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이런저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룸펜 Mar 01. 2017

중국인 이야기, 21세기 사기열전

 얼마 전 서점에 들렀다 책 제목을 보고는 혼자 웃었다. <중국인 이야기>? <로마인 이야기> 짝퉁이야? 그런데 그 책과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거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출판사라 호기심이 생겨 한번 훑어봤다. 만만히 볼 책이 아니었다. 특히 사진들이 어마어마했다. 도대체 이런 사진들을 어디서 구한 거야? 마오쩌둥, 장제스, 위안스카이, 주더 등 중국 근현대사의 거물들의 다채로운 모습이 흥미로웠다. 자연스럽게 읽게 되었고, 곧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 들었다.  


사진출처 : http://myungworry.khan.kr/268

    



불친절한 그런데 묘한


  처음에는 좀 당황스러웠다. 이 책은 <중국인 이야기>라는 제목처럼 청조 말기부터 신해혁명을 거쳐 문화혁명 때까지 중국 역사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을 다루고 있다. 인물로 쓰는 중국 근현대사라고나 할까. 그런데 보통 역사 관련 서적이 시대 순으로 기술되어 있는 것과는 달리 이 책은 완전 중구난방이다. 1960년대 말 문화혁명 때의 류샤오치 이야기를 하다가 청조 마지막 황제 푸이로 건너뛴다.      


사진출처:http://baldwin7.tistory.com/87


  게다가 한 인물에 대해 모든 걸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여기 찔끔, 저기 찔금 설명한다. 1권에 나왔던 린뱌오가 3권에서 한 챕터로 또 등장한다. 그렇다고 우리가 그의 일생에 대해 다 알 수도 없다. (그의 비극적 죽음에 대해서 비행기 사망 정도로 간단히 처리하고 넘어간다. 언제가 또 등장하겠지.)     


  진짜 불친절하다. 그런데 이런 기술방식이 묘하게도 읽는 이가 책을 적극적, 능동적으로 읽게 만든다. 퍼즐처럼 한 인물에 대해 조금씩 맞춰나가는 재미가 있다. 태평천국의 난, 국공합작 등 중국 근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사건에 대해서도 이 인물에서 조금, 저 인물에서 조금씩 소개되니 그전에 읽은 부분을 다시 살펴봐야 한다. 작가가 의도했던 그렇지 않든 간에 이런 체계가 없고 산만한 구성은 독자들이 허리 꼿꼿이 세우고 고도의 집중력을 갖고 독서에 임하게 한다.      


그들도 우리 같은 사람이었다     


  이 책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역사책에서 배운 인물들을 우리와 같은 평범한 인간으로서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 혁명의 아버지 쑨원은 천하의 떠벌이로, 영원한 총리 저우언라이는 사려 깊지만 맨날 마오의 눈치만 보는 사람으로, 대사상가 후스는 문맹의 아내한테 찍소리도 못하는 모자란 사람으로 그려진다. 혁명전사라는 사람들이 왜 그리 연애에 목숨을 걸고 또 어찌나 자주 상대를 갈아치우는지. 흥미롭고, 우스꽝스럽고 허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이 더 실재에 근접한 것이 아닐까. 아무리 혁명과 역사가 중요해도 사람이라면 밥 먹고 똥 싸고 잠은 자야 하니까. 연애하고 결혼해서 애는 낳아야 하니까. 인간은 원래 그런 존재니까.      


  이 책의 또 다른 미덕이라면 우리가 잘 몰랐던 그러나 중국을 좀 더 나은 나라로 만들기 위해 애썼던 수많은 인물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소용돌이치는 역사의 현장에서 조국을 위해 분투했지만 대부분 쓸쓸히 희생되었다. 작가는 이 필부필녀들의 짧은 행복과 긴 불행을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가 이야기해 주듯 담담히 서술하고 있다. 그래서 유명한 혁명가들의 에피소드보다 훨씬 흥미롭고 슬프고 감동적이다.      


  그래서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사기>의 <자객열전>에 나오는 ‘형가’가 생각났다. 자신이 살아 돌아오지 못할 것을 있었지만 기꺼이 진시황 암살이라는 임무를 받아들이고 담담히 떠났던 이. 사마천이 아니었다면 왕도 아니고 엄청난 전쟁 영웅도 아닌 실패한 자객을 누가 기억이나 했겠나.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사기를 많이 닮아 있다. ‘21세기 사기열전’이라고 불러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장점도 많은 반면 단점도 있다. 위에서 언급한 바대로 구성이 산만하고, 중국 역사에 대한 기본 지식이 없이는 읽기가 어렵다. 그렇지만 그런 단점을 상쇄시키고도 남을 만큼  재밌다. 단문으로 잘라 치면서 서술되고 있는 중국 근현대사의 드라마틱한 사건들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특히 3권에서 묘사된 마오 사망 후 문화혁명 4인방 축출 과정은 웬만한 스릴러 영화보다 더욱 박진감 넘친다.        


사진출처:http://blog.daum.net/gmania65/258


  책은 현재 5권까지 나왔는데 앞으로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한다. 6권이 언제 나올지 모르니 아껴가며 차근차근 읽어야겠다. 이 참에 중국 근현대사 공부도 다시 해 볼까나.


제목 사진 출처 : http://hong-fol.tistory.com/55

매거진의 이전글 Frindle : 좋은 교사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