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얼굴이 보이지 않아도 돼.

사람들이 여기에 있거든요.

by 냥냥이

"상상하는 사진을 가지고 오세요."


어느 평일 오후였다.

근처에 볼 일이 있어 갔다가 시간이 남아 내비게이션을 찍은 곳은 흰여울문화마을이었다. 예쁜 카페가 많고 석양이 아름답다는 곳. 나는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대로 꾸불 꾸불한 오르막을 올랐다. 인생의 94% 이상을 경남에서 살았음에도 부산은 내게는 참 생소한 곳이었다.


도착한 흰여울문화마을은 카페나 공방, 오래된 가게들로 이루어진 작은 집단이었다. 이름값에 걸맞게 힘든 주차를 한 뒤, 나는 해안가 쪽으로 향했다. 지대가 높은 흰여울에서는 바다와 하늘의 경계가 훤히 보였다. 그리고 그 밑으로는 좁은 골목과 실제로 거주하는 집들이 여러 개씩 나타났다. 계단 몇 칸을 내려 나는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올레길로 갈래, 카페나 영화 촬영지 구경을 갈래? 하고 표지판이 묻자 나는 주저 없이 카페를 택했다.


나는 책방을 겸하는 카페에 갔다. 이유라고 한다면 의자에 몸을 웅크리고 세상모르게 잠에 빠져든 노란 치즈 고양이였다. 보드라운 노란 털이 들숨과 날숨에 위로, 아래로 부드럽게 움직거리고 있었다. 나는 홀린 듯 카페로 들어섰다. 조금 어두운 내부에는, 벽면이 주인이 신중하게 엄선한 듯한 책들로 가득 차 있었다. 스피커에서 나른하게 흘러나오는 재즈음악을 느끼는 듯, 느끼지 않는 듯, 사람들은 야외에서 각자의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카드를 받아 들고 포스기를 다루던 직원에게 물었다.

"저... 여기 사진 좀 찍어도 괜찮을까요?"

캡 모자를 거꾸로 쓴 그 직원은 약간은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아, 예... 괜찮습니다. 얼굴은 안 나오게 피해 주십시오."


얼굴만 안 나오면 된다고? 그럼 땡큐지.

직원의 염려 섞인 단서를 나는 미션으로 받아들였다. 카페 사진을 찍을 것. 무엇보다 이곳에서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분위기를 전부 얼굴만 나오지 않게 담아낼 것은 오늘의 내 주제가 되었다.


"주문하신 커피입니다."

얼음이 동동 떠 있는 음료를 나는 그 자리에서 세 번에 나눠 마시고는 다 먹은 컵을 카운터로 돌려주었다. 나는 이 곳의 여기저기를 탐색하였다. 어색한 눈웃음과 목례 후, 나는 뷰파인더에 본격적으로 눈을 갖다 대었다. 그러자 아담한 다락방 같은 카페 내부가 일순간에 환해졌는데, 태양이 제 몸을 던져 세상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던 것이었다. 마치 오늘의 마지막 빛을 다하기 전 소임을 다하기라도 하듯. 일순간에 세상이 밝아지는 듯한 경이로운 체험을 한 뒤 시곗바늘을 살피니 어느덧 4시 반을 향하고 있었다. 나는 그 빛을 받아 특별해진 장소를 카메라에 담았다.


카페의 좁은 내부 한가운데에는 키친 바가 있었다. 그 정중앙에는 무색의 유리 고블렛 잔이 열 지어 물구나무를 서 있었고, 표면의 양각 무늬들은 햇살을 받아 더욱 투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물 빠진 초콜릿 색의 마른 수건이 그들과 가장 가까이에 자리 잡고 있었다. 아마도 다음 손님을 위해 정성스럽게 씻기고 말린 이 잔들은 행여라도 다칠까 봐, 잡은 이의 세심한 손길을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 손님이 온다면- 그들의 취향에 맞는 음료가 오롯이 담길 것이었다.


