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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룸펜 Sep 18. 2016

서라벌, 그 대기의 느낌

경주 걷기 예찬

 경주에 가면, 난 주로 걸어 다닌다. 버스는 20분 이상 걸리는 거리를 이동할 때만 이용하고, 자전거도 잘 타지 않는다. 요새 유행하는 스쿠터도 당연히 사절. 그렇게 오롯이 두 다리로만 걸어다니다 보면 그 옛날 서라벌의 분위기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고, 우연찮게 감동적인 순간들을 만날 수 있다.





  오래전 이야기 하나.


  너무 옛날 일이라 이젠 왜 갔는지도 잘 떠오르지 않지만, 꽤나 늦게까지 경주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던 기억이 난다. 밤도 깊어가고 버스 시간도 촉박해 마음이 급했나 보다. 터미널 가는 지름길을 찾다가 골목길로 들어섰는데 그만 길을 잃어버렸네. 사실 그 좁은 경주 시내에서 길 잃기도 쉽지 않은데, 낯선 곳이라 좀 당황했던 거겠지.


 겨우 골목길을 빠져 나와  큰길 쪽으로 나가려던 순간, 나는 뭔가를 발견하고 얼어붙듯 멈춰 서고 말았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바로 거대한 고분! 경주에서 흔하고 흔한 것이 옛날 무덤인데 그때는 뭔가 달라 보였다. 고고한 달빛 아래 말없이 서있는 그 육중한 무덤이 어찌나 장엄해 보이던지. 나는 완전히 압도되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버스 시간이 다 되어가는 것도 잊은 채 한참을 쳐다보았던 기억이 난다.


몇 해 전 비오는 날 밤에 본 노서동의 한 고분. 옛날 그 무덤도 이런 느낌이었을까


  그리고는 경주가 좋아졌다. 그래서 꽤나 자주 들렀다. 봄에도 가고, 겨울에도 가고. 혼자서도 가고, 가족들과도 가고. 남들 가는 곳도 많이 가고, 남들 안 가는 곳은 더 많이 가고...




  최근 이야기 하나.


  그리도 뻔질나게 드나들던 경주였는데 사는 게 바빠서 한동안 가보지를 못했다. 그러다 재작년인가, 갑자기 경주가 그리워졌다. 충동적으로 여행을 결정한 뒤 KTX를 타고 경주로! 오랜만에 떠나는 혼자만의 여행, 그것도 경주 여행이라 어찌나 설레던지. 터미널에서 내려 약간 흥분한 상태로 대능원 쪽으로 걸어갔다. 그 옛날처럼 이리저리 헤매다 모텔들이 늘어선 골목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그러자 또 이런 기막힌 광경이 나타났다.


예고없이, 예열없이 5세기로!


  모텔 뒤편으로 보이는 노동동 노서동 고분군의 무덤들. 순간 아무 예고도 없이, 예열도 없이 21세기에서 5세기로 순간이동! (또는 성(聖)과 속(俗)의 급속한 변환!!) 왜 갑자기 경주가 그리워졌는지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이후 가벼운 백팩하나 매고 편한 운동화 신고 열심히 열심히 경주를 걸었다. 신라의 옛 도읍, 서라벌의 대기를 마음껏 마셨다. 얼마 전에는 아내와 딸과 함께 가족여행도 다녀왔다. 행복했다. 이 글들은 꽤 오랫동안 경주를 드나들면서 배우고 느낀 점을 정리한 내 나름의 소박한 기록이다. 변변치 않지만 경주를 여행하면서 내가 느낀 그 감동과 기쁨들을 함께 나눴으면 하는 바람으로 한 권의 책으로 묶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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