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도시를 걷는다는 것은 매력적인 여행 방법이다. 그렇지만 관광명소나 유적들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면 이것도 불가능한 일. 다행히 경주에는 시내 곧곧에 수많은 유적들이 인접해 있어 걸어 다니며 답사하는 것이 가능하다. 반월성, 안압지, 첨성대, 대릉원 등등... 대부분이 당시 신라 왕족이나 귀족들과 관련된 유적으로 보물이나 국보 또는 사적으로 지정된 중요한 것들이다. 그래서 <나의문화유산답사기>의 저자 유홍준 선생은 이곳을 ‘다운타운 서라벌’이라고 부르신 거겠지.
내가 선호하는 다운타운 서라벌 답사코스는 다음과 같다. 터미널에서 가장 가까운 노동동 노서동 고분군을 둘러본 후, 길 건너 대릉원 후문으로 들어가서 황남대총, 천마총, 미추왕릉 등을 살펴본다. 그리고 정문으로 나가 첨성대와 동부사적지대, 계림, 내물왕릉 등을 답사한 후, 반월성으로 올랐다가 안압지에서 마무리하는 것이 정석.
그럼 먼저 4~5세기 적석목곽분들이 모여있는 노동동 노서동 고분군부터. 사실 이 곳은 신라 역사나 고고학적 지식이 없으면 고만고만한 무덤들이 서있고, 동네 어르신들이 운동을 하거나 산책을 하는 잘 꾸며진 고분공원일 뿐이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여행객들은 경주여행 마지막에 슬쩍 들러보거나 빡빡한 일정 중간에 다리 쉼을 하기 위해 잠깐 들른다.
그렇지만 이 고분공원엔 역사적으로 유명한 무덤들이 즐비하다. 최초로 금관이 출토된 금관총, 황금신발이 발견된 식리총, 스웨덴 왕자가 발굴에 참석했던 서봉총, 그리고 바닥에 "을묘년국강상광개토지호태왕호우십(乙卯年國岡上廣開土地好太王壺杅十)"이라 씌여진 쇠솥이 나와 4세기 고구려와 신라의 관계를 살펴볼 수 있는 호우총까지. 한마디로 신라 역사와 문화의 타임캡슐 같은 곳이라 하겠다.
그럼에도 노동동 노서동 고분군의 간판은 뭐니뭐니해도 봉황대다. 봉황대? 그게 뭐지? 어디 있는 거지?라고 물으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그분들 대부분은 봉황대를 보거나 지나치셨을 게다. 경주의 명물인 황남빵을 사 먹으러 가려면 지나가야 되니까. 대능원 가서 천마총 보려면 지나가야 되니까.
봉황대. 노동동 노서동 고분군 서북쪽 모서리에 위치해 있는 이 무덤은 분구 높이 22미터, 지름 88미터로 단독으로 조성된 무덤으로는 경주에서 가장 크다. 주위에 있는 금관총, 식리총 등의 발굴 결과를 토대로 5세기경의 적석목곽분이자 왕릉일 것이라 추정된다. 봉황대라는 이름이 언제 붙여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풍수지리설에 따라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아, 써놓고 보니 정말 따분하다. 이런 식의 기술은 문화재 안내판에서나 볼 수 있는 설명일 뿐, 실제로 본 봉황대의 느낌을 백만분의 일도 전하지 못한다.
경주의 다른 고분들이 대체로 정겨운데 반해 봉황대는 신령스럽다. 특히나 밤이 되어 오래된 나무들에 조명이 비칠 때 그런 느낌이 훨씬 더 강해진다. 사실은 괴기스럽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몇 해 전 늦은 밤에 인적도 없는 봉황대를 지나간 적이 있었는데 살짝 무섭기까지 했다. 하여간 포스가 장난이 아니다.
그렇지만 대낮에 보면 또 친근하다. 천년이 넘는 세월이 흘러 이제는 인간이 만든 인공물이라기보다는 그저 얕은 동산처럼 보인다. 노거수들까지 자라고 있어 더 그런 느낌이다. 그래서 언젠가는 저 위에 올라가 경주시내를 둘러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래서 나는 경주에 갈 때면 매번 터미널에서 내려 봉황대까지 걸어간다. 그리고 벤치에 앉아 한참을 쳐다본다. 주위를 산책을 하기도 하고. 그건 일종의 인사나 의식 또는 보고 같다. 이제부터 경주를 여행하게 되었으니 잘 부탁드린다는.
