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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룸펜 Sep 27. 2016

국립경주박물관, 유물로 만나는 신라의 역사

예습이 좋을까, 복습이 좋을까

  아침 일찍 경주터미널부터 걷기 시작해서 계림, 월성, 그리고 안압지까지 돌아보고 나면 다리가 뻐근하다. 그렇다고 바로 옆에 있는 경주박물관을 빼놓을 순 없지. 신라역사와 문화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위해 경주박물관만큼 좋은 곳도 없으니까. 여행 전에 미리 둘러보고 예습하는 게 좋긴 한데 동선상으로 안압지까지 보고 가는 것도 괜찮겠다. 공부할 때 예습도 중요하지만 복습도 중요하니까.




신라역사 총정리 코스  

  

  우선 본관으로 가자.  몇 해전부터 전시가 완전히 바뀌었다. 예전에는 고고실이었는데 이제는 신라 역사 편년에 맞게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즉, 신라 이전, 신라의 태동, 신라의 발전과 삼한 통일, 통일신라 등 신라 역사를 개관하고 그 시대의 대표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이전에는 유물들 실컷 보고 나왔는데도 신라 역사와 매치가 안 되서 아쉬웠는데, 이렇게 전시가 개편되어 짧은 시간에 중요한 유물들을 통해 신라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어 좋았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초기 신라의 역사를 설명하는 부분. 예전에는 기원 전후부터 300년까지를 초기철기시대 또는 원삼국시대라고 설명하면서 유물들을 전시했었다. 그렇지만 그 유물들이 신라 역사에서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는 전혀 설명해주지를 않았다. 엄연히 역사에서는 그 때 신라가 태동하고 있다고 기술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이번 바뀐 전시에서는 조양동, 사리리 등의 유적에서 나온 유물들을 전시하며 당시 이 지역에 유력자들이 나타나 신라이전의 초기국가, 즉 사로국를 이루어 가고 있는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아래는 사라리 유적의 토광목관묘 바닥에서 나온 철정인데, 이는 당시 철기제조 기술을 가지고 있던 집단이 있었고 그들이 당시로는 최첨단 하이테크 기술을 가지고 상당한 권력을 누리고 있었던 것을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권력의 발생


  4~5세기 섹션의 고분 부장품 떼(?)전시. 토기류, 금속제품 등 하나의 무덤에서 출토된 온갖 유물들을 걍 한꺼번에 다 전시하고 있다. 본관 들어와 이렇게 전시되어 있는 걸 여러 군데에서 봤는데 이것도 하나의 트렌드인가. 나는 대표적 유물만 몇 개 보여주는 것보다 이런 식의 전시가 훨씬 좋은 것 같다.


유물만 보고도 배부른 느낌

  

  고분 출토 유물 중 저 멀리 대륙 너머에서 건너온 외제 물건들. 우리 역사와 문화가 반도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는 벅찬 증거들. 실크로드의 꿈.

  

그리고 너무나 인상적이었던 석굴암 출토 인왕상 두부. 요새 말로 정말 어마무시하지 않나. 우리 역사에서 이후 이 보다 뛰어난 조각상을 본 적이 없는 것다.  

금강불괴




경주박물관 전시의 묘미


 본관을 다 봤으면 이젠 야외로 나가볼까나.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실내 전시 대강 둘러본 후 본관 뒤 모조 석가탑, 다보탑에서 사진 찍고 돌아서기 일쑤이다. 그렇지만 경주박물관의 진수는 야외전시에 있다. 말이 필요 없는 성덕대왕 신종, 불상과 탑, 그리고  이름모를 폐사지의 수많은 주춧돌까지. 신라 문화와 예술의 진수를 제대로 느끼려면 무조건 야외로 나가야 한다.



  성덕대왕 신종, 특히 그 유명한 비천상을 보시라. 어찌 이런 작품을 천 년 전에 만들 수 있었을까. 이 종 앞에 서면 예술이란 시대를 이어 오며 발전하고 있다는 우리들의 믿음이 잘못된 것이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하게 된다.


Simply masterpiece!


  그렇게 야외전시를 다 보신 분들은 새로 생긴 미술관과 안압지관을 살펴보시면 되겠다. 특히 안압지관을 강추.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인 김수근 선생이 설계한 건물도 훌륭하고 전시 또한 훌륭하다. 안압지에서 출토된 다양한 유물들을 통해 당시 신라인들의 생활상을 아주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안압지만큼이나 훌륭한 전시관




경주 최고의 쉼터


  그럼에도 박물관에 별로 관심이 없는 분들이라면 진짜 최고의 쉼터를 소개해드리겠다.  본관을 나와 모조 석가탑, 다보탑을 지나 조금만 더 걸어가시라. 안압지관 옆, 미술관 뒤편엔 아주 준수하게 잘 생긴 탑이 보인다. 바로 고선사지 삼층석탑. 그리고 그 옆에는 탑만큼이나 잘 생긴 느티나무와 벤치가 있다. 보이시는가.


잘 생긴 탑 옆에서 잠시 쉬어가시길


  덕동댐 건설로 인한 수몰 위기로 이전된 이 탑은 박물관 한쪽 구석에 눈칫밥 먹듯이 서있지만 절대 예사로 볼 탑이 아니다. (왜 이런 자리에다 놓았는지 진짜 이해가 안된다. 박물관에서 사람들 가장 많이 다니는 제일 좋은 자리에 전시해도 될까 말까 한 판에. 그 덕에 사람들이 별로 없어 조용히 쉬기엔 좋지만.) 바로 감은사지 삼층석탑과 함께 우리나라 초기 삼층석탑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탑 모두 초기 양식이라 10미터가 넘을 만큼 덩치가 크지만 약간의 미감 차이가 나는 게 재미있다. 감은사지 삼층석탑이 남성적이라면, 고선사지 삼층석탑은 뭔가 모르게 여성적이지. 감은사탑이 동해바다를 바라보는 확 트인 곳에서 하늘을 찌를 듯한 찰주를 이고 서 있는 반면, 고선사 탑은 찰주도 없고 박물관 한쪽에 조용히 서있기 때문일까. 하여간 감은사지 삼층석탑 앞에 서면 뭔가 압도되는 기분이 들지만, 고선사지 삼층석탑 옆에 서는 잠시 쉬어가고 싶어 진다.





  몇 년 전 햇살 좋은 봄날 오후, 오랫동안 앉아 그 잘 생긴 탑과 바람결에 스쳐오는 봄의 기운을 만끽한 적이 있었다. 진짜 행복했지. 그러니 혹시라도 박물관에 가시거든 실내 유물들만 보지 마시고 야외전시도 꼭 보시라. 그리고 고선사지 삼층석탑 옆 벤치에 앉아 커피라도 한잔 하시라. 서라벌을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멋진 방법이 되리라.


서라벌의 봄바람이 느껴지시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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