓰면 쓸수록 자꾸 내 이야기 같아지잖아. 누가 나를 알아보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에 나는 파일을 전부 지우곤 쓰레기통까지 싹싹 비워버렸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서-
그래서 내가 글 쓰는 게 싫었는데,
그래서 사진을 찍는 게 더 쉬웠는데,
창작을 좋아하는 나는 감으로 어느 정도는 눈치채고 있었다. 나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개입되는 모든 창조는 나를 드러낼 수밖에 없는 행위라는 것을. 하여, 나는 이제야 알게 되었다. 보이는 대로 표현만 하면 된다는- 사진을 좋아했던 내 이유는 사진에 대한 일종의 모독이었다는 것을. 나는 너무 안일했다. 결국, 글뿐만이 아닌 사진 역시 나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된 날이 오고야 말았다.
나는 어디엔가 숨죽이고 웅크리고 있는 식물에게 다정한 목소리를 내어 물었다. 그리고 그를 어르고 달래어 화분의 흙을 파헤치고는 그의 머리를 조심스레 받쳐 꺼내었다. 완전히 잘린 줄 알았던 뿌리는 어느샌가 조금씩 자라 있었다. 조금씩, 조금씩 키가 크고 있던 것이었다. 그리고 힘이 없어 노리끼리한 삼 같을 줄 알았던 그 형태는 생각보다 알이 굵고 실했으며, 하얀 몸은 햇빛을 받아 부드럽게 빛나고 있었다.
수업시간에 다시 만난 장 선생님은 말했다.
"오늘은 주제를 정해오셨나요?"
"아뇨, 아직."
그러나 이제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내 주위부터 다시 돌아보기로 했다.
나의 오래된 일안반사식 카메라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