그러니 경주에 오시면 불국사나 석굴암, 보문단지만 보지 마시고, 노동동 노서동 고분군에 가 보시라. 느긋하게 앉아 봉황대와 다른 고분들을 바라보는 것도 경주를 느끼는 좋은 방법이리라. 가까운 곳에 있는 황남빵집에서 갓 구워낸 뜨거운 황남빵이랑 차가운 흰 우유를 함께 먹는다면 더욱 금상첨화!
자, 황남빵 드시면서 좀 쉬셨으면 이제는 길 하나 건너 신라 김씨 왕족과 귀족들의 무덤이 모여있는 대릉원으로 가자. 들어가자마자 왼쪽으로 보이는 엄청 큰 고분이 바로 황남대총. 경주시내의 고분군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적석목곽분으로 두 개의 봉분이 남북으로 이어져 있는 표주박 모양의 무덤이다. 부부묘로 추정되는 이 고분은 남분에서 은관, 환두대도 등의 유물과 함께 60대로 추정되는 남자의 유골 일부가 출토되었으며, 북분에서는 금관 및 다양한 장신구들과 함께 '부인대(夫人帶)’라는 명문이 있는 허리띠끝꾸미개가 출토되어 부인의 무덤으로 밝혀졌다. 그 외에도 토기류, 철기류 및 유리제품 등 총 3만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으며, 적석목곽분의 양식과 편년을 결정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유적이다.
그리고 맞은 편에 있는 고분이 바로 천마총. 이 무덤은 황남대총을 제대로 발굴하기 위해 시험 삼아 조사되었는데, 막상 발굴이 시작되고는 대박이 났다. 그 유명한 천마도를 비롯하여 금관, 금제 허리띠 등 어마어마한 유물들이 출토되어 연일 TV와 신문 등의 일면을 장식하였다. 신라 멸망 후 경주가 이만큼이나 전국민적 관심을 받은 적도 없었으리라.
발굴 끝난 후 천마총은 내부를 전시고분으로 꾸며 일반인들이 신라고분의 구조를 확인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런데 난 그게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역사교육을 위한 목적이라도 천년 넘게 이곳에서 잠들어있던 망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그래서 경주분들은 천마총 발굴 이후 경주에 비가 내리지 않는다고 하지, 아마) 따로 고분전시관을 만들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미추왕릉에 다다른다. <삼국사기>에 '미추왕은... 재위 23년 만에 돌아가니 대릉에 장사 지냈다'라는 기록이 있어 황남대총과 천마총이 포함된 이 고분군을 대릉원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미추왕릉과 관련된 재밌는 일화 한 가지. 14대 유례왕 때 이서국(지금의 청도)이 쳐들어와 곤경에 빠져 있는데, 어디선가 귀에 대나무를 꽂은 원병들이 나타나 적을 무찌르고 사라졌단다. 이후 그 대나무 잎의 행방을 조사해보니 미추왕릉 앞에 높이 쌓여 있었다고 한다. 아후 미추왕릉을 '죽릉', '죽장릉'이라고 부르게 되었고, 지금도 능앞에는 대나무밭이 도열하듯 서 있다.
미추왕릉 지나 아늑한 솔숲 사이 청량한 공기를 마시면서 걷다 보면 대능원 정문에 도착. 문을 나서면 눈앞으로 동부사적지대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드넓은 잔디밭에는 사람들이 한가로이 휴식을 취하고 있고, 아이들은 연을 날리고 있다. 계림, 내물왕릉, 그리고 아직 주인이 밝혀지지 않은 고분들이 보이고, 그 뒤로는 반월성과 남산이 겹쳐있다. 내가 경주에서 가장 사랑하는 풍경이다.
그나저나 경주가 가장 아름다운 계절은 언제일까. 단연컨대 봄, 그것도 4월 초 벚꽃 필 때겠지. 이맘때 경주는 말 그대로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 진정 인간이 사는 곳이 아니라 신선이 사는 꽃대궐 같은 풍경이 끝없이 펼쳐진다. 특히나 대릉원 정문 앞 벚꽃들은 햇빛을 충분히 받아 경주의 다른 지역보다 빨리 만개하는 편이다. 이 부근엔 황남빵과 더불어 경주의 양대 명물이라 할 수 있는 보리빵집도 즐비하니, 한 봉지 사서 먹으며 아름다운 선경(仙境)을 만끽하시길. 단, 절대 차는 가지고 오지 마시라. 꽃도 보기 전에 괜히 스트레스만 받고 주차도 못하실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