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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룸펜 Sep 25. 2016

월성과 안압지, 천년의 도읍

폐허에게 자유를


  자, 이제 월성에 오를 시간. 월성하면 떠오르는 기억이 하나 있다. 고등학교 졸업 전, 친구 녀석들이랑 1박2일 일정으로 이모가 사시는 경주로 놀러 갔다. 고등학생들이 경주 유적에 대해 뭔 관심이 있었겠나. 그래도 처음으로 불국사도 가고, 석굴암도 갔다. 이모네서 밤새 고스톱도 치고. 재밌었다. 


  다음 날 아침, 안압지랑 박물관 들렀다. 그리고 시간이 남아 월성에 올랐다. 근데 이건 뭐지? 한겨울이라 나뭇잎은 다 떨어지고 칼바람만 얼굴을 때리는 황량한 허허벌판. 다들 괜히 왔다며 궁시렁거리며 내려갔다. 근데 왜일까? 아직도 그때의 여행을 생각하면 월성의 그 을씨년스런 풍경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뭐가 그리 인상적이었던 걸까?


그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황량한


  지금의 월성도 그때와 별 차이가 없다. 성벽돌 사이로 잡초와 아름드리 나무들이 제멋대로 자라고 있고, 인위적으로 정비되어 있지도 않다. 심지어 복원된 건물도 하나 없다. 말 그대로 폐허. 그래서 좋다. 마음껏 상상할 수있어서 좋다. 내 맘대로 그 옛날의 영화로운 궁궐을 지어볼 수 있어 좋다. 그냥 남천을 보면서 조용히 산책할 수 있어 좋다. 스물살도 안된 어린 나이였음에도 내가 그 때의 월성을 오랫동안 기억하는 것은 그런 상상할 수 있는 자유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작년에 갔더니 입구에 이상한 플랜카드가 달려 있었다. ‘축 경주 월성 복원’  헐~~~ 이게 정말 축하할 일일까. 월정교도 정확한 고증없이 복원하고, 황룡사도 다시 짓는다더니 월성까지. 제발 좀 내버려주자. 폐허는 폐허로 남아있을 때 아름다운 것 아닐까. 


폐허에게 자유를 허하라!




인공과 자연의 절묘한 조화


 월성을 내려 와서 길을 건너면 바로 안압지. 이곳은 원래 왕족의 정원이자 태자가 지내던 동궁이었다. <삼국사기>에 674년에 궁성 안에 못을 파고 전각을 짓고 정원을 꾸몄으며, 679년에는 경내에 동궁을 건설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안압지라는 이름은 신라가 망한 후 늪지로 변한 호수 위로 기러기(안)와 오리들(압)이 떼 지어 노는 장면을 본 조선시대 시인묵객들이 지었다고 한다(사실 이제는 정식명칭인 '동궁과 월지'라고 불러야하는데도, 난 여전히 안압지란 이름이 훨씬 더 정이 간다).


  오랫동안 폐허로 방치되었던 안압지는 1975년부터 실시된 발굴조사 결과 다수의 건물지와 수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그 결과를 토대로 1980년대부터 복원사업이 시작되었는데, 지금 있는 세 동의 전각이  그때 복원된 것들이다(몽땅 다 복원했음 답답했을 텐데, 이 정도에서 그쳐 딱 좋다).


  최근에 야간조명이 설치되면서 안압지는 경주를 대표하는 아이콘이 된  듯하다. 실제로 색색의 조명을 받은 전각들은 황홀했다. 문제는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그것만 보고 간다는 것. 시간을 좀 만 더 투자해 호수 전체를 한바퀴 다 돌아보시라. 그래야 시시각각 변화하는 아름다운 경치와 나무들과 전각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밤에 보면 멋지긴 하지


  우선 서쪽 전각에서 바라보는 동쪽 호안은 나무와 화초들이 심겨 있고 불규칙한 석축으로 구불구불 자연스러운 모습이다(아래 왼쪽 사진). 그러나 동북쪽으로 난 길을 따라 걷다 뒤돌았을 때 보이는 서쪽 호안은 전혀 다른 모습을 띠고 있다. 일정한 크기의 석재들을 정연하게 쌓아 직선의 축대를 마련하고 그 위에 전각들을 지었다. 지극히나 인공적인 모습(아래 오른쪽 사진). 



  그리고 좀 더 걸어가다 보면  이 두 가지의 상반된 미감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기가 막힌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안압지는 통일신라 건축과 미술의 가장 큰 특징인 인공과 자연의 조화와 통합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이러한 모습은 100여 년 뒤 석굴암과 불국사에서 더욱 완벽한 형태로 구현된다).


조화란 이런 것

  

  게다가 호수 동남쪽 구석에서 있는 유적을 봐야 안압지를 제대로 봤다고 할 수 있다. 바로 입수구. 거북이 등을 음각한 것 같은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적인 유구였다.  오래전에 왔을 때는 물이 말라 있었는데 최근에 가보니 실제로 호수로 물이 흘러들어가고 있었다. 어찌나 반갑던지. 천 오백년 전 신라의 왕족들이 삼한을 통합하고 당나라를 몰아낸 후, 배 띄우고 여흥을 즐길 때도 이런 식으로 호수로 물이 흘러들어 갔을 테지.


조명이 좀 과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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