눈을 돌리니 흰, 초록, 남색으로 이루어진 원피스가 키친 바 맞은편에 무심하게 걸려 있었다. 그 뒤로는 비슷한 톤의 옷가지들이 뒤를 따르고 있었다. 원색에서 채도가 살짝 빠진듯한 초록색 위로는 흰색, 남색 무늬가 마치 천 조각을 덧댄 것 같이 툭, 툭 놓여 있었다. 이 옷을 보고 나는 이곳의 주인이 궁금해졌다. 어떠한 취향을 갖고 있기에 옷을 고른 것인지, 혹은 깊이 관여된 어떤 이가 만든 옷인지- 어떠한 옷이기에 뒤로 보이는 책들과 한 집에 사는 식구 같은 느낌을 내는 것인지.


나는 밖을 내다보았다. 음료 주문을 받았던, 캡 모자를 뒤로 쓴 직원이 잠시 짬을 내어 노란 냥이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니 세상에, 냥이가 아닌, 냥이들이었다. 고양이가 두 마리였던 것이다. 내 심장이 요동쳤다. 그 둘은 항상 같이 움직이는 짝꿍이었는데, 문가에 함께 자리를 잡고 앉아서는 한 놈은 실눈을 뜨고 고양이 세수를 하고, 한 놈은 그 옆에서 식빵을 굽고 있었다. 그 직원은 아가들의 보드라운 털과 복스러운 볼을 애정 어린 손길로 쓰다듬고 있었다. 고양이들은 털이 쓸리는 것을 피하지 않았다. 그들은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있었다.


이제 밖으로 나오니 사람들이 여전히 복작거리고 있었다. 나는 카메라를 아래로 향하게 했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몸을 숙이고는 카메라 앵글을 수평이나 아래쪽으로 잡았다. 뷰파인더에는 어떠한 얼굴도 나오지 않았다. 대신, 어떤 이가 세 손가락을 펴며 설명을 하던 모습, 혹은 친구의 이야기를 듣다 커피잔을 드는 광경이 지나갔다. 뷰파인더는 그날의 소리를 기억하고 있을까? 저마다 자신들의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 혹은 겪어내고 있는 일을 말하고 있던 그 사람들의 소리를.


그러다 태양 광선이 점차 줄어들었다. 이곳에서 조금, 오래 머물렀보다. 구름들이 저 멀리로 이동하면서 옅은 파란 색깔의 넓은 하늘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러자, "하늘 봐!" 어떤 이의 기쁜 외침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 하늘빛이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듯하게 부드럽게 바다와 맞닿아 있었다. 곱게 퍼지는 하늘빛에 사람들은 저마다 포크를 내려놓고 휴대폰을 들었다. 어느 이들의 테이블에는 와인과 애플주스가 반쯤 남아있었고, 나무 접시에는 질컹한 포도껍질과 빵 조각, 포크가 무심하게 놓여 있었다.


만족스럽게 담소를 나눈듯한 목소리가 들리더니 곧 바닥에서 의자 끄는 소리가 났다.

직원은 식기를 치우기 위해 무리에게로 다가갔다. 나도 걸음을 옮겼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약속대로 사람들의 얼굴은 하나도 뷰파인더에 담지 않았다.

아니 사람의 형체가 나오지 않은 사진이 더 많았다.

그러나 내가 담은 것은 모두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그저- 내가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언젠가 내 사진을 보게 될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보이지 않아도, 여기 다 있어요.

여기에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음 손님을 위해, 그리고 들어오는 손님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때로는 어리고 작은 고양이에게 사랑의 손길을 주기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맛있는 음료를 마시면서 좋아하는 사람들과 가벼운 담소를 나누는 마음이 여유로운 사람들을,

변화하는 하늘빛에 잠시 포크를 내려놓고 휴대폰 카메라를 드는


사람들이 여기에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들과 함께 내가 여기에 존재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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