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룸펜 Jul 16. 2016

여름 가지, 맛있다

  어릴 때 먹은 가지나물이 생각난다. 가지를 쪄서 간장 양념하고 참기름으로 마무리한 그 나물. 진저리가 났다. 그 느물거림이란. 그냥 먹을 수가 없었다. 비빔밥에 넣어서 마구 비벼 형체도 모르게 해서 먹으면 모를까. 그렇게 어릴 적엔 가지가 싫었다.      


  

  텃밭농사 시작하고도 한동안은 가지를 키우지 않았다. 3년 정도 지나고 우연히 한 그루를 심었다. 키우기 쉬웠다. 그냥 모종 사다가 심으면 알아서 잘 컸다. 병충해 피해도 별로 없고. 어떤 이들은 곁순도 잘라준다는데 그냥 뒀다. 중간중간에 웃거름만 꾸준히 넣어주면 가지가 주렁주렁 매달렸다.  보기는 좋은데 고민스러웠다. 저걸 어찌 다 먹나?         



  그래도 가지나물은 싫었다. 냉장고에 보관하다 은근슬쩍 음식물 쓰레기통으로 직행할 게 뻔하니까. 그래서 좀 찾아봤다. 나물말고 다른 조리법은 없는걸까? 어! 가지로 이렇게 다양한 요리를 할 수 있다고?? 더 놀라운 것은 동 서양을 막론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가지를 사랑한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렇게 만들어진 가지요리가 맛있어 보였다! 그래서 하나 둘 만들어 먹어보기 시작했다. 예상대로 훌륭했다. 그후로 여름마다, 가지 참 부지런히 먹었다.      


  



  가지 튀김     

  신발도 튀기면 맛있다는 말이 있다. 가지튀김 또한 그 맛이 일품이다. 그냥 튀겨도 맛있지만, 사이에 간 돼지고기를 양념해서 넣거나 나 두부랑 으깬 새우를 넣어 튀기면 풍미가 어마어마하다. 바삭하게 튀긴 가지를 한 입 베어물면 녹진한 가지 사이로 뜨거운 기름이 흘러내리는데 느끼하지 않고 달콤한 그 맛이 예술이다. 더운 여름 저녁 맥주 안주로도 최고!      

  마파가지     

  개인적으로 마파두부 참 좋아한다. 이런저런 반찬없이 한 국자 퍼서 밥 위에 올려 비벼먹으면 한끼 식사로 그저그만. 그런데 마파가지가 훨씬 윗길이다. 요리법은 마파두부랑 똑같다. 쉽다. 두부대신 가지만 넣으면 된다. 참, 여기서 나만의 포인트. 나는 생협이나 직거래로 구입한 말린 가지를 쓰는데 훨씬 쫄깃하고, 단맛도 더 강하다. 말린 가지는 언제나 옳다!     

  

  가지 오븐구이     

  이탈리아 사람들의 가지 사랑은 유명하다. 하긴 토마토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니까 같은 과인 가지를 많이 먹는 것도 당연한 거겠지(토마토와 가지가 같은 과라고 하면 놀라는 분들도 계시려나. 그런데 꽃을 보시면 대번에 알 수 있다).  요리법도 간단하다. 가지를 길게 잘라 소금에 30분 정도 절여둔다(이렇게 해야 가지 특유의 풋내가 사라진다. 귀찮으면 그냥 해도 무방). 소금을 털어내고 살짝 굽는다. 그 위에 토마토소스 바르고 모짜렐라치즈 뿌려 오븐에서 치즈가 녹을 정도까지 구워주면 끝! 이 보다 더 복잡하게 만드는 방식도 있지만 패스! 맛은 어떠냐고? 상상에 맡긴다.      


  가지나물

  그럼에도 내가 젤 좋아하는 건 가지나물이다. 싫어한다며? 가지나물 만들 때 가지를 꼭 찔 필요는 없잖아. 기름 조근 두른 팬이나 오븐에서 살짝 그을릴 정도로 구워주면 기분좋은 단맛이 나면서 식감도 훨씬 좋다. 여기다 시판 오리엔탈 드레싱 넣어주면 끝(간장, 참기름, 간마늘 등을 넣고 직접 만든 드레싱도 오케이)! 만들긴 간단해 보이지만 입맛없는 여름날 밥반찬으로 이만한 게 없다.      





  올 여름은 유난히 비도 많이 오고 덥다. 어김없이 텃밭이 몸살을 앓고 있다. 상추 등 푸성귀는 이미 끝났고, 토마토랑 고추는 과습으로 많이 힘들어한다. 미친 듯이 올라오는 잡초는 말할 것도 없고. 그렇지만 가지는 건재하다. 그래서 고맙다. 오늘은 잘익은 가지를 따다 구워볼까, 볶아볼까, 아님 옛날방식으로 한번 쪄 볼까나. 여름가지는, 맛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무전, 살캉하게 씹히는 어른의 맛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