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능원 정문 앞에서 계림으로 뛰어가고 싶은 마음을 진정시키고 왼쪽으로 꺾어 조금만 걷다 보면 바로 첨성대에 도착한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 사람들의 반응 : 뭐야, 이게 다야?
그렇다. 진짜 허망하다. 약간 특이하게 생긴 석조물이 걍 덩그러니 서 있다. 동양 최초의 천문대로 우리 전통 과학의 우수성을 입증하는 증거라더니 이게 다야? 밖에서도 보이지만 좀 더 가까이 보려고 들어가려면 돈까지 내야 했다(지금도 그런가?). 그래도 밤에 가면 야간 조명을 받아서 좀 더 그럴싸해 보이긴 한다. 유적도 민낯보다는 어느 정도의 화장(또는 변장)이 필요한 걸까.
경주의 유적이 다 그렇지만 첨성대를 제대로 보려면 약간의 공부와 상상력이 필요하다. 첨성대를 둘러싼 논란이야 워낙 오래 되었는데, 정리하면 진짜 별을 관측하는 데 사용되었냐 아니냐는 것이다. 여기서 그에 관한 복잡한 학설과 논거들을 다 설명할 필요는 없을 듯. 나는 진짜 관측 목적으로 쓰였다기보다 신라시대 과학을 담당하는 기관 앞에 놓여있던 상징 조형물이라는 견해에 좀 더 마음이 가는 편이다.
자 이제 상상해보자. 이곳은 반월성 바로 북쪽, 왕가의 무덤과 온갖 공공 건물들이 꽉 들어차 있는 옛 서라벌의 중심지. 그중 지금으로 치자면 국립기상과학관 같은 곳도 있었겠지. 그 건물 앞, 기와 지붕이 이마를 맞대고 서 있는 건물들 사이로 우뚝 솟아 있는 첨성대! 그처럼 눈을 감고 그 옛날 첨성대 주변의 모습을 머리 속에 그려 보시라. 그리고 눈을 뜨고 다시 첨성대를 보시라. 뭔가 좀 달라 보이지 않나?
그나저나 경주를 경주답게 만드는 것들은 무엇일까? 불국사, 석굴암, 첨성대, 안압지... 많은 분들이 역사책에서 배운 유명한 유적과 유물을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내 경우에 경주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바로 고분이다.
왜냐고? 일단 많다. 그리고 어디서나 볼 수 있다. 논밭 한가운데에도 있고, 공원에도 있고, 건물 모퉁이에도 있다. 보고 있으면 편안해서 좋다. 중국 황제들의 능이나 이집트의 피라미드처럼 우악스럽게 크지 않아 부담스럽지 않다. 게다가 몇 기의 고분들이 어깨를 맞대고 있는 모습은 마치 오래된 마을의 초가들이 올망졸망 모여있는 것 같아 정겹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름답다. 특히 해가 서쪽으로 넘어가는 오후 늦은 시간, 고분들이 역광을 받아 실루엣으로만 보일 때, 그 편안하고 부드러운 곡선은 황홀할 뿐이다.
그래서 작가 강석경 선생은 <능으로 가는 길>에서 '경주를 경주답게 만드는 주역은 능들이다'라고 말했었지. 고분이 없는 경주? 생각만 해도 삭막하다. 나 또한 톨게이트를 나서 경주시내로 들어오면서 고분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해야 경주에 도착했다는 걸 실감하고 마음이 푸근해진다.
그리고 그 흔하디 흔한 고분들이 모여서 가장 경주다운 풍경을 보여주는 곳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없이 동부사적지대를 선택하겠다.(동부사적지대는 첨성대부터 월성, 그리고 안압지까지의 넓은 지역을 통틀어 가리키는 명칭인데, 개인적으론 첨성대와 월성 사이 몇몇 건물지와 고분들(인왕동 고분군)이 있는 넓은 잔디밭을 그렇게 부른다.)
그 넓은 잔디밭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고분들은 아무리 봐도 싫증나지 않는다. 특히 계림으로 걸아가다 시선을 오른쪽으로 돌렸을 때 보이는 풍경은 각별하다. 사이좋게 어깨를 맞대고 있는 무덤들의 곡선이 배경처럼 서 있는 경주분지의 오래된 산들을 신기할 정도로 닮아 있다. 천년이란 세월이 지나고 이제 인간이 만든 고분들도 자연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일까.
동부사적지대는 언제 들러도 좋지만 노을지는 저녁에 꼭 한번 와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나도 이제껏 한번도 못 보다가 작년 겨울 어느 날 운좋게 이곳에서 해넘이를 볼 수 있었다. 날씨도 무척 맑아 선도산 너머로 해가 사라지자 온 천지가 붉게 물들었다. 너무 아름다워 울고 싶었다. 이럴 땐 나의 모국어가 너무나 빈약한 것이 속상할 뿐. 사진 또한 그 느낌을 백분의 일도 전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내 미천한 글보다는 나을 것 같다.
그리고 계림으로. 닭이 울고, 금궤가 나뭇가지에 걸려있었다는 신화의 숲. 그래서 그리 크지 않은 숲으로 들어서는 순간 느껴지는 신령스러움이 장난이 아니다. 동틀 무렵 안개가 자욱한 계림을 걷는 것이 가장 좋다는데, 아직은 그렇게까지 부지런하지는 못했다.
계림의 나무들은 그 오랜 세월 왕조의 흥망성쇠, 인간사의 희노애락을 온몸으로 겪은 듯 이리저리 뒤틀리고 비틀어져 있다. 그럼에도 비루하지 않고 위엄있는 모습이다. 나도 모르게 경건해진다.
산책로를 여유있게 걷다보면 아까 멀리서 보이던 인왕동 고분군의 무덤들이 코 앞에 나타난다. 그리고 그 옆에는 내물왕릉이 있다. 5~6세기 신라 역사를 한마디로 표현자하면 '욱일승천'. 한반도 동쪽 끝, 존재감 없이 내우외환에 시달리던 후진국 신라가 비로소 '일통삼한'의 힘을 키우기 시작하던 시대였다. 이 시기를 다스렸던 왕들을 '마립간'이라 불렀는데, 내물왕은 그 중 맏형이었다. 그런 역사에는 관심도 없는 듯 아이들은 아빠가 불어주는 비누방울에 정신이 팔려 신나게 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